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식 판화전 〈아리랑〉 작가 노트 (1989)
![[다룬 전시] 〈아리랑〉 포스터](/works/1989-004.jpg)
- 기간
- 1989-08-23 — 1990-06-23
요약
88서울올림픽 폐회식의 청사초롱 행렬을 직접적 소재로 한 〈아리랑〉 시리즈 작업 노트. 단국대 의상박물관 청사초롱의 현대적 재해석, 소멸법(消滅法) 다색 목판 기법 적용. '한'이 아닌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는 희망과 의지'의 정서.
- 출처
- 작가 블로그
본문
〈아리랑〉
1989-08-23
기쁜날을 청사초롱들이 흔들리는 모습으로, 목판으로 표현한 작품. 88년 올림픽 폐회식에서 마지막 작품으로 만든 '안녕'에서 모든 출연자와 관객이 청사초롱을 흔들며 올림픽의 성공을 기념하였고 모든 나라로 돌아갈 모든이에게 청사초롱을 흔들어 인사했을 때의 모습이 직접적 소재입니다. 이 청사초롱은 단국대 의상박물관에 있는 초롱을 현대적으로 다시 디자인하여 사용했습니다. 다색목판의 제작방법은 소멸법이라는 방법을 목판에 새롭게 적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아리랑은 우리민족의 정서를 가장 잘 대변하는 민요입니다. 저는 아리랑에서 한의 정서를 강조할 것이 아니라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는 희망과 의지의 정서를 강조하여 표현하려 합니다.
#작가노트 #아리랑 #판화 #목판 #청사초롱 #소멸법 #올림픽
관련 아카이브
- 글 기획기사 2026-05-26
〈아리랑〉 시리즈 4점 (1991), 대영박물관 소장의 의미는?
1991년 11월 23일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이 신장식 작가의 〈아리랑〉 시리즈 목판화 4점을 한국 컬렉션에 한 차례에 수용했다. 4 작품의 acquisition number는 1991,1123,0.11부터 0.14까지 연속된다.
4 작품의 모티프는 둥근 사각형의 격자(0.11) · 동심원 안 촛불의 행렬(0.12) · 부채형 위 풀어낸 색채(0.13) · 아치형 창의 반복(0.14)으로 서로 다르다. 한 곡의 민요가 약 3,600개 variation을 갖는 〈아리랑〉의 본질에 대응하듯, 작가는 같은 컨셉을 매번 다른 시각 언어로 변주했다. 특히 0.13은 작가가 시리즈명("아리랑-아침 III")과 Edition 10/11을 명시한 부채형 판화로, 시리즈 안 본인의 작업 흐름을 표시한 가시 사례다.
대영박물관 한국실(Room 67, The Korea Foundation Gallery)은 본 4 작품 등록 9년 후인 2000년에 한국국제교류재단의 후원으로 신설되었고, 2014년 국립중앙박물관 grant로 재정비됐다. 박물관 측은 한국 컬렉션 정책을 "definite Korean quality"의 작품을 우선 수용한다고 명시해 왔다 — international-style modern art와 구분되는 한국 정체성이 명확한 작품을 선별 수용하는 입장이다. 본 1991년 acquisition은 한국실 신설 한참 이전인 9년 전 acquisition으로, 박물관 측 동시대 한국 미술 적극 수용 흐름의 초기 사례에 해당한다.
화가의 작품이 대영박물관에 영구 수용된다는 사실은 단순한 컬렉션 추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대영박물관은 1753년 설립된 세계 최초의 국립 박물관이며, AD 300년부터 동시대에 이르는 인류의 시각 문화 전반을 한 자리에 모은 기관이다. 작품이 그 한국 컬렉션의 일원으로 영구 보존되고 학자·연구자·visitor에게 공개된다는 것은 그 작가의 시각 언어가 한국 미술사의 한 단편으로 인정된 신호로 해석된다. 박물관 측 설명에 따르면 최근 한국 미술 가격 상승으로 "주요 작품 acquisition이 점점 어려워졌다"고 명시되어 있어, 1991년 시점의 4점 한 차례 수용은 비교적 적극적 acquisition 시기로 기록된다.
