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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평론 1993-04-30 · 정영목
〈‘우리 것’에 관한 신장식의 조형방식〉 — 정영목 평론 (1993)
지난 몇몇의 개인전을 통하여 우리 것에 관한 신장식의 애착이 남달리 유별나다는 사실은 이제 이미 公言化되었다. 그것의 조형적 성과에 대한 논의 이전에 「아리랑」시리즈로 대표되는 작가의 ‘전통성과 도상성’ (박신의. 최태만, 김영재), ‘한국성’ (서성록), ‘장식성’ (오병욱)에 관한 문제는 주로 주제적인 측면에서의 고찰이었다. 물론 작가의 의도가 그럴진대 이러한 방향의 해석은 당연하다. 또한 올림픽 행사를 전후한 ‘우리 것 찾기’의 열기에 부함되는 신장식의 조형성은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측면으로 인식되어 왔다.
지난 몇해 동안 작가가 보여준, 특히 목판을 포함한 회화에서의 역사의식에 관한 조형적 가능성과 함께 평론가들은 작가에 대한 다음과 같은 따뜻한 시선의 바램이 있었다. 우선 박신의는 작가의 1989년 개인전 (土 갤러리)의 작품에 나타난 “상징성의 심도는 아직 얕으며...도상에 대한 해석의 관점 역시 전면적이지 못한 한계”성을 지적했으며, 최태만은 그의 작품이 “도해적인 면을 너무 강하게 띠고”있으며 이러한 도상이 “산업사회란 이 현대사회적 삶 속에서 얼마만큼의 설득력”을 가질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같은 전시의 작품에 나타난 도상을 언어적 관점에서 풀이한 김영재는 작가가 조형 언어로서의 “메타언어(meta - language) 혹은 超言語”를 위한 “일상의 언어를 얼마만큼 버릴 수 있는지, 한국적인 세계 언어를 얼마만큼 효과적으로 표출”할 수 있을까에 대한 앞으로의 기대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지난 해 개인전(이콘갤러리)의 작품에서 강성원은 도상을 포함한 작가의 그림 성격이 “제도화된 전통성의 미적 차원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며 1970-80년대에 여러 가지로 굴절되고 폐색되어 가리워진 전통성과 한국성의 “참모습을 들추어내는 작업이 선결”될 것을 작가에게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서성록은 우리 고유의 좀더 “투박하고 덤덤하며...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체취를 느껴볼 수 있는 형식기제”와 “주제를 좀더 민속적인 형식의 여과장치를 경유시켜내는 과정”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꼭 이 위의 평문 모두가 작가의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하였다던가, 설사 지적되었다하더라도 작가의 미래를 예견하거나 제시해주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는 없으리라. 우선 언어의 추상성으로 말미암아 평문은 작가가 실천적으로 옮기기엔 너무나 구체성이 희박한 이론적인 글로서 비쳐질 수 있다. 김영재의 언어적 관점을 제외한 대부분의 평문은 지나치게 주제적인 측면에서의 도상과 그것의 상징성의 깊이게 관한 한국성과 민속성을 강조하며 마치 그것을 해결함으로써 작가 스스로 자신의 조형적 향상을 꾀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갖게한다.
그러나 필자는 조형적인 측면에서의 진정한 전통성과 한국성의 주제의식을 살리기 위해서 작가는 오히려 ‘자신의 것’과 ‘우리 것’을 과감하게 떨쳐버려야 한다는 역설로서 신장식의 조형의식에 기대를 건다. 즉, 지금까지 드러난 그의 민속성과 한국성에 관한 주제의식은 형식적으로 더욱 감추어져야했으며, 더욱 꼬여진 이중삼중의 상징성속에 지극히 애매모호한 형상으로서의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차라리 나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그의 예전 작품중에서도 이러한 조형방식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가령 1988년의「아리랑-아침」(도.1)은 장고의 앞면과 옆면의 형태를 지극히 도상학적으로 평면에 일렬로 늘어놓았다. 어떤 측면에서 이것은 마치 재스퍼 존스(Jasper Johns)의 미국 국기가 갖는-문화적 주제의식을 제거한 지극히 객관적인 오브제로서의 -도상학적 형태와 같은 순수한 조형적인 느낌을 전달해준다. 또한 1991-92년 사이에 「아리랑」(도 2.)의 조형적 대체 매체로 사용된 모기향 역시 작가 특유의 해학적 재치와 장식성을 함축한 오브제로서 위의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주제의식을 빼내버린 「아리랑」의 시각적 형태는 그것의 語感과 함께 왠지 꼬불꼬불할 것 같고, 그러한 이미지를 전혀 「아리랑」의 개념과 상관없는 산업생산품으로 대치함으로써 작가의 주관적인 주제의식과 조형의식을 중성화시키는 효과를 얻었다.
