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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합 평론 1989 · 최태만
〈'전통'의 맥을 찾는 작업〉 — 최태만 평론 (1989)
한국미술에 있어서 전통의 문제
한국미술에 있어서 전통의 문제는 단순하지가 않다. 미술의 영역뿐만 아니라 한국문화 전반에 걸쳐 전통의 '창조적 계승'이나 혹은 '현대적 재창조'의 문제는 마치 하나의 당위론적 명제인 것처럼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식은 그것이 원론적 입장에 서 있을수록 전통을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고 신비롭고 초월적이며 영원불변하는 초논리적인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전통의 문제는 단순하게 '꼭 이러저러한 무엇이어야 한다'는 막연한 관념론이나 명분론으로 환원시켜버릴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통의 승계'란 관념적 구호나 유명론에 함몰되어 정작 전통의 풍부한 가능성은 사장한 채 과거의 것을 되새김질하거나 차용에만 그침으로써 오히려 전통 그 자체를 공허한 것으로 만들어 버릴 위험이 있다. 과거에 존재했던 것을 복제한다고 해서 전통의 올바른 계승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전통은 시대와 역사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필요와 요구, 취향이나 목적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통이란 무엇인가?
사전적인 정의에 의하자면 전통이란 관습 가운데서 역사적 배경을 가지며 특히 높은 규범적 의의를 지니고 전하여 내려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문화적 전통이란 인간이 창조해 낸 가치의 집적물, 즉 물질적 문화와 지적 문화가 상호, 보존적으로 통합된 것으로서 실제적이고 생생한 실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긴 역사를 관류하였던 정신적 가치와 공동체의 삶의 의식에 의해 축적되고 발전해온 인간의 지적·육체적 노동의 결과물이며 나아가 삶의 질을 풍부하게 고양시키는 자산이다. 그러나 교조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전통주의자들은 전통을 역동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보수적이며 고답적인 아카데미즘을 전통으로 위장하며, 절충주의자들은 그것을 정태적인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이것저것 주워담아 변종을 만들어 내는 것을 전통이라고 곡해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허상의 우상을 숭배하고자 하는 의식없는 자세에서 빚어진 결과임과 동시에 실천적 모색은 방기한 채 주관적 관념을 전통으로 위장하려는 데서 흔히 빨려들 수 있는 함정이다.
한국미술에 있어서 전통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의 관점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지배계층의 고급 취향과 미의식을 존중하는 입장이 있고 둘째, 우리 민족의 기층사상인 샤머니즘과 음양오행사상·불교·유교·도교 사상에 기초한 기층민중의 미적 전통을 천착하려는 태도가 그것이다. 이 두 관점은 모두 일단 우리 민족의 자기동일성이 상실되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용인하고 있다. 전자가 중국을 통해 수입된 주자학이나 성리학이라는 학문적 기반과 더불어 중국의 화론을 이어받고 있다면 후자는 민족의 토속신앙인 샤머니즘을 근간으로 하되 비록 외국에서 도입된 것이지만 토속화한 외래종교를 바탕에 깔고 있다.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이른바 80년대의 민족·민중미술 일각에서 앞서 말한 두 관점을 극복하고 민중의 자발적이고 당시대의 필요에 의해 생산된 실용적이고 신명넘치는 미술의 전통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쨌든 민간신앙적 측면에서의 무속과 점·복·예언, 풍수·참위(讖緯) 등을 위해 쓰여진 각종 도구나 기재 속에 등장하는 미적 표현물과 노동의 고달픔이나 자연의 각종 재해 속에서도 놀이를 통해 그것을 이겨내고자 했던 기층민중들의 놀이판에 쓰여졌던 여러 악기나 도구 속에 나타나고 있는 미적 양식과 취향은 지배계층의 관조적이고 사변적인 것과 다른 것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고급한 지배 계층의 미술전통에 대한 평가와 교육에 비해 절실한 삶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기층 문화의 전통은 그리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설령 민화 등의 민속적 예술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고 할지라도 거의 신화적인 맥락에서 숭배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문제는 전통을 고착된 것으로 바라보고 파악하고자 하는 태도에 있는 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할 때 전통에 대한 논의는 항상 원론적 차원에서 겉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전통이 현재에도 유용하며 충분히 생산적이고 실질적인 민족공동체의 자산임을 자각하고 이것을 실천적으로 재생산해 내기 위한 노력이 실제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전통의 탐색 그 가능성과 한계