〈아리랑〉은 한국과 북한 양국이 2012년·2014년에 각각 UNESCO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한 한국 민요로, 약 60개 base version에 3,600개 이상의 variation으로 전승되어 왔다. 한(恨)의 정서 — 20세기 식민·분단 경험에서 비롯된 슬픔과 인내 — 와 함께 공동체 회복·평화 화해의 양면 정서를 담는다. UNESCO는 본 곡을 "사회적 관계 강화·상호 존중·평화로운 사회 발전에 기여하며, 사람들이 감정을 표현하고 슬픔을 극복하도록 돕는 곡"이라 표명한다. 작가의 1989-1991년 〈아리랑〉 시리즈는 본 컨셉을 동시대 시각 언어로 풀어낸 시각화로, 4 작품의 다양 모티프는 한 곡의 3,600 variation에 대응하는 시각적 다원성을 보여준다.
작가는 1989년 베를린 Galerie Roho에서 〈아리랑〉 시리즈로 첫 해외 개인전을 열었고, 1990년 오사카 ON GALLERY로 순회했다. 같은 시기 1989년 〈아리랑-기쁜날 Ⅴ〉으로 제8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하며 국내 인정을 받았으며, 1989·1991·1993년 와카야마 국제 판화 비엔날레에서 2등상을 수상해 일본 미술계의 인정을 받았다. 1991년 11월 대영박물관의 본 4점 한 차례 수용은 작가의 이 흐름의 결정적 진입점에 해당한다 — 한국실 신설(2000) 9년 전, UNESCO 무형문화유산 등재(2012) 21년 전, BTS 5집 〈Arirang〉 명명(2026) 35년 전이라는 시간 격차를 두고 본 acquisition이 자리한다. 작가의 1989-1991년 〈아리랑〉 시리즈 활동은 본 컨셉의 국제 무대 진입 초기 흐름의 결정적 사례를 만들었다.
보도 매체 (4)
- The British Museum 1991
- The British Museum 1991
- The British Museum 1991
- The British Museum 1991
-
- 글 평론 1989-08-23 · 최태만
〈아리랑 : 자기긍정과 너그러움〉 — 최태만 평론 (1989)
신장식의 작업을 지배하는 일관적인 주제는 우리 민족의 의식과 정서 속에 뿌리내리고 있는 낙천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의지이다. 이러한 주제는 그의 작품에서 〈아리랑〉이란 명제로 드러나고 있다.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구전민요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아리랑은 보통 한(恨)의 정서를 나타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이란 소극적이고 체념적인 감정을 반영하고 있는 단순한 후렴구이거나 의성어만은 아니다.
아리랑은 현실의 고통과 억압으로부터 보다 나은 미래로 넘어가고자 한 민중들의 염원을 담고 있다. 예컨대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란 노랫말은 나를 버리고 떠나가는 님을 주체로 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 고개를 넘어가는 주체인 것이다. 이때 이 고개는 모순과 질곡으로 가득 찬 현실을 상징한다. 결국 아리랑은 이러한 모순에 찬 현실을 회피하거나 단념하여 그 속에 안주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아리랑은 애상과 비극의 정서가 왜곡된 넋두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낙천적이고 현실지향적인 콧노래도 아니다. 그 속에는 현실적 삶 속에 항상 나타나는 이러한 정서 — 기쁨과 슬픔, 절망과 희망, 좌절과 떨쳐 일어남, 부정과 긍정, 분노와 용서, 비극적인 것과 낙관적인 것이 복합적이고 총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아리랑은 노동이란 사회적 실천을 통해 현실의 제모순을 수용하고 그것을 뛰어넘고자 한 우리 조상들의 변증법적 삶의 자세와 방식을 반영한 미래지향적 의식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신장식이 아리랑에서 특히 주목하고 있는 것이 그 속에 감추어진 이러한 긍정적 세계관이다.
