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생명력
1998 · 250×142 cm · 한지에 아크릴릭, 철분 (설치)
특이사항
- · 캡션의 250×1000cm는 작품 전체 사이즈(한원미술관 전시 한 벽의 대형 설치). 게재 이미지는 작품의 일부 영역으로, 표기 사이즈 250×142cm는 픽셀 비율(550×313 = 1.757)을 가로 250cm 기준으로 환산한 추정치 — 1998-001과 동일한 '전체 표기 vs 보이는 부분' 패턴으로 사이트에서 이미지가 정상 비율로 표시되도록 임의 수정함. 작가 검수 시 정확한 작품 전체 사이즈·보이는 부분·구성 확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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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평론 1998-10-09 · 김유숙
〈금강산 — 생명력〉 — 김유숙 평론 (1998)
신장식은 청사초롱(도1), 장고, 깃발 등의 민속적 소재를 다룬 이래로 연화문(蓮花紋), 불상 광배(光背)의 화염문(火焰紋), 창호(窓戶)의 문양 등을 목판에 새기는 작업(1989-1991)까지 여러 소재 및 표현 방법을 모색해왔다. 이들은 '아리랑'이라는 주제 아래 그 의미를 드러냈으며 여기서 아리랑이란 그가 생각하는 우리 전통의 상징이었다. 이렇듯 전통적 미의식을 문양, 즉 장식적 특성에서 찾아가던 중 1992년 그의 작품세계는 일대 전환을 이루었다. 「아리랑-생명력」이라는 주제로 역사적 문화재인 광화문과 불상(도2)을 비롯하여 연꽃 및 들풀 등의 대상이 직접 표현됨으로써 장식성의 한계를 넘어서서 소재 자체의 생동감에 다가서게 된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하여 '생명력'의 추구는 다각화되었으며 1995년에 이르러서는 '금강산'을 그 소재로 삼게 되었다. 한국미술사에 관심을 가지고, 줄곧 미의식의 뿌리를 전통에 내리고자 했던 노력에 의해 동양 회화의 정수인 산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신장식의 산그림은 산수를 대상으로 하였으나 풍경화로 여겨지지 않는다. 이는 그가 금강산을 그릴 때에 금강산이라는 명산(名山), 그 자체의 아름다움 보다는 이를 통해서 그의 조형 의식을 나타내려 한 때문일 것이다. 금강산 사생은 거치지 않았으나 월출산, 북악산 등의 체험과 더불어 금강산 사진, 비디오뿐 아니라 조선후기 겸재 정선에서 근대기의 해강 김규진에 이르기까지 대가들의 금강산도를 통하여 그는 자신의 금강산을 탐구해왔다. 이는 과거 산수화가들이 자연을 관찰, 체험하며 만리(萬里)를 걸어 산과 자신이 물아일체(物我一體) 될 때에 온전히 그려낼 수 있다고 여겼던 것과는 다른 관점이다. 그에게 있어서 금강산이라는 것은 산수 또는 자연을 지칭하는 대명사와 다름없으며 금강산의 특정한 지세(地勢)나 수려함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간 금강산이 갈 수 없는 신비의 장소였으므로 관찰이나 사생이 아니라 관념에 의거한 산이 되었고, 그렇기에 조형적으로 작가 자신이 보다 실제에 얽매이지 않고 표현할 수 있었다.
또한 신장식은 동양의 미의식 중 최고의 가치로 여겨져 왔던 기운생동(氣韻生動)을 '생명력'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산수로써 표출하려 하였다. 그의 특징적인 기법인 뿌리기 기법(Dripping)은 조형적 의도 없이 뿌리는 과정에서 솟아나는 무의식의 기운을 통해 생명력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이전의 목판화 작업에서 볼 수 있었던 반복적으로 얽힌 선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뿌리기는 속도감 있는 동작의 반복을 통해 생동감을 가지며 작품 전체를 하나로 통일시키는 역할 또한 하고 있다. 캔버스에 붙여진 닥종이 위로 산의 형상을 구축하고 뿌리기를 통해 이를 흐트러뜨리고, 다시금 견고한 형태를 만들어 나가고…. 이 같은 과정을 반복하여 화면을 구축하며 이에 따라 산의 형상은 사실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점차 '심령(心靈)의 산'이 된다.
색채 또한 문양화된 표현에서는 원색적인 색채 대비가 강했던 반면에, 점차 불필요한 색감을 덜어내면서 본질에 다가서려 시도하였다. 수묵이 묵색(墨色) 한 가지로 오채(五彩)를 드러내며 산수화의 정신성을 내포하듯이 무수한 만물초 골짜기들을 어두움과 밝음으로 단순화하여 음(陰), 양(陽)의 기운을 상징하려 한 것이다.
오늘날 도시에 거주하는 이들에게 자연은 때때로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며 일상의 복잡한 생활에서 벗어나 정신적으로 환기할 수 있는 장소일 것이다. 이는 자연에 자신을 투영함으로써 심신을 수련하는 것이지만, 문명을 떠나 그 속에서 내내 은일(隱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자연에 대한 인식은 자연을 동경하며 즐긴다는 측면에서는 과거와 공통점을 가지면서 산수, 자연이라는 것이 삶과 동일시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다르게 여겨지는데, 이러한 오늘날 산수관의 변모를 신장식의 금강산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생명력 표현을 위해 뿌리고 골선을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연이라는 대상 자체에 온전히 함몰되지 않기 위해 격자 무늬의 긴 선들로 화면을 구획한다. 또한 실크스크린으로 찍은 관음보살(觀音菩薩)이나 선재동자의 형상을 오브제로 붙여서 산이라는 생명체와 대비시키고 있다. 이와 같이 자연의 생명감을 호흡하면서도 산수라는 대상 자체에 절대적인 비중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 현대인의 산수에 대한 인식과 일맥상통한 것으로 여겨진다. 공간의 해석에 있어서도 전통 산수에서 대자연의 숨결을 느끼고 그 안에서 창신(暢神: 정신을 펼쳐냄)하도록 무한한 공간을 여백이나 구름, 안개 등을 통해 암시했다면, 신장식은 전시장 한 벽을 차지하는 대형화면에 거대한 산수의 골짜기들을 반복적으로 펼쳐서 장대한 공간을 평면화시키고, 오브제를 사용하는 등 다양한 시각적인 표현방식으로 구현한 것이다.
신장식은 이번 전시를 통해 지난 10년가량의 작업 가운데 중심을 이뤘던 '장식성'과 '생명력'이라는 다소 상충되는 요소들의 융합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명상(瞑想)」이라는 전시에서 장식적인 경향을 덜어내고 보다 내용에 치중하면서 이들의 조화를 도모했던 노력이 이번 전시의 금강산이나 소나무, 들풀 등에서도 보여진다. 결국 그의 금강산은 전통적 생명력과 현대적 조형의 결합을 추구한 것이며 이는 오늘날 작가들에게 과제로 지워진 전통의 계승과 현대성 획득이라는 양 짐을 더불어 지고 가는 험난한 과정인 것이다.
최근의 관광개발로 인하여 금강산은 이제 더 이상 다가설 수 없는 신령한 산은 아니게 되었다. 이에 앞으로 그가 금강산을 직접 유람하고 이를 즐기는 산수 체험에 의거해서 보다 심화된 생명력을 추구해 나갈 것인지, 아니면 전통적 소재를 자신의 조형언어를 통해 재창출하기 위해 또 다른 대상을 찾아 나설 것인지 기대하며 지켜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