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2010 · 162×81 cm · 캔버스에 한지 아크릴릭
작가 검수 대기
- · 정확한 연도(2006 또는 2010)와 사이즈(162×130cm 또는 162×81cm) 작가 검수 필요. 본래 별도 등록되어 있던 2006-015 〈백두산〉(162×130, source 90008915318, ar-2006-002 작가 노트 연결)과 본 entry(162×81, source 90097301835, ar-2010-001 연결)가 동일 작품으로 확인되어 본 entry로 통합 (2026-05-26 D+4 dedup). 두 source 포스팅의 작품 정보 차이로 정확 연도·사이즈 작가 확정 대기.
인용
이 작품과 함께 보면 좋은 자료
- 글 평론 2010-10-21 · 김진아
〈신장식의 '금강산'과 세잔의 '생빅투아르산'〉 — 김진아 평론 (2010)
신장식의 <금강산>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세잔의 <생빅투아르산>을 떠올려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 작품들 간의 차이점보다는 유사점이 훨씬 더 분명하게 느껴졌을지 모른다. 가장 현저하게는, 신장식과 세잔 모두 특정 산을 주제로 오랜 기간 작업해왔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이 일견 명백해 보이는 유사점들은 사실상 단지 피상적인 것들일 뿐이다. 오히려, 신장식의 <금강산>은 세잔의 <생빅투아르산>과 정반대이다. 우선 금강산이 의미하는 바와 생빅투아르산이 의미하는 바가 완전히 다르다. 물론 금강산은 신장식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산이겠으나, 그가 그리는 금강산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산이다. 반면, 세잔의 생빅투아르산은 무엇보다도 세잔 “자신”의 산이다.
신장식에게 “우리”가 일차적이라는 말에 함축되어 있듯이, 신장식에게는 대중과의 소통이 중요하다. 세잔은 자신의 감각에 실재하는 산, 즉 자신에게 보이는 바대로의 산을 그리기 위해 실제 산에 모습을 왜곡하곤 했다. 세잔의 <생빅투아르산>들 중에서 어떤 것은 실제 산보다 훨씬 가파르고 거대하며, 어떤 것은 실제 산보다 더 평평하고 넓게 표현되어 있다. 세잔에게 산은 자신의 감각에 실재하는 산이다. 신장식의 <금강산>은 그와 반대로 누구나가 보고 알아볼 수 있는 산, 우리에게 친숙한 산이다.
신장식의 “금강산”이라는 주제를 소통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하기보다는 전통의 모색이나 민족성의 표현이라는 거대한 주제에 초점을 맞춰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분단이라는 정치적 현실이나 통일이라는 민족의 희망과 같은 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주제로 접근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신장식 자신이 자신의 작업에 대해 “우리”라는 공동체를 일차적으로 두고 그것과의 소통을 핵심으로 삼고 있음을 강조한 만큼, 그의 작업을 마주할 때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것은 그 “우리”의 자리다.
우리가 예술작품을 보면서 그 작가를 직접 만난다고 말하는 것은 말 그대로 너무 낭만적이다. 그러나 예술작품을 작가나 관객과는 무관한 독립적인 사물로 보는 관점은 더더욱 상식적이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우리는 분명히 작품을 통해서 작가를 본다. 비록 직접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이라는 매개를 통해 작가의 시선과 감각, 사유의 자취를 따라간다. 신장식의 〈금강산〉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작가와 우리 사이의 소통을 권유한다.
- 글 작가 노트 2006 · 신장식
신장식 작가 노트 〈동북공정과 야스쿠니 사이에서〉 (2006)
요즘 백두산이 관심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저는 주몽을 매주 즐겁게 봅니다. 우리의 건국신화는 여러개 있었으나 그리스 신화보다 관심을 가지지 못한 것은 분명합니다. 해방이후 우리의 근대화는 치열했으나 아직도 주변 논리나 시대에 뒤처짐을 한탄만 하는 패배주의가 세대를 가로질러 남아있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의 시원에 관한 관심이 이어지고 우리의 정체성에 관한 여러 표현과 시도가 만들어지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현상이라 생각됩니다.
독도에 대한 관심은 우리의 분명한 현실이어서 일찍 있어왔으나 고구려, 우리의 고토에 관한 관심은 미미한 수준이었고, 우리의 관심의 가운데 서지 못함은 우리 조국의 분단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북한이라는 엄연한 현실은 이러한 생각과 행동에 제약을 가한(우리 고토에 관한 관심을 가지기에는 너무나 처절한 현실이 가로 막고……) 부분이 분명히 우리 현대사에 있었습니다.
금강산을 갈 수 있게 한 현대의 노력은 우리의 시선을 냉전시대의 의식에서 열려있는 의식으로 이끕니다. 우리는 중국과의 국교정상화 이후에 고구려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세계사에 능동적일 때 우리에게 새로운 선물을 가지게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의 고토에 가장 먼저 발을 옮긴 사람은 사기꾼이라고 해도 발 옮김에 대해 자랑해야합니다. 생각과 행동의 선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현재 중국 집안을 가보면 많은 느낌이 교차합니다. 건너편 강가의 북쪽 사람을 보는 것이 관광프로그램입니다. 민족의 분단이 만드는 현재의 서글픈 모습이며 고구려를 생각할 수 없었던 우리의 자괴감을 관광 상품화하는 현실이 한심합니다. 그런데 이곳에도 우리의 역사를 사랑하고 만나려는 우리의 끈길김은 있습니다.
백두산을 아세요! 백두대간을 땀흘려 탐사하는 젊은이의 모습이 이곳에도 보입니다. 중국식 집에 유리 막에, 그리고 졸고있는 중국여인에 갇혀있는 광개토태왕비는 오늘의 우리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지금의 티벹을 봅시다. 달라이라마는 어린 날 모택동과 만났지만 아직도 타국을 떠돌고 있고 우리나라에는 오고 싶어도 한번도 오지 못했습니다. 몽고에서 특강을 하는 모습에는 몽고사람들의 특별한 감정과 자기정체성에 대한 노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국이 세계의 관심이 없었을 때 냉큼 먹어버린 티벹을 보면 안타까움과 연민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국이 그들의 역사 속에서 지금 보다 광대한 영토를 가진 적이 있습니까? 티벹 라싸에서 네팔 카트만두 까지의 도로를 '우정공로'라고 중국인들은 이름지었습니다. 이름이 그러하니 그들이 도로를 만들고 확충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겠죠! 네팔국경에 졸고있는 한족중국인을 보면 제갈공명도 못한 일을 이들이 만들고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 고구려를 생각한다는 것이 사치는 분명 아닙니다. 티벹공정, 서쪽의 이름 모를 공정 그리고 지금 동북공정, 우리의 영역이 어디에서 충돌되고 역사와 시대 앞에서 어떻게 문제가 될지 우리는 생각해야한다고 느껴집니다.
통일이 우선일 것입니다. 우리민족의 현실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과 역사는 누가 지운다고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고 자위만 할 수 없습니다. 동북공정과 야스꾸니 사이에서 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고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아버지와 아버지 때부터
우리는 정신차려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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