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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1993-04-30

미술비평, 신장식 〈금강산〉 — 김진아 평론 (1993)

[관련 작품] 금강산
관련 작품
금강산 1993

요약

1993년 4월 30일–5월 11일 갤러리 이콘에서 열린 신장식 개인전에 대한 미술평론가 김진아의 평론(미술비평 11-8호 수록). 아리랑을 주제로 깃발·청사초롱·장고·북·오방색 등 한국 전통의 소재를 넘어 정신적 조형으로 나아간 신장식의 금강산 작업을 다루며, 나무·풀 그 자체의 생명력과 통일을 향한 아리랑의 염원, 그리고 별과 우주로 확장되는 생명의 기운을 읽어낸다.

정보
출처
미술비평
저자
김진아

본문

〈금강산〉

김진아 · 미술비평 · 1993-04-30

아리랑의 주제 아래 깃발, 청사초롱, 장고, 북 등의 소재와 오방색을 주조로 한국적 전통의 부분들을 표현하는데 주력해온 작가 신장식 - 이번 전시회에서는 전통을 내거는 대상적 표현을 넘어서서 정신적인 울림으로서 금강산을 조형화하고 식물을 통해 아리랑의 살아넘치는 생명력과 기원을 보다 은유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전시장에는 거대한 금강산이 두 폭 펼쳐 있다. 안개에 한 폭 싸인 듯 하다. 안개가 아니라면 눈부신 태양의 빛막을 한 겹 걷어야 한다. 그러면 가만히 떠오르는 산. 절벽은 면면 쪼개지고 주노초파 때때 입었다. 잘게 쪼개어진 면면들은 그제야 화가 '정선'을 떠올리게 한다. 외곽선들은 분명 정선을 소화해 낸 것이지만 전체적인 모습은 작가 특유의 조형형식-닥상태를 손으로 두드려서 밑작업을 하고 형을 떠서 그를 채워가면서 다시 표면 위에 물감을 뿌리는 작업-속에서 새로운 우리 금강산이다. 잔잔한 선(禪)의 분위기를 물씬 자아내는 산세는 현대적 그림언어와 어우러져 한국적임과 동시에 한국만임을 거부한다. 그러나 분명 그곳에는 통일의 고개를 넘어야하는 아리랑의 염원이 메아리치고 있다.

작가가 집착해온 아리랑의 개념은 한 많고 긴 세월을 인내해온 우리 민족의 수동적인 감성의 표현이 아니라 한데 모여 나아갈 길을 기원하며 노래하는 희망이며 민족의 생명력이다. 제주도의 '해송'과 온양의 '향나무'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나무 자체의 생명력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 작가는 아리랑의 생명력을 장고, 북 등의 직접적인 매개를 통하지 않고 나무, 풀 그 자체의 생명으로 연결한다. 그리고 그 생명의 기운은 대기, 우주 공간까지도 살아나게 한다.

작품 〈아리랑〉에서 그 생명력이 별까지 확장된다. 작품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그어진 별자리 선(線)이 도식적인 느낌마저 들지만 조금 멀리 떨어져보면 별자리 선들이 뿌리고 돋아나온 질감에 묻혀지고 무한히 확장되는 남색 공간 속에서 노란 별들이 성큼성큼 관객을 향해 떠오른다. 그의 작품들이 형태를 드러내는 굵은 윤곽선과 그것을 메우는 빽빽한 색 붙이기로 닫힌 인상을 강하게 주고 있는데 비해 여기서 열림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요새 작업장 주위의 숲소리에 민감하다. 시골에서 돌아오는 길 헤드라이트 빛에 갑자기 다가온 들꽃들이 그에게 얘기를 건넨다. 일상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그들의 형태가 그를 사로 잡는다. 주제에 집착없이 열어 놓은 눈이 받아들인 충격의 교감대가 사물에 보다 깊게 다가가게 하고 그 사물 하나가 온 세상을 반영하는 외침이 되게 한다. 언뜻 보면 우리의 전통과 관련없다는 듯이 보여지지만 그 속에 배어있는 '기'의 표현과 소박한 산세는 분명 우리의 것이다. 다만, '정선'을 우리의 옛 조형 어법에서 출발하여 계승하고 극복하는 또 하나의 맥이 우리 화단에 끊겨 왔음이 새삼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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