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금강산 만물상의 빛
2015 · 98×64 cm · 캔버스에 한지 아크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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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평론 2015-03-03 · 신동인
〈그리움을 넘어서, Hand In Hand〉 — 신동인 평론 (2015)
1988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 올림픽은 전 세계인들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20세기 초 지독한 일제 식민침탈을 경험하고, 더불어 1950년에 발발한 6.25전쟁으로 남북이 분단하여 온통 폐허가 돼버린 한국에 대해서 당시 세계 언론사 특파원들은 '내일이 없는 나라'라고 불렀다. 그랬던 한국이 눈부신 경제발전과 함께 1988년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를 했던 것이다. 한국인들이 비극적인 근대사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며 전 세계를 향해 보낸 메시지는 바로 당시 서울 올림픽 주제가 'Hand In Hand'에서 나타난다. 이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끊임없는 이념적 갈등, 동서간의 대립을 넘어서 함께 나아가자는 '평화'를 향한 염원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러한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2015년 여전히 대한민국은 남과 북으로 대치하여 총구를 겨누고 있다. 세계를 상대로 북한 정권의 무력 도발은 여전히 새삼스러울 것이 없이 현재진행 중이다. 심지어 그 밑에서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 기아와 가난에 고통 받는 북한 주민의 비참한 삶은 21세기라고 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역사적인 경종을 울린다. 서울 올림픽 주제가처럼 함께 손에 손을 잡고 싶지만 만날 수 없게 하는 역사적 경계, 한반도를 절반으로 하여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이르는 기다란 3중 철책이 놓여있다. 그 끝자락, 휴전선 이북에는 빼어난 절경으로 유명하고 역사적인 명승지이며 오늘날에는 '평화 통일'의 간절함을 상징하는 '금강산'이 자리 잡고 있다.
신장식은 한국에서 '금강산'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1993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22년 동안 '금강산'이라는 소재에 몰두해왔다. 그가 '금강산'을 그리게 된 과정과 그의 작품세계를 조망함에 앞서 그의 이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바로 그가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 제작의 미술총괄보를 역임했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올림픽'이라는 경험은 이후 작품세계를 형성하는 데에 커다란 이정표가 되었다. 그의 작품세계에 녹아있는 핵심 질문이란 바로 '한국적인 가치란 무엇인가?'이다. 이것은 한 국가 안에서만 맴도는 담론이 아닌 '세계와의 만남'이라는 역사적 화두에서 빚어졌던 고민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세계인과 함께 공유하는 'K-POP'이나 '삼성'과 같은 한국에 관한 많은 단어들과 다양한 이미지가 있지만, 1988년 당시 청년 화가 신장식에게 던져진 문제의식은 오늘날과 비교하여 더욱 근원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놀라운 경제 발전을 단순히 포장하는 수준이 아닌, 그 속에 녹아있는 한국인의 문화와 정신, 역사적 정체성에 대한 형상화를 고민했던 것이다. 올림픽을 계기로 처음 세계 앞에 당당하게 서기까지 흘릴 수밖에 없었던 한국인의 피, 땀, 눈물을 '긍정'과 '희망'이라는 세계 보편적 가치로 공유하면서도, 그 속에 한국적 미의식을 담아내고자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가 서울 올림픽을 통해 가슴 깊이 느꼈던 당대의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1989년 베를린에서 열린 신장식 화가의 첫 해외전시 '아리랑'전은 바로 그 결실이었다. 이후 그의 관심은 보다 넓은 역사적 인식으로 향했고 그 방향이 바로 '금강산'이었다.
남북한이 분단된 이래로 한국인에게 금강산은 지척에 두고도 갈 수 없는 신비롭고 그리운 대상이었다. 1998년 11월 18일 남북한 사이에 처음으로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면서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한국 사람들이 금강산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이후 금강산은 남북교류와 화해, 평화, 통일의 씨앗을 상징하는 장소로 자리매김하게 되면서 이곳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까지 개최되기도 하였다. 화가 신장식의 금강산 그림 또한 1998년을 기점으로 그 표현을 달리함을 알 수 있다. 그가 직접 금강산의 실경을 보기 전까지, 약 5년간 그가 그린 금강산은 '관념 산수화'라고 할 수 있다. 직접 볼 수 없는 금강산은 그에게 감각적 대상이 아닌 전설 속에 등장할 법한 상상의 공간이자 관념적 대상이었다. 금강산은 분명히 가깝게 실존하는 풍경이지만 역사적 장벽에 가로막혀 상상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는, 잊힌 문헌들과 선조들이 남긴 그림에서만 찾아볼 수밖에 없는 그런 장소였다. 90년대 초반 그가 표현했던 특유의 전통적 소재주의와 화면 속 장식성은 '금강산'이라는 관념적 매개체와 동아시아에서 전통적인 그림 양식인 '산수화'라는 형식으로 탈바꿈하면서 더욱 구조화되었다. 따라서 그는 일반적인 풍경을 반영하는 묘사적 방식이 아닌 더욱더 정신적이고 관념적인 형태로 조형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화가 신장식의 작품세계를 조망했던 여러 비평가들의 관점은 대체로 이와 같은 형식과 내용의 조화, 주제와 표현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도에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평들은 '미술'이라고 하는 작은 범주 안에서만 벌어지는 내재적인 갑론을박에 지나지 않다고도 볼 수 있다. 화가 신장식의 작품세계를 국내적으로 혹은 미술의 내재적 원리로 이해하기보다는 '조형언어'라는 허울 아래에 감춰질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함의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에 따른 핵심 질문이란 더욱 도전적일 수밖에 없다. '과연 세계인에게 금강산은 과연 어떤 의미일 것인가?'