그는 아리랑 속에 담겨진 진정한 가치를 찾아내고 그것을 자신의 독자적인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미 작년의 토갤러리에서의 회화전과 제3갤러리에서 가진 판화전을 통해 이와 같은 노력의 한 결과를 드러낸 바 있다. 그는 아리랑이 담고 있는 복합적인 의미를 시각적으로 구체화하기 위해 민화나 무속화, 전통적인 문양이나 시각적 상징물들에 대하여 연구해 왔다. 이러한 전통적인 물건들(청사초롱, 오방위색과 색동, 깃발, 태극과 비천상·연화문 등의 종교적 이미지)은 실생활에서 사용되었던 것으로서 심미성과 실용성, 상징성을 갖추고 있는데, 그는 이 물건에 내재된 의미를 새롭게 해석해내고 있다.
즉 〈아리랑 — 기원I〉이란 연작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작품 속에 도입되고 있는 전통적인 물건은 그의 긍정적 시각을 드러내는 하나의 상징인 것이다. 이 연작은 단순화된 수많은 촛불로 구성되어 있다. 기원이란 표제에서도 드러나거니와 촛불은 정화(淨化)나 염원의 상징이다. 이것은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둠을 밝히는 도구란 실제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다. 그 구성으로 보아 마치 수많은 불상을 안치해 놓은 사찰의 대웅전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이 작품은 수많은 촛불이 상단 가운데 부분의 커다란 원을 향해 제각기 조그만 빛을 발산하고 있어 그가 주제로 삼고 있는 문제 중의 하나인 상생(相生)과 통일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소박한 소망들의 집합일 뿐만 아니라 작은 빛이 모여 이루어낸 광명의 현란함이기도 하다. 이 불꽃의 총화는 고통과 모순(어둠)을 떨치고 일어서려는 건강한 의식의 결합인 것이다.
신장식의 작품이 담지하고 있는 내용은 이러한 건강성에 바탕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쾌활하고 밝은 색채와 단순명료한 형상을 통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분명하고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특히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이러한 내용과 형식을 판화란 매체에서 성공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것으로 목판을 선택했다. 목판은 재료와 기법에 있어서 그의 체질에 잘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가 염두에 둔 내용을 소화하는 데 적절한 것이라는 점을 그는 다양한 종류의 판화를 제작하며 체험적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특히 그는 소멸법(消滅法)이란 기법을 독자적으로 발전시킴으로써 목판의 표현의 한계를 뛰어넘어 목판의 풍부한 맛과 가능성까지 열어놓고 있다. 나무를 깎아내어 찍는 행위의 반복을 거치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형상은 수공적인 판화의 매력을 그대로 반영해 준다. 즉 그 이미지는 작가의 계획과 의지에 우연적인 효과는 물론 재료 자체가 가진 특성(나뭇결)까지 결합된 독특한 아름다움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신장식은 목판이 자신이 추구하는 내용과 의미를 가장 적절하게 수용할 수 있는 매체임을 잘 알고 있다. 더욱이 그는 나무란 재료가 배타적이지 않고 수용적이란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한다. 즉 그의 작품의 주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목판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이 지닌 이러한 장점은 원천적으로 그의 낙관적 세계관에서 연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너그러움과 자기긍정의 정신적 넉넉함을 동반한 확신에 기반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예술을 지고한 그 무엇으로 파악하려는 시각을 경계한다. 그러한 시각은 자칫하면 예술을 비교적(秘敎的)인 신비의 연막 속에 감춰버리거나 난해한 관념이나 이론에 종속시켜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특별히 전통적인 물건 중에서 미의식과 쓰임새를 다 같이 만족시켜주었을 뿐만 아니라 민간 속에서 널리 사용되었던 것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이 지닌 매력은 세계와 자신에 대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시각, 즉 의식의 건강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 복합 평론 1989-07-01 · 김영재
아트포스트, 〈아리랑의 메타언어적 가능성〉 — 김영재 평론 (1989)
전통적 도상의미를 갖는 소재를 등장시키고, 이것을 민족정서에 기반하는 미의식에 입각하여 색상을 창출하고 도해화하는 신장식의 작업을 소개합니다. 이러한 맥락의 작업은 氏의 평면, 오브제, 입체 등 다각적으로 증폭시키는데 전통의 맥잇기, 민족정서의 현대화 시도에 열중하는 작업 과정을 풀어보고 그 의의를 찾아본다. ⟨편집자⟩
신장식의 전시는 올림픽 이후의 한국미술이 어떠한 위상을 가져야 할 것인가, 세계 속의 지역언어로서 국제적인 공감대를 형성케 하는 어법이 어떠한 것일까를 생각케 하는, 그야말로 시의적절한 전시회라고 생각된다.
