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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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블로그 90088679084 신세계미술관 〈아리랑〉전(1991-03) 포스팅의 캡션 없는 이미지로 ingest. 본 전시 출품작 가능성 높음. 제목·연도·사이즈·매체 모두 미상 — 작가 검수 단계에서 확정 필요. ID는 'unknown-' prefix로 별도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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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평론 1991-03-19 · 오병욱
〈장식적 회화와 전통의 추구〉 — 오병욱 평론 (1991)
신장식의 회화는 장식적이다. 그의 작품은 지루하게 하거나, 현학적이지 않으며, 추하지 않아서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하고 편하게 한다. 그 즐거움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의 예술은 순수회화이고자 하며, 우리의 그림이고자 한다. 그의 작품은 순수회화와 전통이 만나는 곳에서 탄생한다. 곧 미술에서 문학성, 역사성을 모두 추방해버린 순수회화라는 틀과 한민족의 설화, 상징, 민속이라는 정서적인 내용이 결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결합은 양자의 속성을 모두 갖는 불가사의한 혼합체를 탄생시킨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어떤 그림을 보고 감동했다던가, 무엇인가를 느꼈다던가, 즐거웠다던가 하는 것은 과연 무엇으로부터 비롯하는가? 그 감동이 그림이 담고 있는 내용으로부터 비롯하는가? 그 감동이 그림이 담고 있는 내용으로부터 온다면, 그 감동은 회화로부터 받는 순수한 감동과는 다른 것이다. 그 감동은 종속되어 있다. 회화에서의 감동은 시지각이 받아들인 정보가 언어화 혹은 내용화되는 것과는 별도로 존재해야 하며, 이를 극한으로 추구하는 것이 순수회화이다.
19세기 후반에 공꾸르형제는 다음과 같이 회화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한다. "회화는 책일까? 회화란 이상일까? 그것은 보이는 목소리, 사상의 그려진 언어인가? 그것들이 두뇌에 말을 할까? 회화의 목적과 그 행위들을 색채, 두터운 물감칠(empâtement), 투명기법(glacis)으로써 비물질화시킬 수 있을까?" (E. et J. de Goncourt, L'Art du XVIIIe siècle, Hermann, 1967, p. 211.) 그리고 대답하기를 "눈을 유혹하는 운명을 가진 회화는 일개 사실에 물질적 활기를 주는 것이거나, 한의 대상을 감각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 시각신경의 휴식을 너무 벗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그림은 인간에게 지적이고 정신적인 감동을 주기도 하는가? 천만에! 그것은 눈에 물질적인 즐거움만을 줄 뿐이다.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Journal, 1886. 4. 29.) 그들은 결국 "회화란 색채로 형태에 생기를 주는 물질적인 예술이다."라고 결론지었다.
한 점의 미술작품은 그것의 물질적인 실체와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미술의 실체에 관한 논의는 헤겔로부터 시작되었으며, 19세기 중후반에는 널리 퍼져 있었다. 그리고 Nabis파 화가인 모리스 드니가 회화란 어떤 질서하에 색채가 뒤덮인 평면이라고 주장한 것이 자연스러웠을 정도로 미술은 자신의 순수한 모습을 찾아서 진행하기 시작했다. 미술이 다른 분야의 예술과 결별하고 자신의 순수한 모습을 찾아 지키고자 했을 때, 즉 종교에 더 이상 봉사하지 않고, 역사를 기록하지 않으며, 문학성은 제거해 버렸을 때, 미술에게는 화포와 물감 덩어리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화가들은 이들만 가지고서도 그들이 원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었다.
신인상주의 화가들은 색과 필치 또 그들의 조화에서 몇 가지 공식을 발견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즐거움을 주는 그림은 빛과 따뜻한 색이 지배적이며 필치는 상승하는 방향성을 가지며, 고요한 그림은 밝고 어둠, 난색과 한색이 동등하고, 필치는 수평적이다. 또 비장한 그림은 어둠과 찬색이 지배적이며, 필치는 하향한다. 점강하거나 방산하게 하고, 필촉의 크기를 조절함으로써 더 많은 변화를 얻어낼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예술은 조화였고, 이 조화는 보색들의 어울림, 변조들의 어울림, 토운과 색채의 어울림이었다. 그들은 이 조화를 추구하는 색채-광휘주의자들이었다.