이러한 몇몇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작가의 주제의식이 지나치게 노출되었던 과거에 비하여 이콘 갤러리의 이번 개인전은 바로 주제와 그것을 담는 틀로서의 형식에 접근해가는 작가의 객관성이 신장되었다는 측면에서 작품의 주제와 그것을 위한 소재를 탐색해 나가는 작가의 知的 진지함이 한층 성숙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민속적인 소도구의 표현에서 출발한 ‘우리 것’(1988-90)에 대한 신장식의 관심은 점차 덩치가 큰 인위적인 구조물(건축물)에 담긴 역사의식으로서의 한국성(199192)을 모색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물들은 필연적으로 주위의 자연과 밀접한 관계속에 존재한다는 생각에서 작가는 자연 本然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가졌으리라. 이러한 자연의 모습은 대게 풍경의 형식으로 나타나는데 동양의 심성에 와닿는 山水畵는 정신적인 측면에서 서양의 풍경화와는 달리 각별하다. “육중한 구조물의 인위적이고 동물적인 에너지의 표현보다 서서히 다가오는 정적이고 식물적인-그러면서도 자체내의 긴장과 생명력이 넘치는-어떠한 에너지를 그림에 담고자”하는 작가의 변화를, 특히 「금강산」을 핵심 주제로한 이번 개인전에서 엿볼 수 있다.
「금강산」을 포함하여 주로 식물성의 이미지를 화폭에 담은 작가의 이러한 주제의식의 변화를 필자는 과거와 다른 단순한 소재의 변화에서 오는 결과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양식적인 측면에서의 조형방식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한국성’과 ‘전통성’ 혹은 ‘민속성’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의식이 식물성과 동물성을 따질 정도로 성숙, 확대되었으며, 그것은 작가가 관찰하는 어떠한 대상에 관한 객관성의 여지가 그만큼 커졌다는 아마도 거의 무의식적인 작가의 변화를 입증해주는 사실일 것이다.
이러한 경우는 특히 작가가 「금강산」을 그리고자 마음먹게된 동기에서도 잘 나타난다. 지난 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었던 고려대박물관 소장인 謙齊 鄭敾의「金剛山圖」(도.3)와 그의 다른 ‘식물성 이미지’들을 보고 받은 느낌이 예전에 민화나 민속 소도구를 보고 받았던 느낌과 거의 다를바 없었다는 것이다. 즉, 주제나 내용 또는 거기에 덧씌운 ‘한국성’과‘전통성’의 문제 이전에 작가에게는 정선의 산수화가 형태의 구조의 문제로 가슴에 와닿는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념의 테두리에 갇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던 그 좋은 경치를 볼 수도, 때문에 그릴 수도 없다는 평범한 생각에서 벗어 나게된 결정적인 동기를 필자는 정선의 산수화를 형태와 구조의 측면에서 관찰할 수 있었던 작가의 시각적 독립성과 객관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역사적인 사실을 들추어내듯 신장식은 자신의 마음속에 기록될 「금강산」의 시각적인 자료를 과거와 현재로부터 수집, 비교하여 거기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형태를 추출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 가령, 일제시대의 「금강산 사진첩」(도.4)이나 또는 지난 해 북한을 방문한 여성대표단이 촬영하여 TV에 방영된 「금강산」(도, 5)등을 토대로 작가는 일체의 주제적인 서술성을 배제하고 정선의 그림과도 같이 무수한 면들로 분할된 구조적인 형태로서의 산과 그 형태의 드러남을 중화시키기 위한 작가 특유의 뿌리기 작업으로서 시대를 초월한 어떤 상서로운 느낌의 산으로 나타내고자 한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정면성(forntality)과 대칭성을 주골격으로 하여 장식적이고 도상적인 요소가 지나치게 드러나던 과거의 작품에 비하여 이번의 ‘식물성 이미지’들에서는 그러한 요소가 현저하게 완화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즉, 과거에는 작가의 주제의식에 걸맞게 구조의 정면성이 어떠한 엄격성을, 또한 대칭성이 화면에서의 긴장감을 더해주는 요소로서 작용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의 강인한 저력을 품고 질기게 성장하는 식물성의 에너지를 조형적으로 표현해보려는 작가의 주제의식이 바뀐 이상 도상성을 부추기던 그와 같은 요소들은 사라져야 마땅하다.
