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고원의 만년설
2006 · 117×81 cm · 캔버스에 한지 아크릴릭
이 작품은 티벳의 라싸에서 네팔의 카트만두까지의 여행 중에 라싸에서 장체로 가는 길에 만난 고원의 만년설과 룽다를 그린 그림이다. 얌드록쵸 호수를 지나 여름에 만나는 만년설과 하늘은 초현실적 감흥과 영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너무나 푸른 하늘색은 흰 눈과 검은 바위 때문에 더욱 푸르러 보이며, 룽다와 불탑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 전체의 모습은 웅장하고 비감한 느낌으로 다가오고, 펄럭이는 룽다는 고요 속에 영감을 불러일으켜주며 여행을 마치면 반드시 그림으로 그리리라 다짐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차라리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해발 5300미터, 설산의 봉우리는 7500미터, 담뱃불이 잘 붙지 않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바람의 말’이란 이름을 가진 룽다는 티벳을 여행하며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고갯마루나 길의 경계에 돌무더기를 쌓고 그 위에 다섯 가지 색깔의 천을 매달아놓은 ‘바람의 말’은 고원에서 살아가는 티벳 사람들에게 희망이자 구원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과 행복, 여행의 안녕과 같은 개인적인 염원으로부터 신의 가호와 조상의 극락왕생에 이르기까지 온갖 소망을 담아 바람에 날려 보내는 이 룽다는 티벳 사람들의 마음을 담고 있다.
티벳 고원은 바다입니다. 바다가 변한 고원이어서 히말라야의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티벳 사람들은 ‘바다의 머리’라 표현한다. 티벳 고원의 끝없는 길과 구름 속에 바다가 고원이 되니 ‘너는 지금 어디로 달려가는가?’라며 묻고 있다. 인생은 만남과 또 다른 만남으로 이어진다. 인생은 길이며 여행이며 만남이다. 멀리 보이는 고원의 빛은 이 길을 가는 희망을 준다.
이 작품과 함께 보면 좋은 자료
- 글 평론 2007-10-31 · 최태만
〈라싸에서 카트만두까지 — 맑고 투명한 색채로 표현한 티베트의 자연과 문화〉 — 최태만 평론 (2007)
"라싸에서 카트만두까지"란 제목으로 마련한 이 전시는 2005년 신장식 교수가 나와 티베트를 함께 여행한 기억을 기록한 것이다. 라싸와 카트만두를 연결하는 우정공로(友情公路)를 따라 티베트를 떠나 네팔로 들어갔을 때이다. 에베레스트란 이름으로 더 알려진 쪼모랑마(珠穆朗瑪, Qomolangma)가 보이는 듈리켈 호텔에서 여행기를 출판하고 싶은데 작품을 수록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자 신 교수는 흔쾌히 승낙하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우리는 각자 작업에 착수했지만 『한국현대조각사연구』의 집필을 마무리해야 하는 일정 때문에 나의 글은 여행 중 노트북에 기록해 두었던 짧은 인상기를 다듬는 수준에서 답보만 하고 있었다. 더욱이 티베트미술의 전공자는 아니지만 티베트미술의 역사와 도상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티베트미술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는 무모하고 가당찮은 욕심까지 부리다보니 탈고는 한없이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신 교수는 작품을 끝내놓고 일 년 가까이 글이 끝나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이 기간 동안 티베트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2006년 7월, 베이징에서 출발하여 시안(西安), 란주(蘭州), 시닝(西寧), 거얼무(格尔木)를 거쳐 라싸에 이르는 4,064km 구간을 47시간동안 달리는 칭짱(靑臧)열차가 개통한 것이다. 우리가 여행할 당시는 이 철로가 개통되기 전이었으므로 베이징에서 중국 민항기를 이용해 청두(成都)를 거쳐 라싸로 갔다. 칭짱열차의 개통과 함께 티베트를 찾는 관광객들도 현격하게 늘어 문명의 쓰레기에 대해 고민해야 할 지경이 되었다고 하니 불과 이 년밖에 안 지났지만 티베트가 어떻게 변하였을지 자못 궁금하다. 게다가 라쩨(Latse, 拉孜)를 지나치면서 여러 곳에서 비포장도로를 포장하는 공사현장도 목격했으므로 이제 이 설역고원의 주요 간선도로들은 상당부분 포장되었을 것이다.
티베트 고원의 여러 지역에서 '바람의 말'이란 이름을 가진 룽다를 보기란 어렵지 않다. 고갯마루나 들판에 돌무더기를 쌓고 그 위에 다섯 가지 색깔의 천을 매달아놓은 '바람의 말'은 가혹한 자연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티베트인들에게 희망이자 구원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라싸나 시가쩨(Shigatse, 日喀则)와 같은 역사적인 도시의 불교사원 앞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티베트인들을 보면 그들이 시간을 초월한 삶을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점은 룽다를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가족의 건강과 행복, 여행의 안녕과 같은 개인적인 염원으로부터 신의 가호와 조상의 극락왕생에 이르기까지 온갖 소망을 담아 바람에 날려 보내는 이 룽다는 티베트인들의 마음을 담고 있다. 어디 그것뿐이랴. 티베트 산하 구석구석에서 볼 수 있는 마니석에 새겨진 '옴모니페메훔'이란 육자진언(六字眞言)은 티베트불교가 티베트인들의 삶에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정신의 지주인지를 실감나게 만든다. 고원의 가파른 언덕을 오체투지로 오르고 있는 티베트인들의 남루한 모습을 보면 너무나 투명한 그곳 하늘처럼 그들의 마음이 순결할 것이란 믿음을 가지게 한다. 룽다와 마니석은 그들의 소박하지만 진실한 마음을 담은 것이리라.
신장식 교수의 작품은 하늘이 청명하고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흘러내려 비교적 강수량이 풍부한 티베트 고원의 극적 대비를 이루는 색채를 생각하게 만드는 맑고 투명한 색채를 지니고 있다. 이 색채는 낙천주의자인 그의 성격을 잘 반영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작품은 비포장도로의 그 풋풋한 흙내음을 간직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룽다에서 볼 수 있는 원색의 펄럭임이 있고, 문명에 찌들지 않은 티베트 사람들의 순박하지만 강인한 삶에 대한 존경이 깔려있다. 글은 자꾸 설명하려 들지만 그림은 즉각적으로 보여준다. 설명이 길어지면 지루하고 긴장이 떨어진다. 문리(文理)를 깨치지 못해 자꾸 만연체를 동원해야 안심이 되는 내 글에 비하자면 그의 작품은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여행의 기억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으나, 그의 작품은 설명하지 않고도 티베트의 자연과 문화를 파악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읽는 것일 뿐만 아니라 보는 책을 만들고 싶었던 나의 생각을 실현시켜 주었다. 이 점을 나는 고맙게 생각한다. 그의 작품이 '바람의 말'처럼 우리 가슴에도 잦아들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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