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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평론 1995-02-21 · 박은순
〈신장식의 금강산도〉 — 박은순 평론 (1995)
신장식은 진지하게 모색하는 화가이다. 그는 미술작업의 의미를, 남다른 표현기법을, 이 시대 우리 삶의, 조건과 자기 정체성의 문제를 끊임없이 추구하며 해답을 구하려 한다. 이제까지 그가 소박한 들꽃과 청사초롱, 큰북과 광화문 등 역사 속에서 형성되었고, 현재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대상을 취한 것은 단순히 소재주의적인 경향에 편승한 것이거나 표피적인 전통 우려내기는 아니었다. 그는 이러한 소재들을 표현할 때 우리 역사와 생활, 예술속에서 오랜 실험을 거친 뒤 체질화된 조형성과 감수성을 함께 표현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또한 우리 문화와 삶의 새로운 가치를 찾기 위하여 예술표현의 의미와 역할, 현대인의 미감에 호소할 수 있는 미학과 양식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신장식은 금강산을 그린다.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와 종교, 문화가 깃들인 금강산이 설악산이나 한라산과 다른 것은 그것이 휴전선 이북에 있어 갈 수 없는 산이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고려시대 이후 근대까지 천여 년의 세월동안 다양한 신앙과 사상, 문학과 미술작품을 낳게 한 영감의 근원이었기 때문이다. 금강산은 때로는 이 산을 한번 보면 죽어서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불교의 성지로, 때로는 어질고 지혜로운 자의 성정을 기르려는 유학자들의 이상인 절경으로, 또한 때로는 평생 금강산에 한번 가보지 못하면 사람축에 들지 못한다는 선망의 신선경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지금 분단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금강산은 민족통일과 새로운 미래의 비전을 상징하는 표상으로 자리잡으며 또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언제인가부터 금강산에 갈 수 없게 된 젊은 예술가들은 더이상 금강산을 그리거나 표현하지 않게 되었고, 그것은 곧 오랜 문화와 전통의 단절을 우리 민족의 굴곡진 역사를 적나라하게 대변하는 것이다.
온 겨레의 마음 속에 깊이 각인된 영산인 금강산, 그러나 한번도 가보지 못한 금강산을 그리는 이유와 의미는 무엇일까. 더구나 금강산이 단순한 풍경으로 다루어 질 수 없는 대상이 된 지금 금강산을 발견하고, 예술 표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결코 우연히, 가볍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기 위하여는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뿌리깊은 애착과 성찰, 현실적인 삶의 조건에 대한 치열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분명한 비전이 필요하고, 예술의 본질과 역할에 대한 진지한 모색이 요구되며, 또한 당연히도 그러한 조건을 예술적 표현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탁월한 감성과 표현역량이 필요한 것이다.