동북아시아 끝자락에 위치한 한반도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전쟁, 6.25와 남북분단은 비단 대한민국만의 국내적 역사가 결코 아니다. 20세기 중반, 전 세계적 대립과 갈등의 중심이었던, 이념 그리고 냉전의 전쟁터가 바로 암울했던 한반도다. 한반도의 역사가 이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던 맥락을 잘 보여주는 것은 미국의 정치학자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지정학' 개념이다. 브레진스키는 한반도를 '추축국'이라고 표현하였다. '지정학적 추축'이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충돌로 말미암은 세계적인 분쟁지역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발칸'을 예로 들 수 있다. 특정지역에 몰아치는 역사적인 소용돌이에 맞서 개개인의 삶이란 숙명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토록 숙명적이고 가혹한 역사적 시련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이를 극복하려 피나는 노력을 해왔다. 대한민국의 놀라운 경제성장이나 한반도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은 설령 폐허 속에서조차도 희망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평화'를 향한 간절함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서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한국으로 향하고자 하는 그 발걸음은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역사적인 길 위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1998년 이전까지 화가 신장식이 그린 금강산은 남북분단의 명분이 되는 '냉전'과 '이념'이라고 하는 형체를 볼 수 없는 역사적 관념을 추상적이자 역설적으로 드러냈다. 그러나 그가 그린 금강산은 결코 '관념'에만 종속된, 상상의 테두리 속에만 갇힌 그림이 결코 아니다. 진중하고 정기가 서린 푸른 캔버스 위로 신장식 화가 특유의 뿌리기 기법으로 생동하는 생명력을 드러낸다. 상상의 풍경, 조형언어가 빚어낸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게 에너지로 가득 찬 개인의 표현의지, 자유의지가 캔버스에 열렬히 드러난다. 1998년 첫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이후로, 그가 직접 현장을 보고 느낀 감동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인내하고 응축해왔던, 그리워해온 풍경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나서야 그의 금강산은 새로운 변모를 할 수 있었다. '관념 산수화'에서 '실경 산수화'로 거듭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전의 추상적인 표현보다도 산세에서 보이는 더욱 구체적인 묘사와 점차 다양해지는 색깔의 조화는 풍경화로서 보여주는 서정성이 더욱 강화되어 훨씬 희망차고 미래지향적이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표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강산을 통해 발현하는 그의 갈망이 완벽하게 해갈됐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관광이라는 특성상 그는 제한된 장소밖에 볼 수 없었고, 무엇보다도 핵심은 여전히 '한반도 분단'이라는 역사적 현실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2008년에 이르러 관광객이 피살되는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은 현재까지 중단되고 있다. 그의 작품세계는 다시금 기다림 속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았다.