신장식의 작업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우리 것 찾기'이다. 이것은 현대미술의 관행과 제도 속에서 교육받고 성장한 그에게 대단한 모험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대학교육기간동안 이른바 현대주의의 각종 규범이나 법칙을 충실하게 학습하였고 또 이러한 것을 좇아 습작시기를 보낸 바 있다. 그러한 그가 전통에 눈을 돌리고 그것에서 자신의 언어를 발견하고자 했던 사실은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신장식이 전통에 대해 관심을 돌리도록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88서울올림픽〉이다. 그는 올림픽 개·폐회식 행사의 미술부문 실무자로 활동하면서부터 한국의 전통적 미술에 대한 조사와 연구에 착수하게 된다. 당시 그와 함께 이 행사를 준비·진행했던 실무자들은 세계인의 축제한마당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합의에 도달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적인 것이 무엇인가 찾아 나서게 되었고 수집된 것을 토대로 개·폐회식 행사를 준비했던 것이다. 그러나 1여 년에 걸친 작업과정에도 불구하고 그가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은 주로 문헌자료의 범위에 머무르는 것이었다. 문헌에 의한 전통의 연구가 가질 수 있는 결정적 한계는 전통을 일정한 틀로 한정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전통적 맥락에서의 효용성이나 내용적 측면에 대한 고찰 보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전통적 대상을 단지 심미적·장식적 차원에서 전치시켜 버리는 것이다. 올림픽 행사에의 참여가 그의 사고와 작업방향을 바꾸는 전환점을 제공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관주도의 지극히 관료적이고 물량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그의 작업의 한계까지 가늠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러나 올림픽 개·폐회식 행사의 미술담당 실무자로 참여하기 이전부터 신장식은 한국의 전통 문양이나 한국적이라 명명되어지고 있는 여러 이미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습작을 시도했던 적이 있다. 단지 그것은 말 그대로 모색의 과정이었지 본격적인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러한 전통에의 탐색이 현대미술의 온갖 현란하고 정치한 논리보다 자신의 체질에 더 잘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느끼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말하고 있다. 어쨌든 전통적 양식이나 내용에 대한 모색자체에만 머물러 있던 단계에서 올림픽이란 거대한 행사를 위해 여러 민족학자의 자문을 구하고 박물관이나 개인연구실을 드나들며 자료를 수집, 일을 진행하면서 그는 자신의 현재 작업을 끌어낼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이다.
신장식이 무엇보다 관심을 가지고 조사하고 이것을 토대로 실제 자신의 작업에 적용한 것은 깃발이다. 기는 '우리 것'을 찾는 과정에서 선택된 것이지만 그가 유달리 이것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게 된 것은 옛날에 여러 가지 필요에 의해 쓰여졌던 각종 깃발의 도형 자체에서 응축·발산하는 힘과 건강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농업경제가 사회구성체의 핵심이던 농경사회에서 쓰여졌던 농기로부터 군기와 왕의 행차때 쓰여졌던 여러 종류의 깃발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나름대로의 이유와 내용을 가지고 일정한 격식에 의해 제작되고 사용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과거의 유물을 농경사회가 아닌 산업사회, 더 나아가 후기 산업사회라고도 하는 현대에 어떤 방식과 내용적 맥락에서 되새길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자칫하면 과거에 대한 향수나 회고의 수준에 머물러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 깃발을 포함하여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 내었던 여러 사각이미지들이 넉넉히 정신적 배경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상징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믿음을 작품의 내용 속에 투여하고 있다.