신장식은 오랜 기간동안 우리 문화와 예술을 반추하며 작업해 오는 과정에서 마침내 금강산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금강산을 그리기 위하여 일제시대에 찍은 금강산 사진첩들과 최근에 촬영된 금강산 비디오필름을 합성하여 금강산의 지질과 형세를 연구하였다. 또한 정선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에 그려진 여러 대가들의 금강산도를 살펴보면서 표현의 특징과 기법을 연구하기도 하였다. 그는 특히 외금강의 만물초를 중심으로 하늘로 솟구치는 듯한 골산의 힘찬 형태와 기가 분출되는 특징을 부각하였고, 때로는 화가 자신도 가보지도 못한, 이제는 거의 전설적인 존재가 되어 버린 금강산의 영험과 신비로움을 부각하였다. 파란색과 짙은 코발트색을 주조로 하여 그린 육중하고 단단한 모습의 금강산은 한편으로는 대지에 굳건히 뿌리를 내려 그 어떤 풍상에도 끄떡없을 듯이 강인한 듯하고, 또 한편으로는 하늘로 향해 치솟는 왕성한 형세와 활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장면이 마치 우리 민족의 힘찬 기상과 강인한 생명력을 서사적으로 표상한 것이라면, 이보다 부드럽게, 마치 너울거리는 듯한 평면적인 모습의 봉우리에다 흰색을 듬뿍 사용하여 신화적인 분위기를 강조한 또 다른 표현의 금강산도들은 마음속에 언제나 그리운, 그러나 지금은 가볼 수 없는 존재인 금강산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을 서정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신장식의 금강산 작업이 금강산이라는 소재의 성격과 특징에서만 오는 것이라면 그의 작업에 대한 우리의 호기심은 반감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작품의 내용과 형식, 기법을 교묘히 융합시킴으로써 화가의 의도와 조형성을 극대화시키며 그의 회화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그가 선택한 형태와 색채, 여러 기법들은 매우 긴밀하게 결합되며 독특한 표현력을 낳고 있다. 금강산의 분위기와 의미를 상징하기 위하여 주조색으로 사용된 파란색과 짙은 코발트색, 흰색은 상징적인 분위기를 강화시켰고, 상승세를 강조하기 위한 형태와 색채의 교묘한 배열, 캔버스 위에 미리 발라 놓은 닥종이에서 오는 독특한 질감과 생명력의 표현, 다양한 색깔의 아크릴 물감의 뿌리기로 마감 지움으로써 마치 옛날 수묵화 가운데 붓의 필치로 표현되었던 내면적인 에너지 또는 기가 분출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들이 그러하다. 또한 때로 화면 전체를 덮는 짙푸른 가로와 세로의 선으로 이루어진 사각형의 틀을 놓은 것은 마치 마음속의 유리창을 통하여 꿈속의 금강산을 보듯이, 또는 직접 답사하고 그리지 못한 실경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를 보상하기라도 하는 듯이 표현한, 현재의 상황에 대한 은유이면서 동시에 좀더 복합적인 조형성을 보여주는 방안이다. 사각형의 매듭 위에 놓인 볼트와 넛트는 음과 양의 상징인 듯도 하고, 금강산의 강인한 지세와 힘을 받쳐주는 듯도 하며, 혹은 별자리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인 듯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와 같이 새로운 주제와 소재, 다양한 표현기법을 동원하며 신장식은 이제까지와 다른 좀더 규모있고, 더욱 시사적이며, 형식과 내용, 기법이 긴밀하게 결합된 새로운 조형성을 보여주었다. 이번 전시회에 나타난 여러 변모와 집요한 예술의지를 주목하며 우리는 그에게 다시 한번 시선을 보내게 된다.
- 복합 강연 2011-05-25 · 신장식
오키나와 국제대학 학술대회 발표 — 〈금강산 그림〉 (신장식) (2011)
신장식(국민대학교 교수, 화가)
1. 금강산 그림의 전통
금강산 그림은 고려 노영의 불화 ‘지장보살도’에서부터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김홍도의 화첩뿐만 아니라 많은 민화와 일제시대 순조의 명을 받아 금강산 스케치 여행후 그린 해강 김규진의 ‘금강산도’,‘총석정도’,소정 변관식 선생의 ‘삼선암’ 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특히 금강산 그림은 겸재 정선으로부터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을 실경으로 사생해내면서 우리의 미학이 세워진 우리 회화사의 성소인 것이다. 우리것을 찾아내고 우리시대의 우리그림에 대한 영감은 이곳에서 찾아야하지 않을까.