혹자는 이런 질문을 던질지 모른다. 과연 '문화'와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종교, 문화, 예술, 더 나아가 인간의 정신적 활동들 이면에 '경제 논리'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상당한 유물론적 학자들이 밝혀낸 사실이기도 하다. 냉정하게 봤을 때, 이는 부정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와 예술이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인식'의 힘을 만드는 데에 있다. 그러한 '인식'이 모여서 '명분'을 만들고, '실천'을 이끌어내어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것이다. 2013년 9월, 북한 내 고위 인사의 딸이 중국 유학 중 몰래 탈북하여 한국에 입국하였다. 그녀가 탈북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다름 아닌 미디어에 비추는 한국 문화에 대한 동경이었다. '인식'의 힘이 더 나은 세상을 열어가는 또 하나의 역사적 소재는 무엇인가? 바로 '인권' 문제다. 미국에서 존경 받는 링컨 대통령을 포함하여 마틴 루터킹 목사 등,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존엄성에 대한 투쟁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다. 역사적 흐름이란 이처럼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수가 한데 모여 거대한 강물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는 흐름과 같아서 오랜 인내심을 요한다. 설령 그것이 인류의 역사와 비교하여 우리들 삶이 100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투쟁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역사는 끊임없이 이어져 간다는 진리이기도 하다. UN 인권 보고서에 드러난 북한 주민의 삶, 그 실상은 정말 참담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이를 해결하고 더 나은 세상을 기대하는 움직임은 점차적으로 더욱더 가시화되고 있다. 바로 이러한 흐름과 관점에서 '문화'와 '예술'은 오랜 인내와 역사적 투쟁을 필요로 하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분명한 매개가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15년, 세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뉴욕에서 하는 화가 신장식의 전시는 그가 앞으로 개척할 작품세계를 가늠하는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그가 1988년 올림픽을 통해 처음 세계와 마주하고 '한국적 가치'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였고, 이후 '금강산'이라는 주제로 문화적 역사적 인식과 고민을 거듭해왔다면, 과연 이 이후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금강산'은 여전히 의미 있는가? '금강산'이 세계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 수 있을까? 바로 미래에 대한 화두인 것이다. 이러한 요청을 적극적으로 용기 있게 검토하는 것은 작가 자신이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이 확장함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 남겨진 더 커다란 인식, 즉 역사적 함의와 명분이란 무엇인가? 1988년 청년 화가에게 주어졌던 '한국적 가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중년의 나이에 들어선 화가 신장식에게 요청되는 역사적 화두란 무엇인가? 바로 다름 아닌 '통일한국적 가치란 무엇인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의 수레바퀴는 작게 든 크게 든 반복되는 운명인가보다. 다시금 27년 전 그의 가슴을 울렸을 올림픽 주제가 'Hand In Hand'를 떠올리게 되는 대목이지 않을 수 없다.
1988 서울 올림픽 주제가 〈Hand In Hand〉 — 본문에서 인용된 영상 - 글 평론 2018-08-29 · 최태만
〈"지금, 여기"의 금강산의 12경을 그리다〉 — 최태만 평론 (2018)
'지금, 여기'의 금강산의 12경을 그리다.
1998년 11월 18일 금강산 관광선이 출항하면서 남북분단 이후 50여년 만에 비록 외금강지역으로 국한되었지만 남한주민들도 금강산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금강산관광은 남북교류의 물꼬를 여는 사건이었고, 2007년 6월부터 내금강의 일부지역까지 개방되었으나 불과 일 년 후인 2008년 7월부터 관광이 전면 중단되면서 금강산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가곡처럼 '그리운 금강산'이 되고 말았다.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녹음이 우거진 여름에는 봉래(蓬萊), 봉우리와 계곡을 단풍이 뒤덮는 가을에는 풍악(楓嶽), 나뭇잎이 지고 암석이 드러나는 겨울에는 개골(皆骨)이란 시적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금강산이다. 그래서 이미 고려시대부터 중국에 보내는 선물로 금강산을 그린 그림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고, 조선시대에는 많은 화가들이 금강산을 답사하며 그 아름다운 자태를 표현했다. 심지어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풍을 계승한 최북(崔北)이 금강산을 유람하다 구룡연(九龍淵)에서 '천하 명사 최북이 천하 명산에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며 연못 속으로 뛰어들려고 했다고 하니 금강산이야말로 예나 지금이나 평생에 한번이라도 꼭 방문하고 싶은 명승지임에 분명하다.