서울 올림픽은 — 마치 지각의 변동이나 협곡의 끝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느끼지 못할 그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지켜보고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거대한 변혁임을 증명할 수 있듯이, 엄청난 힘으로 우리에게 파장을 던져오고 있다. 서울 올림픽 이후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많은 외국의 작품전을 기억하자. 소련현대미술전을 위시하여 헝가리현대미술전, 유고의 에도 트리티겐쥬을 포함한 동구권 미술전들과 직접 대담할 기회를 가진 바 있고, 아르덴쥬, 라띠 콘틸의 경우, 그리고 독일 인상주의 판화전, 바우하스전과 아울러 눈이 번쩍 띌만한 물량으로 보는 사람들을 압도한 바, 독일 현대회화전도 몇년 전이었으나 기대하기가 어려운 사정으로서 주목해 볼만하다. 경위야 어떠하였건 — 외국작가들이 백억불 흑자의 신흥공업국이니만큼 투자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거나, 한국민으로서는 바라는 대로 올림픽에 보여준 시민정신에 감복했거나, 이력서에 이제는 한줄 넣어주어도 될만한 나라들이 인정해 나간데 마치 개화기 조선의 닫힌 문을 열고 열강들이 몰려오듯이 대형전시회와 중량급 작가들이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신장식의 전시는 이러한 미술판도가 격변하는 와중에서 우리의 것을 육화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것을 세계화 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쳐진다. 여기에서 가능성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이유를 신장식이 쓰고 있는 어법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신장식의 그림은 평범한 언어들 — 우리들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쓸 수 있는 어휘들이 모여 설화적이거나 상징적이라고 불리울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화면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먼저 우리의 일상언어를 살펴보자. 그것은 명칭의 언어, 의미의 언어, 그리고 개념의 언어로 나뉘어지게 된다. 일테면 '이것은 의자이다'라고 말할 때 의자는 명칭을 가리키는 지시언어이다. 그러나 '의자는 의자다'라고 말할 때는 의자를 포함하지 않을 수 있는 것들의 기능을 가리키는 의미언어가 된다. 여기서 다시 의자에 사형장에 쓰이는 의자를 일컬을 때는 상황에 따라 영광이거나 죽음 등의 개념을 부여하게 된다.
신장식의 그림에서 이 언어의 개략적인 구분에 따라 예를 들어 본다면 「탈-Ⅱ」(도판 1)은 명칭의 언어에 해당된다. 질료와 표현의 방향제시를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겁고 기명성, 즉 막둑이거나 은원탈출의 탈이거나 식별가능한 이름이 먼저 떠오르게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Ⅰ-귀신쫓기 Ⅲ」(도판 2)는 의미의 언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의자라는 말 대신 앉는 것이라는 의미가 강조된 경우와 마찬가지로 귀신과 쫓겨남이라는 구체적인 지시언어나 상황제시 대신 봉황과 깃봉이라는 벽사(辟邪)의 어휘가 대체되고 있다. 반면에 「아리랑-기쁜날」(도판 3)은 개념의 언어로 비유될 수 있다. 여기에는 아무런 구체적인 지시언어가 보이지 않는다. 따뜻한 색채를 주조로 하는 화면은 장고와 부채 등에서 보일 수 있어처럼 그렇게 생각되는 삼태극과 봇의 형상으로 보일 수도 있으며 형체가 명칭을 거세당하고 아리랑이라는 추상명사를 구체화하는 표상어로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신장식의 그림은 순서대로 「탈-Ⅱ」 「Ⅰ-귀신쫓기」 「아리랑-기쁜날」로 그 심도가 깊어져서 「아리랑-기쁜날」에 이르러서 신장식이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언어가 구현된 것처럼 생각되거나 그것이야말로 한국미술의 정수를 표현하는 방법이 될 것처럼 느낄지도 모르겠으나 이들의 언어는 우리 일상의 언어가 미술의 언어로 사용된 것이다.