2. 분단과 금강산
그런데 분단이후에는 남한 작가 중에서 금강산을 그린 화가가 없으니 상상과 자료에 근거하더라도 금강산 그림은 이 시점에서 새롭게 시도되는 것이 좋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서 시작해서 93년 개인전부터 98년까지 다섯번의 개인전을 금강산이라는 주제로 발표해 왔다. 사실 나는 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에서 미술조감독으로 일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동안 우리의 정서를 구체화하기 위해 민속적 소재 속에 숨은 조형언어에 관심을 가지고 청사초롱,북,징,깃발,경복궁 등의 소재를 ‘아리랑’이라는 테마로 작품활동을 해왔다. 그후 우리 산하 속에 들어 있는 생동감과 생명력을 맨드라미,들풀,소나무,북한산 등을 소재로 그림으로 표현하던 중 이왕이면 우리의 산 중에서 우리 회화의 성소인 금강산을 그려보자고 단순히 생각한 것이 나의 금강산 그림의 출발이었다. 금강산의 회화적인 맥락 뿐만 아니라 그 문화정치적 무게에 비추어보면 냉엄한 분단현실과 직면한 이 시대의 화가가 그려낸 ‘금강산’은 또 하나의 통일이야기이다.
3. 다시 찾게된 금강산
이제 여러번 금강산을 만나니 그 생동감과 신명이 나의 그림에도 스며들지 않을까. 아직은 총석정,신금강 등 직접 보지 못한 곳도 많지만 우리 민족이 가진 신명과 생명력이 이제는 금강산 그림 속에 가능하지 않을까. 장래에는 우리 민족의 분단상황이 극복되어 금강산이 민족의 상징으로 거듭나는 때가 오지 않겠나. 그 때에는 마음껏 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명과 생명력이 나의 그림에 조금이라도 표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4. 관념적 금강산 그림
1993-1998 금강산에 가보지 않고 금강산 그림을 그리니 아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언젠가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은 그 그림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오래 전에 시작된 이 일은 회화적 가치로서의 금강산 그림에 대한 연구를 동반한 것이었다. 당시의 그림들은 관념적인 산수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실체와 형상 사이의 연관성이 희박했으므로 주변의 의아한 시선을 받았다. 이런 점을 넘어서려는 노력은 금강산 옛 그림들에 대한 연구와 사진자료의 수집 등으로 나타났지만 현장을 체험하지 않은 풍경화란 어쩔 수 없이 가슴 속의 그림이 아닌 머리 속의 그림일 가능성이 높았다. 1996년의 개인전 도록에 실린 담배를 피워물고 먼산을 바라보는 나의 흑백 사진은 관념산수와 진경산수 사이의 명확한 갈림길에 서있는 자신의 위치를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분단상황을 보여주는 휴전선 철책 앞에 서 있는 한 화가의 모습은 마치 조만간 저 철책선을 넘어서 금강산으로 갈 것을 염원하거나 혹은 예감한 듯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5. 사실적 금강산 그림
나는 금강산을 하나의 상징으로 접근했다가 그 실체를 만났다. 산을 그리되 산을 그대로 옮겨 그리는 이른바 재현산수 작업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 나의 최대 과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틀을 벗어나서 금강산의 실체를 읽어내는 데로 나아가고자 했다. 금강산 방문 이후의 금강산 그림은 여러모로 그 이전과 다르다. 우선 관념산수를 진경산수로 전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최근의 작업들은 직접 금강산을 찾아 사생을 하고 사진을 남겨 온 결과물을 토대로 제작한 금강산 진경 작업인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관념에서 진경으로의 전환’은 ‘실경과 그림 사이의 합일점’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금강산을 매개로 생동하는 자연과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 나아가 분단상황을 비롯한 현실을 구체적으로 담아내는 당대성과 현장성의 전취 과정은 나의 그림이 포기할 수 없는 남다른 가능성이다. 이것은 상징과 실체의 합일을 통해 삶과 예술을 관통하는 진정성을 획득하는 일이다.
6. 금강산 그림의 전망
금강산은 나의 금강산이고 우리민족의 금강산이다. 나는 이런 희망을 가져본다. 다음에는 남쪽의 작가뿐만 아니라 북쪽의 작가들도 동참하여 같이 금강산에서 그림을 그리고 우리 미술을 토론하며 서울과 평양에서 발표하면 우리의 상징을 더욱 보배롭게 하지 않겠나. 민족 공통의 정서로 만나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나. 사람이 없는 빈 산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산과 그곳의 사람들과 같이 만날 때 기쁨은 더욱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