신장식은 금강산이 열리기 전부터 금강산을 그려왔고, 관광이 시작되자마자 동해항에서 장전항으로 첫 출항한 현대금강호를 타고 금강산으로 갔다. 그 후, 그는 마치 신들린 마냥 수없이 금강산을 찾았고 그럴 때마다 더 신명나서 금강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담아왔다. 말하자면 금강산이 그의 작업에 동기를 부여하며 그로 하여금 작업의 이유를 찾도록 채근했던 것이다. 실경에 충실하되 단순히 풍경을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금강산의 피부와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그의 작품은 금강산으로 향한 경외심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동안 많은 개인전을 통해 자신이 직접 보고 느낀 금강산을 그려오던 신장식이 이번에는 금강12경을 주제로 전시를 연다. 자신이 살던 복건성 무이산(武夷山)에서 성리학을 성립한 주희(朱熹)는 무이산 아홉 골짜기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를 남겼는데 훗날 많은 화가들이 이 시를 바탕으로 많은 무이구곡도를 그렸다. 또한 양자강 중류에 있는 동정호란 큰 호수를 이루는 물줄기인 소수(瀟水)와 상수(湘水) 주변의 아름다운 산수를 그린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역시 명승을 주제이자 소재로 채택한 것으로서 다 같이 각기 다른 절경을 아홉 폭 혹은 여덟 폭으로 그렸다면 봄여름가을겨울의 풍경을 그린 사계도의 전통 또한 그 역사가 길다. 넓고 깊어 수많은 비경을 가진 산이기는 하지만 신장식이 금강산이란 한 대상을 열두 달로 나눠 그렸으니 공간에 덧붙여 작품 속에 시간마저 담아내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의 금강12경은 마치 12개의 시를 읊듯 차례차례 음미할 때 그 풍치가 배가된다. 아니면 절기별로 묶어 감상할 수도 있고 작품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시간여행을 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전경의 소나무를 실루엣으로 처리하고 중경의 바위산은 충실하게 사생하되 원경을 다시 청색으로 처리한 〈옥류동의 빛〉, 안개가 자욱한 수정봉을 배경으로 한껏 흐드러진 꽃을 그린 〈온정리의 봄〉, 녹음이 짙어가는 〈수정봉의 빛〉은 빛을 통해 금강산의 생동하는 봄기운을 느끼게 만든다. 이어서 바야흐로 싱싱한 초목에 포위된 채 성숙해가는 자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만폭동의 빛〉, 비에 젖어 제 모습을 감추고 있는 칠월의 만물상, 작열하는 태양 아래 우뚝 선 채 파도를 맞이하는 〈해금강의 여름〉에 이르면 봉래산의 성숙미를 감상한 것과 진배없다. 여기에 금수강산(錦繡江山)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을 구월의 백두대간, 화려하게 옷을 갈아입은 삼선암, 조금씩 겨울채비를 하며 기암괴석을 드러내는 집선봉은 아름다움의 절정에 이른 풍악산 속으로 들어선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침묵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는 비로봉에서 산하의 유장함에 사뭇 겸손해지다 하늘에 핀 꽃과 같다 하여 천화대라 불리는 봉우리에 덮인 눈과 산세를 푸른빛으로 그린 〈천화대의 빛〉으로부터 이제 막 생명의 움틀 틔우는 초목들에 둘러싸인 만물상에 이르는 것이다. 이 시간여행을 관류하는 것이 금강산의 빛이니 신장식의 작품에서 그 빛은 푸르스름한 색조로 드러난다. 그것은 그의 작품을 휘감고 있는 서기(瑞氣)이자 작품에 생명을 부여하는 원동력이다. 그 빛에 다시 잠기기 위해서라도 금강산은 다시 열려야 할 것이다. 신장식의 금강12경은 우리로 하여금 금강산이 '지금, 여기에' 있음을 일깨워주기 때문에 현재형으로 우리 앞에 있다.
최태만 / 미술평론가
- 글 뉴스 2015-04-26 · 뉴시스
뉴시스, 〈'금강산 작가' 신장식 맨해튼 초대전 눈길〉 (2015)
뉴시스 노창현 뉴욕 특파원이 신장식 작가의 2015년 4월 30일~5월 13일 뉴욕 첼시 갤러리 SPACE IN ARTS (SIA NY) 기획 초대전 〈그리운 금강12경〉을 다룬 보도. 일 년 열두 달 변화하는 금강산을 캔버스에 아크릴 회화로 담은 작품들과, 1992·1996년 제작 목판화 10점이 함께 선보였다.
보도 매체 (1)
- 뉴시스 2015-04-26 · 노창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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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뉴스 2018-09-07 · 작가 블로그
〈그리운 금강 12경〉 신장식 작가 인터뷰 보도 모음 (2018)
2018년 9월 금산갤러리 〈그리운 금강 12경〉 개인전을 맞아 진행된 신장식 작가 인터뷰 2건. 한겨레 〈짬〉(이길우, 2018-09-07)은 25년 화업과 4·27 남북정상회담장에 걸린 〈상팔담에서 본 금강산〉(2001)의 화법(오방색 삼색 뿌리기), 1988 청사초롱 퍼포먼스, 1998 첫 답사 등을 종합 정리한다. 이데일리(오현주, 2018-09-17)는 같은 인터뷰 맥락에 더해 〈상팔담〉의 평화의집 임대 히스토리(국정원 2주 임대 → 연말까지 무료 연장)와 신작 〈금강산 만물상의 빛〉(2018, 291×112㎝)·〈개골산 비로봉〉(2018) 등의 색감·기법을 깊이 다룬다.
보도 매체 (2)
- 한겨레 2018-09-07 · 이길우 (선임기자)
- 이데일리 2018-09-17 ·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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