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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합 평론 1989 · 최태만
〈'전통'의 맥을 찾는 작업〉 — 최태만 평론 (1989)
한국미술에 있어서 전통의 문제
한국미술에 있어서 전통의 문제는 단순하지가 않다. 미술의 영역뿐만 아니라 한국문화 전반에 걸쳐 전통의 '창조적 계승'이나 혹은 '현대적 재창조'의 문제는 마치 하나의 당위론적 명제인 것처럼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식은 그것이 원론적 입장에 서 있을수록 전통을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고 신비롭고 초월적이며 영원불변하는 초논리적인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전통의 문제는 단순하게 '꼭 이러저러한 무엇이어야 한다'는 막연한 관념론이나 명분론으로 환원시켜버릴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통의 승계'란 관념적 구호나 유명론에 함몰되어 정작 전통의 풍부한 가능성은 사장한 채 과거의 것을 되새김질하거나 차용에만 그침으로써 오히려 전통 그 자체를 공허한 것으로 만들어 버릴 위험이 있다. 과거에 존재했던 것을 복제한다고 해서 전통의 올바른 계승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전통은 시대와 역사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필요와 요구, 취향이나 목적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통이란 무엇인가?
사전적인 정의에 의하자면 전통이란 관습 가운데서 역사적 배경을 가지며 특히 높은 규범적 의의를 지니고 전하여 내려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문화적 전통이란 인간이 창조해 낸 가치의 집적물, 즉 물질적 문화와 지적 문화가 상호, 보존적으로 통합된 것으로서 실제적이고 생생한 실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긴 역사를 관류하였던 정신적 가치와 공동체의 삶의 의식에 의해 축적되고 발전해온 인간의 지적·육체적 노동의 결과물이며 나아가 삶의 질을 풍부하게 고양시키는 자산이다. 그러나 교조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전통주의자들은 전통을 역동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보수적이며 고답적인 아카데미즘을 전통으로 위장하며, 절충주의자들은 그것을 정태적인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이것저것 주워담아 변종을 만들어 내는 것을 전통이라고 곡해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허상의 우상을 숭배하고자 하는 의식없는 자세에서 빚어진 결과임과 동시에 실천적 모색은 방기한 채 주관적 관념을 전통으로 위장하려는 데서 흔히 빨려들 수 있는 함정이다.
한국미술에 있어서 전통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의 관점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지배계층의 고급 취향과 미의식을 존중하는 입장이 있고 둘째, 우리 민족의 기층사상인 샤머니즘과 음양오행사상·불교·유교·도교 사상에 기초한 기층민중의 미적 전통을 천착하려는 태도가 그것이다. 이 두 관점은 모두 일단 우리 민족의 자기동일성이 상실되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용인하고 있다. 전자가 중국을 통해 수입된 주자학이나 성리학이라는 학문적 기반과 더불어 중국의 화론을 이어받고 있다면 후자는 민족의 토속신앙인 샤머니즘을 근간으로 하되 비록 외국에서 도입된 것이지만 토속화한 외래종교를 바탕에 깔고 있다.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이른바 80년대의 민족·민중미술 일각에서 앞서 말한 두 관점을 극복하고 민중의 자발적이고 당시대의 필요에 의해 생산된 실용적이고 신명넘치는 미술의 전통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쨌든 민간신앙적 측면에서의 무속과 점·복·예언, 풍수·참위(讖緯) 등을 위해 쓰여진 각종 도구나 기재 속에 등장하는 미적 표현물과 노동의 고달픔이나 자연의 각종 재해 속에서도 놀이를 통해 그것을 이겨내고자 했던 기층민중들의 놀이판에 쓰여졌던 여러 악기나 도구 속에 나타나고 있는 미적 양식과 취향은 지배계층의 관조적이고 사변적인 것과 다른 것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고급한 지배 계층의 미술전통에 대한 평가와 교육에 비해 절실한 삶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기층 문화의 전통은 그리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설령 민화 등의 민속적 예술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고 할지라도 거의 신화적인 맥락에서 숭배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문제는 전통을 고착된 것으로 바라보고 파악하고자 하는 태도에 있는 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할 때 전통에 대한 논의는 항상 원론적 차원에서 겉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전통이 현재에도 유용하며 충분히 생산적이고 실질적인 민족공동체의 자산임을 자각하고 이것을 실천적으로 재생산해 내기 위한 노력이 실제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전통의 탐색 그 가능성과 한계