인상주의 미술에서 싹텄던 이 순수미술은 뽕 따벵파나 나비파같은 구성 우선의 미술과 야수파 미술을 거치면서 본질을 찾아 전진했다. 그래서 초기 입체주의에서 선과 면과 색들의 조화와 구성만을 추구하는 평면적 회화에 도달했으며, 이는 곧 대상조차 필요로 하지 않는 순수추상으로 진전할 것이었다. 즉 금세기에 들어서서 유럽의 회화는 장식적이 될 수밖에 없었으며, 이 때 순수회화의 가장 중요한 속성은 장식성이었다.
장식성은 작품이 가져야 할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한다. 순수미술의 목표야 무엇이건 관객들은 시각적인 만족만큼이나 심리적인 갈망을 채우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친근한 것, 알아볼 수 있는 것, 혹은 눈앞에 있는 것보다 깊은 무엇을 작품 속에서 발견하기를 원한다. 이것은 최근에 미술에서 다시 제기되는 민족성, 전통 혹은 단순히 작품의 주제에 관한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신장식의 미술의 원천은 현실의 상황이었다. 그는 소외, 부조리, 억압 같은 현대사회의 치부를 사실적인 기법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그의 작품의 순수로의 극적인 전환은 88올림픽 준비 미술부분에 참가하면서 이루어졌다. 한국의 이미지를 그렇게도 우아하고 흥미있게 부각시켰던 개·폐회식을 준비하면서 신장식은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예감했다. 서구예술의 수용보다는 현실에 기초하려던 그의 예술적 신념은 전통적 장식미술, 종교미술을 발굴하였고, 과거의 시간 속에 머물고 있던 그것에 현대의 숨결을 불어넣게 되었다. 그의 발굴품은 우선 그의 두 가지 욕구를 충족시켰을 것이다. 하나는 금세기 미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평면성-삼차원의 공간을 재현하지 않는-과 장식성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우리의 삶에 기초하고 있다는 예술의 현실성 혹은 고유성이었다. 즉 그는 '현대적인 우리의 미술'이라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무엇을 발견했던 것이다.
신장식은 그가 발굴하고 소생시킨 전통미술을 그의 독특한 처리기법으로 더욱 현대화시키는 한편, — 거미줄 같이 얽힌 경쾌한 선들, 혹은 화면 가장자리의 띠, 네 귀퉁이의 청홍흑백의 사각형들을 사용하여 화면 전체에 균형과 장식성을 부여하면서, 삼차원적 공간의 발생을 방지한다 — 전통 장식화와 종교화의 도상들과 상징들을 분해하고, 다시 조합하면서 그 의미를 확장시킨다. 그에게 우리의 전통이란 폭넓은 개념이다. 그것은 돌맞이 아가의 색동저고리 같은 것이기도 하며, 청사초롱이거나, 정화의 상징인 연꽃, 불상 광배의 화염문 혹은 전설의 성스러운 나무이기도 하다. 이것들은 무엇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속 여기저기에 분산되어 있는 것들로 우리의 정서에 녹아있는 것들이다.
신장식의 작품의 이중적 면모는 — 현대성, 평면성, 장식성과 전통, 현실, 주제의 성공적인 결합 — 그로 하여금 자신의 예술세계를 창작케 하였다. 그것은 1989년 그의 개인전들에서부터 이미 보여진 바 연작 '아리랑'의 세계이다. 그는 위의 다양한 소재들을 모두 '아리랑'이라는 큰 주제로써 하나로 통합했으며, 이것을 통해서 한민족의 슬픔보다는 기쁨을, 역경과 고난보다는 미래에 대한 도전과 희망을 표현해 내고 있다.
그는 우리의 민족 정서를 섬세하고 세련된 그의 예술체계에 담아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킨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이 상징체계를 사용하고 있어서 덜 순수하다거나, 전통을 담는 그릇이 경직된 순수회화의 틀이어서 부자연스럽다든가 하는 것에 대한 우려는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미술에서 형식이 중요한지, 내용이 중요한지를 심판할 능력이 없으며, 어떤 미술이 우리가 힘써 찾는 것인지를 아직 모르고, 예술을 가능케 하는 것은 그 미지에 대한 다양하고 열광적인 시도들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통과 현실에 뿌리내리려 하며, 순수회화를 지향하고 있는 신장식은 이제 꽃피기 시작하는 자신의 조형언어와 부단히 대결하고 개선하여서, 보다 진실된 예술을 창조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