그렇다면 미술의 언어는 어떤 것일까? 나는 그것을 사람들이 별로 저항감을 느끼지 않고 쓰고 있는 말 중에서 골라 메타언어(Meta-Language)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언어학에서 언어를 분석하기 위해 쓰는 언어라는 뜻이 아니라 일상의 언어를 뛰어넘는 초언어(超言語)라는 뜻으로 쓴다는 이야기이다. 그런 전제하에서 나는 이 메타언어가 시의 제목이거나 음악의 상태를 표명한다고 주석을 달고 있다. 여기서 다시 신장식의 「아리랑-아침」(도판 4)에서 어떻게 메타언어가 형성될 수 있는지 살펴보자.
"상서로운 새가 깃든 태양이 금강산 일만이천봉 위에 장엄하게 서광을 던지면서 어둠을 몰아내고 있는 청명한 아침"이라고 해설을 붙인다면 너무 설화적인 산문의 형식이 되지 않을까? 물론 그림에서 이러한 명칭의 어휘들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이 산문을 대수함수의 세계라 보고 미분하여 의미를 끌어내 보자. "조국의 어둠을 헤치는 상서로운 아침의 태양"이라고 말하려 한다면 여기에서는 명백히 명칭언어들이 빠져들어가게 됨을 알 수 있다. 즉 동비중으로 갈려 있는 태양=새, 어둠=검은 색면,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형상이 적어도 부등호관계이거나 혹은 생약의 과정을 거쳐야 되지 않으냐는 것이다. 이 의미언어를 다시 미분해 보자. "상서로운 조국의 아침"이라고 함축되고 보면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어둠을 헤치는 빛의 다발이 뱀의 다리처럼 거추장스러운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아리랑의 아침'이라는 개념언어에 어떤 명제가 보여주는데도 「아리랑-아침」이라는 것을 택만 시의 제목 같은 함축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적어도 몇 번의 생각과 미분의 과정을 거쳐 군더더기를 뺀 후에야 흥겨운 노랫가락에 맞춰 어깨춤을 출 수 있을 법한 화면으로 나타나리라는 것이다. 기실 신장식이 생각하는 아리랑이 그러하리라는 아련함의 유추와는 달리 그가 알고 있는 아리랑이라는 것은 구천을 떠도는 망령의 호곡이 현재의 가슴을 짓눌러 움쩍달싹할 수 없게 만드는 어떤 처량함 혹은 처절함이라고 체험을 통해 느끼지만 이러한 체험은 누구에게나 강요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볼 때, 신장식의 그림에는 우리가 미술의 언어라고 부르고 있는 메타언어보다는 설화적인 일상의 언어가 더 강조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신장식의 그림인가. 어떠한 무엇이 시선을 끌기에 신장식의 그림인가.