신장식의 작업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우리 것 찾기'이다. 이것은 현대미술의 관행과 제도 속에서 교육받고 성장한 그에게 대단한 모험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대학교육기간동안 이른바 현대주의의 각종 규범이나 법칙을 충실하게 학습하였고 또 이러한 것을 좇아 습작시기를 보낸 바 있다. 그러한 그가 전통에 눈을 돌리고 그것에서 자신의 언어를 발견하고자 했던 사실은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신장식이 전통에 대해 관심을 돌리도록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88서울올림픽〉이다. 그는 올림픽 개·폐회식 행사의 미술부문 실무자로 활동하면서부터 한국의 전통적 미술에 대한 조사와 연구에 착수하게 된다. 당시 그와 함께 이 행사를 준비·진행했던 실무자들은 세계인의 축제한마당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합의에 도달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적인 것이 무엇인가 찾아 나서게 되었고 수집된 것을 토대로 개·폐회식 행사를 준비했던 것이다. 그러나 1여 년에 걸친 작업과정에도 불구하고 그가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은 주로 문헌자료의 범위에 머무르는 것이었다. 문헌에 의한 전통의 연구가 가질 수 있는 결정적 한계는 전통을 일정한 틀로 한정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전통적 맥락에서의 효용성이나 내용적 측면에 대한 고찰 보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전통적 대상을 단지 심미적·장식적 차원에서 전치시켜 버리는 것이다. 올림픽 행사에의 참여가 그의 사고와 작업방향을 바꾸는 전환점을 제공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관주도의 지극히 관료적이고 물량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그의 작업의 한계까지 가늠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러나 올림픽 개·폐회식 행사의 미술담당 실무자로 참여하기 이전부터 신장식은 한국의 전통 문양이나 한국적이라 명명되어지고 있는 여러 이미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습작을 시도했던 적이 있다. 단지 그것은 말 그대로 모색의 과정이었지 본격적인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러한 전통에의 탐색이 현대미술의 온갖 현란하고 정치한 논리보다 자신의 체질에 더 잘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느끼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말하고 있다. 어쨌든 전통적 양식이나 내용에 대한 모색자체에만 머물러 있던 단계에서 올림픽이란 거대한 행사를 위해 여러 민족학자의 자문을 구하고 박물관이나 개인연구실을 드나들며 자료를 수집, 일을 진행하면서 그는 자신의 현재 작업을 끌어낼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이다.
신장식이 무엇보다 관심을 가지고 조사하고 이것을 토대로 실제 자신의 작업에 적용한 것은 깃발이다. 기는 '우리 것'을 찾는 과정에서 선택된 것이지만 그가 유달리 이것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게 된 것은 옛날에 여러 가지 필요에 의해 쓰여졌던 각종 깃발의 도형 자체에서 응축·발산하는 힘과 건강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농업경제가 사회구성체의 핵심이던 농경사회에서 쓰여졌던 농기로부터 군기와 왕의 행차때 쓰여졌던 여러 종류의 깃발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나름대로의 이유와 내용을 가지고 일정한 격식에 의해 제작되고 사용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과거의 유물을 농경사회가 아닌 산업사회, 더 나아가 후기 산업사회라고도 하는 현대에 어떤 방식과 내용적 맥락에서 되새길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자칫하면 과거에 대한 향수나 회고의 수준에 머물러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 깃발을 포함하여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 내었던 여러 사각이미지들이 넉넉히 정신적 배경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상징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믿음을 작품의 내용 속에 투여하고 있다.