예컨대 이번 개인전에 출품한 작품 중에서 가장 시각적 호소력이 강하면서 다의적인 상징체계들로 구성된 〈아리랑 - 아침〉이란 작품은 그의 믿음이 어디에 기초한 것인가를 느끼게 한다. 화면 가운데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중심으로 네 방위를 의미하는 청·백·주·현의 색이 자리하고 있고 이것을 전통적인 깃발에 등장하는 화염각(火焰角: 農旗에서는 이러한 양식을 '지네발'이라고도 한다)이 감싸고 있다. 사방위를 상징하는 4가지 색깔과 인간의 상징인 노란색을 '오방색'이라 하는데 이것은 음양오행 사상에 기초한 우주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활활 타오르고 있는 태양속에 떠오르는 새는 또한 비상하고자 하는 의식의 표현인데 이것의 원형을 그는 고구려 벽화에서 찾고 있다. 즉 선녀가 해를 들고 승천하려는 모습을 그린 벽화에서 그 내용과 형식을 인용한 것이다. 이 작품은 따라서 일출의 장엄함을 그린 것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새로운 날을 열고자 하는 의지와 힘의 발산을 표현한 것은 고구려 미술에서 중요하게 보여지는 특징이며 또한 조선시대에 제작되었던 〈일월부상도(日月扶桑圖)〉같은 그림에서도 이러한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힘을 발견할 수 있다. 전설적인 성상인 오봉산 위로 솟아오르는 해의 기운은 화염각이 단지 장식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기의 발산과 흡수를 상징하는 도상임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결국 이 작품은 하나의 거대한 깃발이면서도 힘의 상징이며 나아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에의 기원을 의미하는 다층적 의미구조에 의해 조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밝고 명쾌한 색상과 단순명료하면서도 분명한 내용을 담지하고 있는 형식은 단연히 민화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그런 점에서 신장식의 작업에 중요한 동인을 제공하는 것이 민화임을 알 수 있다. 그것도 어둡고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밝고 긍정적이며 미래지향적인 면에서 말이다. 그의 깃발 그림 속에는 이러한 민화적 도상뿐만 아니라 가장 원초적인 형태이면서 우주 삼라만상을 제어하는 법칙, 우주만물의 근원인 태극(太極)을 형성하는 곡옥(曲玉)과 벽사(抗邪)의 의미로 그려졌던 닭·방상시의 얼굴 등 주술적이며 민간신앙적인 도상들도 많이 등장한다. 농업경제체제에서 풍요를 희구했던 상징적 악기인 도(寞)와 은율사자놀이의 사자를 해학적으로 재구성한 〈탈〉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 속에 보이는 넉넉하고 긍정적인 시각은 고통과 고뇌에 의해 산출된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재미를 느끼게 만든다. 또한 그것이 단순히 흥미있는 것에만 끝나지 않고 보다 의미있는 내용까지 유추하게 만든다는 데서 그의 장점을 발견할 수 있다. 나아가 현실에의 비판은 숨겨진 방식, 즉 풍자와 해학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다만 그의 작품이 도해적인 면을 너무 강하게 띠고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그러다 보니 의도한 내용을 온전하고 입체적으로 구현하지 못한 채 평면적이고 설명적으로 나열해 놓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점은 깃발을 평면으로부터 약간 돌출시키고 그 배경을 이루는 화면을 현대적 감각의 드로잉으로 처리한 것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연필 드로잉의 배경이나 장식적인 면이 지나치게 두드러지는 나뭇가지의 첨가 등은 다소간 절충적인 한계까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이러한 도상이 산업사회란 이 현대사회적 삶 속에서 얼마만큼의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 자신이 숙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므로 지금 당장 명쾌한 결론을 기대할 수는 없다. 단지 현대미술의 저 광활한 대지속에서 자칫 망각해 버리기 십상인 우리의 토양과 체질을 무엇인가를 반성하고 그것을 다시금 발육시키고자 하는 의욕이 얼마나 발전된 종묘법을 찾아내고 우리의 풍토와 환경에 맞는 결과물을 재생해 낼 수 있는가 다같이 연구해 보아야 할 것이다.
![[관련 자료] 신장식 작가의 1989년 깃발 작품 4점이 콘크리트 바닥에 펼쳐진 모습 — 호랑이·꽃 도상 등 민화·민속적 모티프 깃발 회화 시리즈 (작가 블로그에서 수집)](/archive/ar-1989-008/01.jpg)
- 복합 평론 1989-07-01 · 김영재
아트포스트, 〈아리랑의 메타언어적 가능성〉 — 김영재 평론 (1989)
전통적 도상의미를 갖는 소재를 등장시키고, 이것을 민족정서에 기반하는 미의식에 입각하여 색상을 창출하고 도해화하는 신장식의 작업을 소개합니다. 이러한 맥락의 작업은 氏의 평면, 오브제, 입체 등 다각적으로 증폭시키는데 전통의 맥잇기, 민족정서의 현대화 시도에 열중하는 작업 과정을 풀어보고 그 의의를 찾아본다. ⟨편집자⟩
신장식의 전시는 올림픽 이후의 한국미술이 어떠한 위상을 가져야 할 것인가, 세계 속의 지역언어로서 국제적인 공감대를 형성케 하는 어법이 어떠한 것일까를 생각케 하는, 그야말로 시의적절한 전시회라고 생각된다.