⟪신장식이 일상의 어휘를 도입하는데도 끈끈한 한국적인 체취를 느끼게 하는 것은 한국적인 땀냄새에로 접근하는 방향 지위진 노력이다. 신장식이 소멸법에 의한 목판화를 선택하게 되는 것은 한국인의 체질로서 어떻게 보면 자연발생적인 귀추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나는 신장식의 그림에서 어떤 짜릿함을 본다. 그것은 신기한 것을 발견했을 때 오는 희열과 흡사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예기치 않은 곳에서 기대했던 것보다 눈을 끄는 것을 발견했을 때 오는 느낌이 사실상 오늘의 이 나라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세계에 접근해야 할 가장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내 눈에 신장식의 그림은 신기한 것으로 부각되었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세계인에게 발길을 멈추게 가깝게 다가서서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주며 구매의욕을 불러일으키고, 그들이 기억하거나 소유케 하자는 것이 한국작가들이 세계무대로 도약하려 할 때 기본전략이 될 수 있다고 보면, 신장식의 그림세계는 충분히 안에서의 공감을 형성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공감대라는 것이 하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것이 저러하리라는 느낌이라 한국적 감수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경우라 할지라도 세계인이라는 어법을 이해한다면 신장식의 그림에서 어떤 짜릿한 느낌과 한번 다가서서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다시 신장식이 일상의 어휘를 도입하는데도 끈끈한 한국적인 체취를 느끼게 하는 것은 한국적인 땀냄새에로 접근하는 방향 지위진 노력이다. 신장식이 소멸법에 의한 목판화를 선택하게 되는 것은 한국인의 체질로서 어떻게 보면 자연발생적인 귀추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소멸법에 의한 다색판화를 제작함에 있어 여러 개의 판을 쓰는 대신 하나의 판을 점차로 깎아 나가면서 일정 수량의 판화를 찍어내는 기법이며 판화 본래의 한국인의 취향에 잘 어울리는 제작기법이라고 생각한다. 대장경판이 금속활자가 아니라 목판이었다는 이유는 생각해 보면 알려지고 한국인에게 정신적으로는 육체를 낮추어 오랜 정성을 기울여 헌신함으로써 얻어지는 신앙적인 것이며, 그 결과로서 투명한 의식과 순수한 정신에 이를 수 있고, 당연히 일회적 완결성으로 연결되어지는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목판이 선택되었을 것이며, 지속적이고 한국적인 정신의 구현에서 오는 성취감을 만끽하기 위해 소멸법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일회적 판각이 이루어진다.
토 갤러리에서 열린 바 있는 신장식전에서의 경험과 감회를 바탕으로 소멸법에 의한 목판화들이 제3갤러리에서 선보인다. 신장식이 메타언어를 위해 일상의 언어를 얼마만큼 비축하고 한국적인 세계어를 얼마만큼 효과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지 지켜보기로 하자.
![[관련 자료] 아트포스트, 〈아리랑의 메타언어적 가능성〉 — 김영재 평론 (1989)](/archive/ar-1989-009/01.jpg)
![[관련 자료] 아트포스트, 〈아리랑의 메타언어적 가능성〉 — 김영재 평론 (1989)](/archive/ar-1989-009/02.jpg)
![[관련 자료] 아트포스트, 〈아리랑의 메타언어적 가능성〉 — 김영재 평론 (1989)](/archive/ar-1989-009/03.jpg)
![[관련 자료] 아트포스트, 〈아리랑의 메타언어적 가능성〉 — 김영재 평론 (1989)](/archive/ar-1989-009/04.jpg)
![[관련 자료] 아트포스트, 〈아리랑의 메타언어적 가능성〉 — 김영재 평론 (1989)](/archive/ar-1989-009/05.jpg)
![[관련 자료] 아트포스트, 〈아리랑의 메타언어적 가능성〉 — 김영재 평론 (1989)](/archive/ar-1989-009/06.jpg)
![[관련 자료] 아트포스트, 〈아리랑의 메타언어적 가능성〉 — 김영재 평론 (1989)](/archive/ar-1989-009/07.jpg)
![[관련 작품] 아리랑 -기원1](/works/1989-002.jpg)
![[관련 작품] 아리랑 -상생5](/works/1989-005.jpg)
![[관련 작품] 아리랑 -기쁜날8](/works/1990-003.jpg)
![[관련 작품] 아리랑 -영혼10](/works/1990-005.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