예컨대 이번 개인전에 출품한 작품 중에서 가장 시각적 호소력이 강하면서 다의적인 상징체계들로 구성된 〈아리랑 - 아침〉이란 작품은 그의 믿음이 어디에 기초한 것인가를 느끼게 한다. 화면 가운데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중심으로 네 방위를 의미하는 청·백·주·현의 색이 자리하고 있고 이것을 전통적인 깃발에 등장하는 화염각(火焰角: 農旗에서는 이러한 양식을 '지네발'이라고도 한다)이 감싸고 있다. 사방위를 상징하는 4가지 색깔과 인간의 상징인 노란색을 '오방색'이라 하는데 이것은 음양오행 사상에 기초한 우주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활활 타오르고 있는 태양속에 떠오르는 새는 또한 비상하고자 하는 의식의 표현인데 이것의 원형을 그는 고구려 벽화에서 찾고 있다. 즉 선녀가 해를 들고 승천하려는 모습을 그린 벽화에서 그 내용과 형식을 인용한 것이다. 이 작품은 따라서 일출의 장엄함을 그린 것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새로운 날을 열고자 하는 의지와 힘의 발산을 표현한 것은 고구려 미술에서 중요하게 보여지는 특징이며 또한 조선시대에 제작되었던 〈일월부상도(日月扶桑圖)〉같은 그림에서도 이러한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힘을 발견할 수 있다. 전설적인 성상인 오봉산 위로 솟아오르는 해의 기운은 화염각이 단지 장식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기의 발산과 흡수를 상징하는 도상임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결국 이 작품은 하나의 거대한 깃발이면서도 힘의 상징이며 나아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에의 기원을 의미하는 다층적 의미구조에 의해 조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밝고 명쾌한 색상과 단순명료하면서도 분명한 내용을 담지하고 있는 형식은 단연히 민화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그런 점에서 신장식의 작업에 중요한 동인을 제공하는 것이 민화임을 알 수 있다. 그것도 어둡고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밝고 긍정적이며 미래지향적인 면에서 말이다. 그의 깃발 그림 속에는 이러한 민화적 도상뿐만 아니라 가장 원초적인 형태이면서 우주 삼라만상을 제어하는 법칙, 우주만물의 근원인 태극(太極)을 형성하는 곡옥(曲玉)과 벽사(抗邪)의 의미로 그려졌던 닭·방상시의 얼굴 등 주술적이며 민간신앙적인 도상들도 많이 등장한다. 농업경제체제에서 풍요를 희구했던 상징적 악기인 도(寞)와 은율사자놀이의 사자를 해학적으로 재구성한 〈탈〉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 속에 보이는 넉넉하고 긍정적인 시각은 고통과 고뇌에 의해 산출된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재미를 느끼게 만든다. 또한 그것이 단순히 흥미있는 것에만 끝나지 않고 보다 의미있는 내용까지 유추하게 만든다는 데서 그의 장점을 발견할 수 있다. 나아가 현실에의 비판은 숨겨진 방식, 즉 풍자와 해학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다만 그의 작품이 도해적인 면을 너무 강하게 띠고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그러다 보니 의도한 내용을 온전하고 입체적으로 구현하지 못한 채 평면적이고 설명적으로 나열해 놓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점은 깃발을 평면으로부터 약간 돌출시키고 그 배경을 이루는 화면을 현대적 감각의 드로잉으로 처리한 것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연필 드로잉의 배경이나 장식적인 면이 지나치게 두드러지는 나뭇가지의 첨가 등은 다소간 절충적인 한계까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이러한 도상이 산업사회란 이 현대사회적 삶 속에서 얼마만큼의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 자신이 숙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므로 지금 당장 명쾌한 결론을 기대할 수는 없다. 단지 현대미술의 저 광활한 대지속에서 자칫 망각해 버리기 십상인 우리의 토양과 체질을 무엇인가를 반성하고 그것을 다시금 발육시키고자 하는 의욕이 얼마나 발전된 종묘법을 찾아내고 우리의 풍토와 환경에 맞는 결과물을 재생해 낼 수 있는가 다같이 연구해 보아야 할 것이다.
- 복합 평론 1989-06-22 · 박신의
일간스포츠, 〈오늘의 시각통해 전통 모색〉 — 박신의 평론 (1989)
신장식의 아리랑 작업에 있어 핵심이 되는 부분은 전통의 모색과 구현에 있다. 그러나 회화에서 전통의 의미를 구현했다는 그 사실자체가 지금에 와서 굳이 특별하거나 새삼스러운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의 작품에서 특별히 주목해 볼만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전통을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또 그것을 어떠한 형태로 해석하여 구체화시켰는가에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가 이루어내고 있는 전통의 미적 형식은 단순히 민속예술에 근거한 전통문양에 대한 작가의 낭만적인 취향이나 선호에서 결과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전통 자체를 한시대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삶의 요구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파악함에 따라 얻어진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또한 전통이 갖는 본래적인 힘과 건강함을 과거에 고착되어 있는 불법의 형태로 보지 않고 오늘의 시점과 지평에서 새롭게 회복돼야할 형태로 재생산해 내려는 작가의 시도는 보다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이같은 관점에서 신장식이 엮어내는 전통의 의미구조는 기본적으로 서로 상치되는 대립들(음과 양으로 일별되는)의 존재를 인식하면서 동시에 이것을 부단하게 빚어내는 온갖 형태의 힘의 모습을 상정함으로써 시작된다. 특별히 대립들에 관한 인식은 그것들이 갖는 상호 차별성 때문에서가 아니라 서로의 충돌을 통해 또 하나의 생명의 원리를 통합한다는 법칙의 제안을 위해 중요한 몫이 되고 있다. 이로써 완성되는 생명력의 법칙은 현재까지 지속돼야할 요소로서 그의 모든 작품에서 적용되어 나타나며, 그 결과 그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밝고 활달한 분위기를 수반하게 된다.
