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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1999-09-03

〈긍정, 부정, 회상의 공간〉 — 강태성 평론 (1999)

관련 작품 (13점)
다룬 전시
〈금강산-생명력〉 포스터
〈금강산-생명력〉
기간
1999-09-03 — 1999-09-17
장소
표갤러리

요약

미술평론가 강태성이 1999년 9월 표갤러리 〈금강산-생명력〉 개인전 평론으로 작성됐고 〈월간미술〉 1999년 10월호 EXHIBITION 섹션에도 게재된 평론. 1998·1999년 두 차례의 직접 답사 이후 작가의 표현이 사진 기반 관념적 양식에서 사생 기반 표현으로 전환됨을 짚고, 이를 라틴어 ‘decere’에서 유래한 ‘적합한 장식(decoratif)’ 개념으로 풀어낸다. 1989년 목판화 이후 작가가 발전시켜 온 ‘뿌려진 선’을 ‘긍정·부정·회상’ 세 층위의 공간 작업으로 해석한다.

정보
출처
작가 블로그
저자
강태성 (미술평론가)

본문

〈긍정, 부정, 회상의 공간〉

강태성 (미술평론가) · 1999-09-03

한국의 전통미를 찾아 청사초롱·경복궁 등 다양한 한국 고유의 풍물을 소재로 다루었던 신장식은 1993년 이래 금강산을 주제로 작업하여 왔으며, 올해 9월에도 표화랑에서 같은 주제로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작년과 올해 두 차례 금강산을 직접 보고 오기 전까지 그는 어쩔 수 없이 몇 개의 사진에 기초하여 금강산을 그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관념적인 특성을 보여왔다. 산 능선을 짙은 선으로, 산골짜기를 밝은 색으로 대치하고 산의 형태를 단순화시킨 탓에 양식화된 장식적인 측면이 두드러져 보인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그의 독특한 표현들은 그대로 남아 있으나, 표현 양상이 다소 변하고 있음이 발견된다.

작품 〈금강산-생명력(하늘문)〉 〈금강산-생명력(천선대에서 본 관음연봉)〉 〈금강산-생명력(만물상)〉 등에서와 같이 빛에 반사되는 산의 양지를 밝게 표현하는 명암 대비는 이전보다 사실감을 더 느끼게 했다. 〈금강산-생명력(만물상)〉은 과거 양식화된 측면을 담고 있지만, 사생에 기초한 표현으로 새롭게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사실에 기초한 양식적인 표현 변화는 그의 회화에 있어서 ‘장식’의 의미도 변화시킨다. 여기서 필자는 ‘장식적(decoratif)’이라는 의미를 라틴어 ‘decere’의 어원과 비교하여 생각한다. Decere는 ‘적합하다·어울리다’를 뜻하듯이, 이번 전시회에서의 신장식의 표현은 단순히 형태를 꾸미는 양식화된 장식이 아니라, 자연의 실상을 강조하는 데 더 ‘적합한 장식’으로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89년 이후로 목판화 작업을 통하여 재현된 형상 위에 과감하게 선을 그어냄으로써 대상을 재현한 공간과 분리시켜 시간의 전후 관계를 형성하고, 두 시점 사이의 ‘지연’ 관계를 만들어냈다. 화면 안에 그려진 풍경과 뿌려진 선들이 두 시점으로 제시됨으로써 둘 사이의 ‘부정’의 의미가 강조되었고, 먼저 그려진 공간을 부정함으로써, 처음에 제시하였던 의미를 자유화시켰다.

이 표현에서 나타난 부정은 부정된 공간, 즉 처음 그려진 공간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부정된 이후 사실과 이전 사실을 공존시켜 상호간 이질적인 특성과 무관함을 강조했다. 이 때 부정은 존재자를 설명하려는 한정적인 부정(privatio). 즉 결성(缺性)이 아니라, 대상을 제한시키지 않고 오히려 자유화시키는 부정(negatio)이다. 필자는 그의 작품에서 풍경을 그리는 행위를 긍정의 공간, 뒤에 선을 뿌리는 행위를 부정의 공간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이번 전시회에서는 뿌려진 선들이 약화되어 심지어는 먼저 그려진 풍경에 녹아들어 한몸을 이루기도 하였다. 때로는 어떤 필터를 통하여 대상을 보는 것 같은 영상을 연출하기도 하였으며, 부드럽고 약하게 뿌려진 선은 회상의 공간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즉, 현재가 아닌 공간, 현지가 아닌 공간, 여기가 아닌 ‘저기’, 지금이 아닌 ‘그 때’를 제시하였다. 기억의 공간, 회상의 공간, 가지 못하는 곳을 그리는 마음을 담아내는 듯한 표현으로 그의 ‘뿌려진 선’들의 의미를 변화시킨 것이다.

향후 그의 작품이 ‘부정’으로 전개될지, 아니면 두 층위 사이의 이질성을 강조할지, 또는 이번 전시회에서 보여지듯 둘 사이의 보충적인 선으로 전개될지 알 수 없지만, 선의 의미가 또다시 달라지리라 기대한다.

#금강산 #생명력 #진경산수

평론 본문은 작가 블로그 80014599183 포스팅(2010-06-05 등록)에서 verbatim 추출. 표갤러리 1999년 9월 전시 평론으로 작성됐고 월간미술 1999년 10월호 EXHIBITION 섹션에도 게재. 영문 본문(body_en)은 본 entry에 미수록 — 라이브 후 작가/사용자 검수 시 보강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