신장식 작품 활용 잡지 표지 모음 (1991~1993)
1991년 6월부터 1993년 6월 사이 5개 잡지(월간미술·조흥소식·현대백화점·금호문화·책과 인생)의 표지에 신장식 작가의 작품이 활용된 사례 모음. 미술 전문지·은행 사보·백화점 사보·기업 문화지·교양지로 매체 성격이 폭넓어 1990년대 초 작가 작품의 매체 활용 폭을 보여준다. 〈우리네 마음들은 어디로 가는가〉(1992)와 〈생명력〉(1992)의 표지 활용이 명시 확인된다.
이 작품과 함께 보면 좋은 자료
- 글 평론 1992-05-12 · 서성록
〈전통의 덕목과 역사성〉 — 서성록 평론 (1992)
신장식이 그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것은 우리 것의 소중함에 대해서이다. 몇차례의 작품전을 개최하지만, 대부분 그의 작품전은 우리 자신의 얼굴을 찾는 데 바쳐졌다. 가령 89년의 2회 개인전(토갤러리)에서는 전통 문양이나 한국적이라 불리워지는 여러 이미지에 대한 습작을 시도한 바가 있고, 91년의 6회째 개인전(신세계미술관)에서는 전통문양을 현대적 방법으로 발전시키면서 전통 문양속에 스며있는 우리의 정서를 채굴하는 작업을 시도한 바 있다.
이번 작품전도 그의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틀림이 없다. 작품의 주제는 역시 우리의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이며 또 고귀한 것인가를 환기시키는데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변화가 많고 그 변화의 속도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반전을 거듭하는 시기에 그의 작업내용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일 지 모르나, 현대미술이 간과하기 쉬운 점을 지적하고 있으며 한국미술의 근본적인 문제를 수습하려 애쓴다는 점에서 대단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하지만 이 거창하고도 본질적인 문제, 즉 전통의 계승과 발전을 시각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작가가 소환하는 조형기제들이란 무엇인가? 작가는 아주 일상적인 데서 그 조형기제들을 찾아내고 끌어쓴다. 그가 도입하는 이미지란 대체로 민속신앙과 관련된 것이거나 생활풍습과 직결된 것이다. 이를테면 돌맞이 아기의 색동저고리, 화려한 색상의 청사초롱, 불상 광배의 화염문, 구복신앙의 상징물로 원용한 촛불과 木神과 같은 민속적 이미지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한편으로 맨드라미, 징, 창문 문양, 겨울 나무와 같은 자연적, 인공적 이미지들을 만날 수 있다.
이와 같은 이미지들이란 굳이 어려운 용어로 설명을 붙힐 필요가 없이 우리 고유의 것을 표출하는 데 주안점을 둔 것이라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속에는 전통에 대한 그의 각별한 관심이 삼투되어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아무리 소중한 전통이라도 작가의 독특한 '해석'이 따르지 않는 한 그것은 공감을 주지 못할 것이다. 즉 명분과 당위로 끝날 소지가 있다는 것인데,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그가 전통적 이미지의 '해석'문제에 대해 어떠한 태도로 임하고 있는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전통해석에 있어 철저함을 기하는 일로부터 출발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형태나 이념만 덩그라니 제시하는 그런 비실증적 방법을 택하기 보다는 작업의 시작부터 모든 것을 주제와 관련시키는 꼼꼼함 내지 치밀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작품제작 과정을 따라가면서 이 점을 관찰하면, 작가는 먼저 닥지를 물에 풀어 갠 다음 액화된 종이를 사전에 떠놓은 밑그림의 형태를 따라 부착시키거나 필요한 부분만 정착시키는 과정을 밟아 질감을 내고 이러한 바탕의 정지작업을 마무리진 후에야 비로소 형태의 줄거리를 잡고 한국적 우주관의 상징인 오방색을 덧붙이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재료선택이나 색상, 그리고 형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주제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엽전, 필기구, 실같은 오브제를 동원하거나 모기향을 부착하는데 이것은 '치환'이나 '물질성'같은 의미로 이해되는 조형적 차원보다는 전자의 경우 돌을 맞은 아이가 엽전을 선택하면 장사군이 되고 필기구를 선택하면 학자가 된다는 식의 풍습과 관계가 있고 후자의 경우 모기향은 보이지 않는 氣를 형체화한 것이다. 말하자면 오브제 자체도 동양적 생활상이나 우주관의 지시물로 가능하게끔 용도변경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성'을 표제로 내건(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작가들과 구별되는 점의 하나는 그가 이 문제를 매우 구체적이며 분석적으로 접근한다는 사실이다. 모호함을 줄이고 대신 명료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각종 문양을 기용함으로써 역으로 작품이 나열적, 설명적으로 흐르는 문제점도 엿보이기는 하지만, 주제의식의 전달을 한층 강화시키는 것으로 작용하는 점을 지나칠 수 없다. 더욱이 한지의 포근한 재질감과 문양의 현란함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 주제 효과가 크게 발휘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주제의식을 역사적으로 발전시킨 예가 광화문을 형상으로 담은 대형작품이다. 크기도 크기이거니와 이 작품은 그의 근래 관심사를 측정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때 '관심사'란 두말할 나위없이 '빼앗긴 國運'에 대한 것이다. 