〈아리랑-아침〉에서 확인되는 이같은 생명력에 대한 의지는 사뭇 서사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키면서 표출되고 있다. 그것은 한눈에 일출의 장관으로 보여지고 있지만 그곳에는 우주만물의 생성원리일 수 있는 기운이 응축 발산의 법칙이 거센 움직임을 동반하면서 가시적인 형태로 드러나 있다. 그 움직임의 원천은 사방위를 의미하는 화면의 네귀퉁이에 자리하는 사각형과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태양에서 주어진다. 태양은 사방에서 분산되어 있는 힘을 수렴하기도 하면서 그 힘을 다시 분출시키는 핵의 의미로서 그려져 있다.
이처럼 응축 혹은 분출하는 힘의 원리는 작가가 부여하는 아리랑의 의미로도 전환되어 나타난다. 그것은 곧 일반적으로 감내해야만 하는 한(恨)의 의미로서가 아니라, 그리고 이전처럼 감상적이거나 패배주의적인 아픔의 의미로서가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극복의 형태를 지향하는 밝고 건강한 힘의 의미로 제안된다. 특별히 〈아리랑-통일〉의 경우에 있어서도 작가는 태극의 도상을 서로 목을 꼬고 있는 두 마리의 봉황새로 대치시킴으로써 분단이라는 대립적 상황을 오히려 해학적으로 밝게 처리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이렇듯 전통에 관한 의미구조의 산출에 주목하는 것 외에도 우리는 전통적 형식의 개발에 주력하는 작가의 노력이 있음을 곳곳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전통적 깃발의 모양따라 화면의 가장자리를 변형시킨 형식과 민화적 양식에 의한 도상의 재배치 및 색채처리 등은 전통양식의 전형에 충분히 근접해 있다. 다른 한편 나뭇가지의 사용이나 연필 드로잉의 첨가 등은 나름대로 화면에 실제감을 부여하는 의도이면서 현재적 시점에서 투사되는 전통의 형태이고자 하는 염원으로 얽혀진다.
전통적 도상에 주목하고 이와 관련한 의미구조의 유추를 현재적 시점에서 구체화시킨 부분은 분명 신장식이 얻어낸 중요한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성과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결함은 민속예술과 전통에 대한 접근과 해석이 결코 전면적이지 못한다는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화면에서 이루어내는 상징성의 심도는 여전히 얕게 드러나 있으며, 또한 그가 기왕에 얻어내고 구현하고 있는 밝고 건강한 삶의 의지도 극복해야할 대상으로서의 무수한 역사적 문제와 전혀 마주하고 있지 않게 된다. 단지 생명력에 대한 막연한 희망과 낙관의 형태만으로는 전통속에서 면면히 이어져왔던 그 본래의 힘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언제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선정경위 (선정위원 박용숙·윤범모·박신의)
지난달 한 달 동안에도 전시회는 그런대로 풍성한 편이었다. 개인전이나 단체전, 그리고 각종 화랑의 개관전을 통해 볼 때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이르는 작가군의 활동이 그 어느 때보다도 눈에 띄었다. 그 가운데 특별히 의미를 두고 싶었던 전시회는 자신의 개인전을 빌어 작품세계의 전환을 시도하였던 경우였다.
더러는 역사에 주목하면서 더러는 전통과 문화의 문맥에 주목하면서 그 변화를 시도하고 있었는데 신장식(5월 17∼23일·土갤러리)은 후자에 해당하는 경우라 하겠다. 따라서 신장식의 작품을 오늘의 문제작으로 선정하게된 경우도 이같은 의미에서 주어졌으며 그 자신이 갖고 있는 몇 가지의 한계점—아직 중립적인 전통에 대한 과점에서 비롯하는 의미의 피상성 내지는 형식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계속 지켜볼 만한 작가·작품으로 생각되었다.