결국 주제의 서술적인 접근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던 과거에 비하여 이제는 물질의 순수한 개념성을 추구해감으로써 개념자체의 문제로서 순수한 시각적 형식의 문제를 풀어나간다면 작가의 변화된 주체의식을 담을 무언가 새로운 형식의 조형방식을 만날 수 있으리라.
- 복합 평론 1994-04 · 서정걸
월간미술 1994년 4월호, 〈전통미의 재해석, 생명과 리듬의 표현〉 — 서정걸 평론 (1994)
재료가 가진 고유의 리듬에 대한 인식, 그 리듬에 자신의 호흡을 일치시키는 작업
신장식의 작업실은 서울과 성남시의 경계지점에 위치한 한적한 마을 뒤편에 있다. 꽃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야산과 과수원들이 펼쳐져 있는 매우 전원적인 모습의 마을이다. 그는 공장용으로 지어놓은 슬레이트 건물 한 칸을 임대하여 작업실로 쓰고 있는데, 여섯 개의 공간으로 분할되어 있는 그 건물은 모두 화가들에게 임대되어 하나의 집단 스튜디오를 이루고 있다. 신장식 이외에 이기봉, 윤해남, 장문걸, 이인희 등이 일찍부터 그곳에 터를 잡았고, 최근에 홍승혜가 새로 입주했다. 이들은 모두 화단에서 부각되고 있는, 시쳇말로 잘나가는 신인들이다.
비록 도심에서 벗어난 외딴 곳에 위치해 있지만 젊은 작가들의 작업열기로 그곳은 활기에 차 있다. 조만간 작업실을 개방하여 자신들의 작업을 알몸으로 드러내 보이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의욕에 찬 젊은 작가들이 서로 교류하며 자신의 세계를 가꾸어가고 있는 그곳은 머지않아 화단에 화제를 불러일으킬 범상치 않은 열기로 가득하다.
젊은 작가들의 아지트라고 할 만한 그곳에는 작업열기와 함께 경쟁심리가 또한 숨어있기도 할 것이다. 신장식은 학교에서 강의를 마치고 곧바로 이곳에 와서 그림연구에 몰두한다. 어쩐지 작업이라기보다는 연구 또는 탐구라는 말이 적절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의 작업실에 놓인 판화제작용 프레스기, 다양한 색채의 물감이 담긴 각종 그릇들, 판화 건조대, 캔버스를 손수 제작하기 위해 들여놓은 다기능 콤프레샤, 종이의 원료가 담긴 그릇 등이 실험실에 들어온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가 탐구해 온 것은 리듬의 표현에 관한 것이다. 리듬의 표현은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이고, 화면이 리듬감으로 충만될 때 관찰자가 화면 앞에서 느낄 수 있는 교감은 풍부해진다.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리듬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호흡과 재료의 리듬이 합치되는 지점을 찾는 것"이 그의 연구과제이다. "처음엔 작의가 강했었는데, 차츰 재료의 리듬을 인식하게 됐고, 그 리듬의 인식 위에서 작업하게 됨으로써 새로운 아이디어도 나오고 생동감 있는 작품이 만들어지게 됐다. … 생명이 불어넣어지지 않은 작품들은 얼마나 무미건조한 것인가?" 대략 이러한 요지로 그는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바로 생명력, 리듬, 율동 등과 같은 개념들이 그의 작품의 기본이 된다는 의미이다. 그럼으로써 작위를 배제하고 그 자신과 재료의 리듬을 따라 작업할 때 자연이 지닌 생명력과 자신의 정서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전통미술의 오랜 미학적 핵심들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가 자주 작품에 동원하고 있는 전통적이고 민속적인 소재들은 그러한 미학적 명제를 실현시키기 위한 통로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의 작품 명제들에서 '아리랑', '청사초롱' 등 전통적인 소재의 명칭 뒤에 '생명력'이란 단어가 붙어 다니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에는 민속적인 조형물들의 이미지들로부터 자연으로 옮겨가고 있는데, 전통 탐구의 폭이 그만큼 깊고 넓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자연을 소재로 택할 때에도 전통적인 이미지가 강한 소나무·민들레·들국화·맨드라미 같은 대상들에 주목하고 있다. 그들 소재가 주는 전통적이고 한국적인 뉘앙스를 화면 전체에 배치하려는 것과 율동감을 강조하려는 표현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은 그러므로 그의 작품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표현방식에 있어서도 그는 산수화나 화조화 같은 전통 회화기법에서 착안한 것처럼 보이는 독특한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두텁고 푸근한 질감의 표현과 강렬한 색채 대비 등을 통해 한국미의 특질에 다가가고자 한다.