서울 올림픽은 — 마치 지각의 변동이나 협곡의 끝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느끼지 못할 그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지켜보고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거대한 변혁임을 증명할 수 있듯이, 엄청난 힘으로 우리에게 파장을 던져오고 있다. 서울 올림픽 이후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많은 외국의 작품전을 기억하자. 소련현대미술전을 위시하여 헝가리현대미술전, 유고의 에도 트리티겐쥬을 포함한 동구권 미술전들과 직접 대담할 기회를 가진 바 있고, 아르덴쥬, 라띠 콘틸의 경우, 그리고 독일 인상주의 판화전, 바우하스전과 아울러 눈이 번쩍 띌만한 물량으로 보는 사람들을 압도한 바, 독일 현대회화전도 몇년 전이었으나 기대하기가 어려운 사정으로서 주목해 볼만하다. 경위야 어떠하였건 — 외국작가들이 백억불 흑자의 신흥공업국이니만큼 투자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거나, 한국민으로서는 바라는 대로 올림픽에 보여준 시민정신에 감복했거나, 이력서에 이제는 한줄 넣어주어도 될만한 나라들이 인정해 나간데 마치 개화기 조선의 닫힌 문을 열고 열강들이 몰려오듯이 대형전시회와 중량급 작가들이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신장식의 전시는 이러한 미술판도가 격변하는 와중에서 우리의 것을 육화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것을 세계화 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쳐진다. 여기에서 가능성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이유를 신장식이 쓰고 있는 어법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신장식의 그림은 평범한 언어들 — 우리들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쓸 수 있는 어휘들이 모여 설화적이거나 상징적이라고 불리울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화면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먼저 우리의 일상언어를 살펴보자. 그것은 명칭의 언어, 의미의 언어, 그리고 개념의 언어로 나뉘어지게 된다. 일테면 '이것은 의자이다'라고 말할 때 의자는 명칭을 가리키는 지시언어이다. 그러나 '의자는 의자다'라고 말할 때는 의자를 포함하지 않을 수 있는 것들의 기능을 가리키는 의미언어가 된다. 여기서 다시 의자에 사형장에 쓰이는 의자를 일컬을 때는 상황에 따라 영광이거나 죽음 등의 개념을 부여하게 된다.
신장식의 그림에서 이 언어의 개략적인 구분에 따라 예를 들어 본다면 「탈-Ⅱ」(도판 1)은 명칭의 언어에 해당된다. 질료와 표현의 방향제시를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겁고 기명성, 즉 막둑이거나 은원탈출의 탈이거나 식별가능한 이름이 먼저 떠오르게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Ⅰ-귀신쫓기 Ⅲ」(도판 2)는 의미의 언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의자라는 말 대신 앉는 것이라는 의미가 강조된 경우와 마찬가지로 귀신과 쫓겨남이라는 구체적인 지시언어나 상황제시 대신 봉황과 깃봉이라는 벽사(辟邪)의 어휘가 대체되고 있다. 반면에 「아리랑-기쁜날」(도판 3)은 개념의 언어로 비유될 수 있다. 여기에는 아무런 구체적인 지시언어가 보이지 않는다. 따뜻한 색채를 주조로 하는 화면은 장고와 부채 등에서 보일 수 있어처럼 그렇게 생각되는 삼태극과 봇의 형상으로 보일 수도 있으며 형체가 명칭을 거세당하고 아리랑이라는 추상명사를 구체화하는 표상어로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신장식의 그림은 순서대로 「탈-Ⅱ」 「Ⅰ-귀신쫓기」 「아리랑-기쁜날」로 그 심도가 깊어져서 「아리랑-기쁜날」에 이르러서 신장식이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언어가 구현된 것처럼 생각되거나 그것이야말로 한국미술의 정수를 표현하는 방법이 될 것처럼 느낄지도 모르겠으나 이들의 언어는 우리 일상의 언어가 미술의 언어로 사용된 것이다.
그렇다면 미술의 언어는 어떤 것일까? 나는 그것을 사람들이 별로 저항감을 느끼지 않고 쓰고 있는 말 중에서 골라 메타언어(Meta-Language)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언어학에서 언어를 분석하기 위해 쓰는 언어라는 뜻이 아니라 일상의 언어를 뛰어넘는 초언어(超言語)라는 뜻으로 쓴다는 이야기이다. 그런 전제하에서 나는 이 메타언어가 시의 제목이거나 음악의 상태를 표명한다고 주석을 달고 있다. 여기서 다시 신장식의 「아리랑-아침」(도판 4)에서 어떻게 메타언어가 형성될 수 있는지 살펴보자.