— 인터뷰 (이남 기자)
올해 만30세인 신장식(申璋湜)씨는 우리의 전통을 현대적인 조형언어로 표현하고자 노력하는 신진작가다. 지난달 열린 그의 개인전은 「아리랑」을 주제로 이같은 회화세계를 선보여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우리의 정서를 대변하는 아리랑에는 역사의 고개를 넘어가는 고난과 한, 슬픔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시점에서는 이러한 슬픔보다는 그 고개를 넘고자 하는 의지와 희망을 더 강조해야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신씨는 우리 문화의 밝고 명랑한 면, 생명력 넘치는 힘을 재현해내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의지는 우리의 色찾기에서 집약되어 나타난다.
『우리의 색은 대외적으로는 백의민족 즉 흰색이지만 대내적인 안방문화는 아기자기하고 생동감있는 색동문화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너무 백색이 대변하는 恨의 정서만 강조되어온 느낌이 있습니다.』
신씨가 전통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의 미술조감독으로 활동하면서였다. 그는 서울대 미대에서 모더니즘의 기법을 충실히 학습하고 그러한 작업을 해왔지만뭔가 체질에 맞지 않아 감동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우리의 전통과 색을 찾는 올림픽 관계 미술 작업을 맡으면서 우리의 문화가 지닌 힘과 생명력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는 특히 우리전통의 깃발에서 엄청난 시각적 호소력과 긍정적인 힘을 느껴 지금까지 애착을 가지고 깃발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레알리떼 서울」 「회화정신전」「앙가주망」「서울 판화」등 그룹전을 통해 활발히 작품발표를 한 그는 지난 1월 서베를린 로호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오는 8월에는 목판화개인전을 열 예정.
- 글 작가 노트 1996 · 신장식
신장식 작가 노트 〈한맺힌 '아리랑' 고개 넘어, 신바람나는 내고향 찾기〉 (1990년대 중후반)
화가에게 있어서 고향이란 그 화가와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시사점을 주는 중요한 지점이다. 현대미술의 여러 대가들은 자신의 마음의 고향으로부터 자신의 조형언어를 창조했다. 나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나의 고향은 어디에 있나? 나의 조형언어를 창조 할 그 원천은 어디에 있나?
고향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물길 따라 흐르던 수천성, 육지나무, 내 어린 몸을 감싸줄 수 있었던 앞산, 그 산으로 가는 길모퉁이의 사당, 용이 산다고 얘기하던 작은 동굴, 우리 놀이의 아지트였던 바위틈, 산놀이가 지루하게 느껴질 때면 개구리·메뚜기 쫓아 찾아가는 수성들, 그 들은 그때만 해도 그렇게 넓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들은 나의 성장과 더불어 변하였고 내가 생각하는 고향도 달라졌다. 어느 여름날인가 부터 더 이상 수성천에서는 멱을 감을 수 없었다. 그곳에서 빨래하던 어머니들의 모습도 자취를 감추었고 앞산의 모습도 길과 아파트로 바뀌어 갔고, 산으로 가는 길 모퉁이의 사당은 없어졌고, 용이 산다고 얘기했던 작은 동굴도 더 이상 용이 살 것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지 않았다. 그 길에는 아스팔트가 깔려나갔고 그 물에는 제방이 만들어졌다.
내 마음의 고향은 어디에 있는가? 중학교를 다닐 때는 경주에서 열리는 신라문화제에 참가 했었다. 계림에서 그 기간에 열리는 미술대회는 경주에 가 볼 수 있다는 핑계로 항상 참여하였다. 새벽같이 일어나 경주행 버스를 타고가면서 보는 새벽하늘의 빛깔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엷어져 가는 별빛 속에 형언 할 수 없는 밝음으로 향해하는 그 모습은 영혼의 울림이었다. 새로운 세계로 가는 나그네를 고무시키는 생명의 율동이었다.
경주에서 허물어져 버린 우리문화의 옛 모습과 자연을 느낄 수 있어서 언제나 나를 끌어당기는 그 무엇이 있었다. 내 마음의 고향의 모습을 그 곳에서 무의식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경주로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나보다.