전통적 이미지와 정서의 발견을 통한 전통미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업
그의 이러한 생각들은 대략 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시작된 것이다. 그는 지난 88올림픽 때 개막식과 폐회식 행사의 미술 조감독(총감독은 서양화가 이만익씨)을 맡았었는데, 그때 수많은 민속자료들을 수집했고, 전통 조형물들의 조형성과 내용을 깊이 공부할 수 있었다. 〈북의 행렬〉, 〈혼돈〉, 〈떠나가는 배〉 등의 프로그램이 그가 기획했거나 참여한 것들이었는데, 능행도나 고유의 민속놀이를 바탕으로 기획된 것이다. 동원된 소품들도 전통 의상용 깃발, 청사초롱 등 민속적인 소재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때 온갖 깃발들의 물결, 청사초롱의 행렬 등을 보고 그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즉 그 개개의 것들이 모여 총체적인 것으로 보여질 때 거기에서 발산되는 율동과 생동감이 그의 마음 속에 깊이 각인되었고, 그것이 그의 작품세계로 이어진 것이다. "불빛의 흔들림, 색채의 율동, 그것이 총체적인 것으로 보여질 때의 감동 … 바로 이러한 소묘법이 우리 고유의 미의식이며 자기 정체성의 본질을 이루는 것이다"라고 그는 생각했다. "양식이나 형식보다 정서 그 자체가 더 중요하고 우리의 공통인자로서의 정서를 깊이 있게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의 작품세계의 심도를 높여준 또 하나의 계기는 목판화에의 관심이다. 목판화를 제작하면서 그는 나무에 새겨지는 형태와 나무가 가지고 있는 성질(즉 생명력과 리듬)과의 관계가 작품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나무와 내가 만난다는 것, 나무에 형태를 새겨서 찍어내지만 그러한 행위가 어떤 리듬감을 고려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와의 차이는 아주 미묘하지만 본질적인 문제이다"라는 그의 설명은 결국 표현된 대상의 모습보다 그 속에 어떻게 그 대상이 가지고 있는 정서와 자신의 감성을 담아낼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화면에 리듬감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뿌리기와 노끈 붙이기 등의 방법을 도입했다. 그는 구불구불한 선들로 구획된 형태들의 유기적 결합, 화면 위에 난무하는 가늘고 예리한 선들, 강렬한 색채의 대비 등이 그의 의도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그러한 원리와 개념들을 가지고 작업한 결과는 바로 한국적 정서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새로운 조형성의 탐구이다.
월간 미술 1994년 4월호
![[관련 자료] 월간미술 1994년 4월호 〈젊은 시각〉 코너 — 〈전통미의 재해석, 생명과 리듬의 표현〉 서정걸 기자 평론 첫 page. 헤더 디자인과 작가 작업실 portrait (청사초롱 배경 앞 신장식 작가)이 함께 게재 (작가 블로그에서 수집)](/archive/ar-1994-002/01.jpg)
![[관련 자료] 월간미술 1994년 4월호 본문 중간 page 스캔 (작가 블로그에서 수집)](/archive/ar-1994-002/02.jpg)
![[관련 자료] 월간미술 1994년 4월호 본문 중간 page 스캔 (작가 블로그에서 수집)](/archive/ar-1994-002/03.jpg)
![[관련 자료] 월간미술 1994년 4월호 본문 후반 page 스캔 — 신장식 작품 도판 3점(청사초롱 시리즈·원형 작품 1992·격자 사각 작품 1992) 게재 (작가 블로그에서 수집)](/archive/ar-1994-002/0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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