현재 국립박물관으로 쓰이는 구 조선총독부의 끄트머리가 웅장한 광화문 윗부분에 걸려 있어 불행했던 일제시대, 그러니까 말로만 외치는 일제청산이지 여전히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현실의 안타까움을 하나의 논평형식으로 제시하고 있다. 올바른 우리의 것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일제의 잔재들이 척결되어야 한다는 작가의 의도가 뚜렷이 반영되고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이렇듯 주제에 해당하는 전통의 덕목과 역사성에 한층 역점을 두기 위해 여타의 부분들, 즉 우연성, 즉흥성 상상력, 오묘한 따위를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취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통하여 풍부한 감성을 만나는 대신 분명한 의미지시를 체험하게 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그에게 바라는 하나의 요망사항이 있다면, 그것은 이러한 의미지시를 강조하는 것 못지 않게 우리 고유의 투박하고 덤덤하며 또 정교함은 덜 하지만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체취를 느껴볼 수 있게 형식기제에 대해서도 정성을 쏟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름없는 陶工들이 무심하게 빚어낸 名器속에서 풋풋한 흙냄새를 맡을 때처럼 풍부한 민족정서의 향기를 맛보게 될 때, 그의 주제적 측면도 지금보다 훨씬 效用性을 지니게 될 것이라 본다. 요컨대 주제를 좀더 민속적인 형식의 여과장치를 경유시켜내는 과정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얘기이며, 이 문제를 그가 지니고 있는 작업의 숙제로 남기고 싶다.
- 글 평론 2014-06-18 · 신장식; 최태만
〈저 언덕으로〉 — 작가 노트와 최태만 평론 (2014)
저 언덕은 "아리랑 고개"일수도 있고, "금강산"일수도 있고, "수행의 완성, 최상, 최고에 이르는 삼매"일수도 있다. "pāramitā 波羅蜜"에 대한 나의 해석과 행(行)일수도 있다.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
고통의 이 세상에서 고통이 없는 저 피안의 세계로, 현실의 차안(此岸)에서 이상의 피안(彼岸)으로 향하는 "희망의 아리랑"이다.
— 신장식
언젠가 신장식은 자신에 대해 "내 인생에 50대는 길 위의 수행자다."라고 말한 바 있다. 나로서는 그가 종교적 발심으로 스스로를 수행자로 규정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가 "예술가의 길도 수행자의 길이며, 그림도 수행의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찾으러 세상을 그렇게 다니고 동서고금을 헤맸나? 조금의 빛이라도 표현해낸다면 좋겠다. 나는 그림으로 '희망의 아리랑'을 노래하고 싶다."라고 했던 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말한 수행자는 '길을 찾는 사람'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스스로 길 위의 수행자가 되기를 원했던 것처럼 신장식은 여행을 좋아한다. 그에게 있어 여행은 단지 일상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재충전을 위한 휴지(休止)의 시간이거나 열심히 일한 자신에게 제공하는 보상(報償)이 아니다. 그는 무언가를 찾는 사람이고, 그 대상이 떠오르면 계속 몰입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금강산여행이 열리기 전 금강산을 그릴 때도 그랬다. 금강산과 관련된 많은 자료를 모으고, 조사, 연구하며 그것을 화면 위에 재구성했다. 이러한 열정은 금강산 개방 후 수많은 현지답사를 통해 그를 '금강산화가'로 만드는 동력이기도 했다.
열정이 과도하면 집착이 될 수 있지만 불상을 그리는 것도 어떤 원력(願力)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는 신앙심에 이끌려 예배의 대상인 불상을 그리고 있지는 않다. 어쩌면 불상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깃들어있는 깊은 사유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불상을 방편으로 삼았는지 모른다.
아리랑으로부터 금강산, 그리고 불상에 이르기까지 신장식의 그림 속에서 갈등과 대립은 없다. 그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그가 찾는 것은 '희망의 아리랑'이다. 예술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분명하게 단언할 수 없지만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빛과 같은 것을 찾아가는 것.
— 최태만 / 미술평론가
- 글 뉴스 2014-06-25 · 법보신문
법보신문, 신장식 〈저 언덕으로〉 展 보도 (2014)
법보신문(2014-06-25 발행, 1250호)이 보도한 신장식 작가의 〈저 언덕으로〉 개인전(2014-06-25 ~ 2014-06-29, 노암갤러리). '바라밀에 대한 해석과 行'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선보인다. 작가는 전시 주제 '저 언덕으로'에 대해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에서 나왔다"고 설명하며, 아리랑 고개·금강산·삼매에 대한 자기 해석을 제시한다. 미술평론가 최태만이 작가의 불상 작업에 대해 "어쩌면 불상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깃들어 있는 깊은 사유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불상을 방편으로 삼았는지 모른다"고 분석한다.
보도 매체 (1)
- 법보신문 201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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