내가 자라온 시간은 항상 공사 중이었고 건설 중이었다는 기억 또한 강하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콩나물 교실이었으며 새 교실을 지어 나가는 공사장이었다. 중학교 다닐 때 역시 산을 깎아 운동장을 만드느라 폭파음과 불도저 소리 속에서 공부해야 했고, 대입시를 준비하여 공부할 때도 교실 옆 복도에서는 창문설치 공사 중이었고 강당 또한 3년 내 공사 중이었다. 겨우 졸업식만 그곳에서 할 수 있었다. 대학 역시 입학해 털털거리며 다녀야 했던 길이, 졸업할때 쯤이 되어서야 포장되었고 건물 또한 완성되었다. 지금도 가끔 보지만 파헤쳐진 길 사이 철판위로 다니는 버스만 타고 다니는 사이 어른이 된 것이다. 내 어릴 때 고향에서, 어른이 될때 까지의 기간은 항상 건설 중이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인지 모르지만…….
내 마음의 고향은 어디 있는가?
그 공사장, 그 아스팔트 밑에 깔렸나. 내가 자라온 기간은 서양문화를 받아들여 급격히 산업화한 기간이었다. 산이 바뀌고 공장이 만들어지고 집이 바뀌어 갔고 사람들은 더욱더 각박해졌다. 그 와중에 우리 고향의 모습은 바뀌어 갔다. 불도저에 밀려서, 콘크리트 아스팔트에 묻혀서…….
서양문화의 소낙비가 지나가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우리 문화의 고향을 찾아가는 나의 마음은 경주 갈 때 새벽하늘의 율동같은 새로운 바람으로 느껴진다.
우리 마음의 고향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분명 아스팔트 깔리기 전 그 어디에 그 뿌리는 살아 있을 테니까.
대학에서 내가 공부한 것은 무엇인가? 서양문화의 소나기가 뿌려준 언어를, 정신을 학습하기에 바빴다. 남보다 먼저 그것을 알아야 행세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모방의 연속이었고 우리의 새로운 시각언어의 창조는 불가능 하였다.
우리의 조형언어는 어디로 갔나?
이제는 그것을 찾아야 한다. 서양문화의 소낙비가 지나가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우리의 언어를 되살려야 한다. 그것이 내 마음의 고향을 살리는 길이요 우리문화를 살리는 길이다. 서양문화의 무분별한 모방이 아니라 내 감정 내 정서를 우리의 형식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21세기를 향하는 우리의 고향을 창조하는 길이다.
나의 작품의 주제는 '아리랑'이다.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고유정서, 세계와 사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전통적 시각을 상징하는 어사다. 나의 아리랑 작업의 핵심은 우리의 전통을 오늘의 지평에서 그것이 갖는 본래적인 힘과 건강함을 구현하는데 있다. 전통이란 우리 삶의 절실한 요구에 의해 형성된 생동감 있고 신명 넘치는 것이다. 특히 내가 관심을 두고 나의 작업에 응용한 것은 우리의 기층문화에 의해 형성된 여러 조형언어였다. 무속과 점·복·예언·풍수·참위 등에 쓰여진 각종 도구나 기재 속에 등장하는 미적 표현물과 노동의 고달픔이나 자연의 각종 재해 속에서도 놀이를 통해 그것을 이겨내고자 했던 기층민중들의 놀이판에 쓰여졌던 여러 악기나 기(旗), 도구 속에 나타나고 있는 미적 양식과 취향, 민화에서 보여지는 진실성, 소박성 등등……
민족의 토속신앙인 샤머니즘을 근간으로 하는 토속화한 외래종교(불교, 도교, 유교, 음양오행)를 바탕으로 깔고 삶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기층문화의 전통에서 건강한 힘을 발견 한 것이다. 고향의 모습을 발견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나의 작품으로 재창출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과거에 고착된 불변의 형태로 보지 않고 오늘의 시점과 지평에서 새롭게 그 의미구조를 드러내 놓아야 했다. 그 의미구조의 핵심은 고향의 모습 같은 조화의 생명력이라고 생각한다. 음·양, 물·불, 天·地, 선·악까지도 대립적 요소로 보지 않고 그것의 충돌이 하나의 거대한 생명력으로 통합되는 조화되고 화합하는 건강한 힘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러한 힘은 우리의 정서를 대변하는 아리랑으로 표상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이렇듯이 우리의 정서를 대변하는 아리랑에서는 역사의 고개를 넘어가는 고난과 한, 슬픔이 담겨있다. 그러나 지금의 시점에서는 이러한 슬픔보다는 그 고개를 넘고자하는 의지와 희망을 더 강조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퇴락한 고향을 생각 할 것이 아니라 힘과 신바람이 있는 우리의 고향을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