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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 기획기사 1995-01

공간(SPACE) 1995년 1월호 — 신장식 〈금강산 그리기〉 작가 기고 (1995)

관련 작품 (2점)
다룬 전시
〈금강산〉 포스터
〈금강산〉
기간
1995-02-21 — 1995-03-03
장소
표갤러리 (서울)

요약

1995년 1월호 〈공간(空間) SPACE〉(ARTS & ARCHITECTURE & ENVIRONMENT) 잡지에 게재된 신장식 작가의 〈금강산 그리기〉 기고. 작가가 「아리랑」 주제 작업을 거쳐 자연의 생명력을 그리려는 관심으로 금강산을 만나게 된 과정과, 정선·민화·창경궁 희정당 김규진의 금강산도에서 받은 영감, 분단으로 갈 수 없는 금강산에 대한 민족 정서를 다루며 작가의 〈금강산전〉 의미를 짚는다. 박현주(Park Hyun-Joo)의 영문 번역이 함께 게재됐고, 잡지 표지에는 작가의 〈Mt. Kumgang〉(1994, 종이·아크릴릭) 작품 도판이 사용됐다.

정보
출처
공간 (SPACE)
저자
신장식 · 박현주 (영문 번역)

본문

〈금강산 그리기〉

신장식 · 박현주 (영문 번역) · 공간 (SPACE) · 1995-01

「아리랑」이란 주제로 지난 몇 년간 회화, 판화를 통하여 우리민족의 희망적인 정서를 표현하려 노력하였다. 요즘 나의 관심은 자연의 생명력을 그림으로 나타내려는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나는 지금은 갈 수 없지만 우리민족의 산인 금강산을 만나게 되었다. 정선의 그림에서, 민화에서 또 창경궁 희정당에 걸려 있는 김규진의 금강산도에서 웅혼한 생명력을 느낀 것이다. 과거의 자료와 오늘의 자료를 토대로 나의 금강산전을 열면서 새로운 제안을 해본다.

『우리 속담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다. 아름다운 금강산에 대한 민족의 정서가 베어 있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오늘날 민족의 분단으로 인하여 갈 수 없기 때문에 더욱더 금강산에 대한 그리움은 깊어간다. 그 곳에 갈 수 없다고 해서 금강산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민족의 보배를 소중히 하려는 노력은 그 관심의 구체화에서 찾을 수 있다.

금강산 그림은 고려때부터 조선시대, 그리고 일제시대에도 줄곧 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북한에서도 수없이 많은 금강산 그림이 제작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은 왜 금강산그림을 그처럼 사랑했는가. 왜 그처럼 많은 금강산그림을 그렸는가. 왜 우리는 금강산이 세계제일이라고 믿어버리게 되었는가.

금강산은 우리 민족의 마음이 한 곳에 모이는 제단이었으며 우리의 가슴속에 옛날부터 살아오던 명산이었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신앙의 대상이었다. 모든 한국 사람이 금강산을 사랑하고 그 아름다움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중국 사람들조차도 한국 땅에 태어나 살면서 금강산을 한번이라도 보았으면(願生高麗國 一見金剛山) 하고 바랐던 것이다.

민족의 성역, 상서로운 기운, 정기, 영혼, 하늘의 음악, 꿈틀거리는 기상, 사랑, 꿈, 그리고 기쁨, 행복을 누리는 축복, 조용한 그러나 끝없는 평화, 자연의 조화, 우주의 신비, 자연과의 합일을 생각하게 하는 금강산을 과거와 현재의 예술작품과 자료를 통해 조명해 봄으로써 다시금 금강산을 이해하고 느끼는 기회를 만드는 것은 통일에 대한 민족의 희망을 가시화시키는 좋은 행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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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블로그 포스팅 90088746128에서 〈공간 SPACE〉 1995년 1월호 자료 4장 수집(01 표지·02·03 작품 도판·04 작가 작업실 사진+캡션 page). 본문 한글이 작가 원문, 영문은 박현주(Park Hyun-Joo)의 번역(영문 본문 끝 'Translated by Park Hyun-Joo' 명시). 영문 본문은 작가 블로그에서 multimodal OCR로 추출됐고 명백한 OCR 오타(cofonial→colonial, rulc→rule, korcans→Koreans, imgacs→images, peninsuta→peninsula, te→the 등)는 자연 영문으로 정정해 body_en에 보존 — 작가 검수 시 원본 잡지와 정확 대조 권장. 잡지 본문에 게재된 작품 도판 2종은 별도 작품 데이터로 분리 — 〈Mt. Kumgang 162×130 1994〉는 신규 작품 1994-007로 ingest(잡지 인쇄본 이미지를 main image로 일시 사용, 작가 검수 시 더 좋은 작품 사진으로 교체 권장), 〈Mt. Kumgang 240×120 1994〉는 1994-001 〈금강산-만물상〉(244×122cm)과 동일 작품 추정으로 양방향 연결. archive images에서는 잡지 page 자체 시각(표지·작가 작업실 사진) 2장만 유지해 작품 데이터와 매체 자료를 분리. 본 잡지 기고가 1995년 2월 표갤러리 〈금강산〉 개인전(ex-1995-001) 사전 보도·전시 평론 글로 추정되어 archive.exhibition meta로 연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