"상서로운 새가 깃든 태양이 금강산 일만이천봉 위에 장엄하게 서광을 던지면서 어둠을 몰아내고 있는 청명한 아침"이라고 해설을 붙인다면 너무 설화적인 산문의 형식이 되지 않을까? 물론 그림에서 이러한 명칭의 어휘들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이 산문을 대수함수의 세계라 보고 미분하여 의미를 끌어내 보자. "조국의 어둠을 헤치는 상서로운 아침의 태양"이라고 말하려 한다면 여기에서는 명백히 명칭언어들이 빠져들어가게 됨을 알 수 있다. 즉 동비중으로 갈려 있는 태양=새, 어둠=검은 색면,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형상이 적어도 부등호관계이거나 혹은 생약의 과정을 거쳐야 되지 않으냐는 것이다. 이 의미언어를 다시 미분해 보자. "상서로운 조국의 아침"이라고 함축되고 보면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어둠을 헤치는 빛의 다발이 뱀의 다리처럼 거추장스러운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아리랑의 아침'이라는 개념언어에 어떤 명제가 보여주는데도 「아리랑-아침」이라는 것을 택만 시의 제목 같은 함축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적어도 몇 번의 생각과 미분의 과정을 거쳐 군더더기를 뺀 후에야 흥겨운 노랫가락에 맞춰 어깨춤을 출 수 있을 법한 화면으로 나타나리라는 것이다. 기실 신장식이 생각하는 아리랑이 그러하리라는 아련함의 유추와는 달리 그가 알고 있는 아리랑이라는 것은 구천을 떠도는 망령의 호곡이 현재의 가슴을 짓눌러 움쩍달싹할 수 없게 만드는 어떤 처량함 혹은 처절함이라고 체험을 통해 느끼지만 이러한 체험은 누구에게나 강요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볼 때, 신장식의 그림에는 우리가 미술의 언어라고 부르고 있는 메타언어보다는 설화적인 일상의 언어가 더 강조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신장식의 그림인가. 어떠한 무엇이 시선을 끌기에 신장식의 그림인가.
⟪신장식이 일상의 어휘를 도입하는데도 끈끈한 한국적인 체취를 느끼게 하는 것은 한국적인 땀냄새에로 접근하는 방향 지위진 노력이다. 신장식이 소멸법에 의한 목판화를 선택하게 되는 것은 한국인의 체질로서 어떻게 보면 자연발생적인 귀추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나는 신장식의 그림에서 어떤 짜릿함을 본다. 그것은 신기한 것을 발견했을 때 오는 희열과 흡사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예기치 않은 곳에서 기대했던 것보다 눈을 끄는 것을 발견했을 때 오는 느낌이 사실상 오늘의 이 나라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세계에 접근해야 할 가장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내 눈에 신장식의 그림은 신기한 것으로 부각되었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세계인에게 발길을 멈추게 가깝게 다가서서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주며 구매의욕을 불러일으키고, 그들이 기억하거나 소유케 하자는 것이 한국작가들이 세계무대로 도약하려 할 때 기본전략이 될 수 있다고 보면, 신장식의 그림세계는 충분히 안에서의 공감을 형성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공감대라는 것이 하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것이 저러하리라는 느낌이라 한국적 감수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경우라 할지라도 세계인이라는 어법을 이해한다면 신장식의 그림에서 어떤 짜릿한 느낌과 한번 다가서서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다시 신장식이 일상의 어휘를 도입하는데도 끈끈한 한국적인 체취를 느끼게 하는 것은 한국적인 땀냄새에로 접근하는 방향 지위진 노력이다. 신장식이 소멸법에 의한 목판화를 선택하게 되는 것은 한국인의 체질로서 어떻게 보면 자연발생적인 귀추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소멸법에 의한 다색판화를 제작함에 있어 여러 개의 판을 쓰는 대신 하나의 판을 점차로 깎아 나가면서 일정 수량의 판화를 찍어내는 기법이며 판화 본래의 한국인의 취향에 잘 어울리는 제작기법이라고 생각한다. 대장경판이 금속활자가 아니라 목판이었다는 이유는 생각해 보면 알려지고 한국인에게 정신적으로는 육체를 낮추어 오랜 정성을 기울여 헌신함으로써 얻어지는 신앙적인 것이며, 그 결과로서 투명한 의식과 순수한 정신에 이를 수 있고, 당연히 일회적 완결성으로 연결되어지는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목판이 선택되었을 것이며, 지속적이고 한국적인 정신의 구현에서 오는 성취감을 만끽하기 위해 소멸법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일회적 판각이 이루어진다.
토 갤러리에서 열린 바 있는 신장식전에서의 경험과 감회를 바탕으로 소멸법에 의한 목판화들이 제3갤러리에서 선보인다. 신장식이 메타언어를 위해 일상의 언어를 얼마만큼 비축하고 한국적인 세계어를 얼마만큼 효과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지 지켜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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