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Geumgang-1
1993 · 546×227 cm · Paper, Acrylic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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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xt Review 1993-04-30 · 정영목
"Shin Jang-sik's Formal Method Concerning 'What Is Ours'" — Chung Young-mok review (1993)
지난 몇몇의 개인전을 통하여 우리 것에 관한 신장식의 애착이 남달리 유별나다는 사실은 이제 이미 公言化되었다. 그것의 조형적 성과에 대한 논의 이전에 「아리랑」시리즈로 대표되는 작가의 ‘전통성과 도상성’ (박신의. 최태만, 김영재), ‘한국성’ (서성록), ‘장식성’ (오병욱)에 관한 문제는 주로 주제적인 측면에서의 고찰이었다. 물론 작가의 의도가 그럴진대 이러한 방향의 해석은 당연하다. 또한 올림픽 행사를 전후한 ‘우리 것 찾기’의 열기에 부함되는 신장식의 조형성은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측면으로 인식되어 왔다.
지난 몇해 동안 작가가 보여준, 특히 목판을 포함한 회화에서의 역사의식에 관한 조형적 가능성과 함께 평론가들은 작가에 대한 다음과 같은 따뜻한 시선의 바램이 있었다. 우선 박신의는 작가의 1989년 개인전 (土 갤러리)의 작품에 나타난 “상징성의 심도는 아직 얕으며...도상에 대한 해석의 관점 역시 전면적이지 못한 한계”성을 지적했으며, 최태만은 그의 작품이 “도해적인 면을 너무 강하게 띠고”있으며 이러한 도상이 “산업사회란 이 현대사회적 삶 속에서 얼마만큼의 설득력”을 가질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같은 전시의 작품에 나타난 도상을 언어적 관점에서 풀이한 김영재는 작가가 조형 언어로서의 “메타언어(meta - language) 혹은 超言語”를 위한 “일상의 언어를 얼마만큼 버릴 수 있는지, 한국적인 세계 언어를 얼마만큼 효과적으로 표출”할 수 있을까에 대한 앞으로의 기대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지난 해 개인전(이콘갤러리)의 작품에서 강성원은 도상을 포함한 작가의 그림 성격이 “제도화된 전통성의 미적 차원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며 1970-80년대에 여러 가지로 굴절되고 폐색되어 가리워진 전통성과 한국성의 “참모습을 들추어내는 작업이 선결”될 것을 작가에게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서성록은 우리 고유의 좀더 “투박하고 덤덤하며...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체취를 느껴볼 수 있는 형식기제”와 “주제를 좀더 민속적인 형식의 여과장치를 경유시켜내는 과정”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꼭 이 위의 평문 모두가 작가의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하였다던가, 설사 지적되었다하더라도 작가의 미래를 예견하거나 제시해주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는 없으리라. 우선 언어의 추상성으로 말미암아 평문은 작가가 실천적으로 옮기기엔 너무나 구체성이 희박한 이론적인 글로서 비쳐질 수 있다. 김영재의 언어적 관점을 제외한 대부분의 평문은 지나치게 주제적인 측면에서의 도상과 그것의 상징성의 깊이게 관한 한국성과 민속성을 강조하며 마치 그것을 해결함으로써 작가 스스로 자신의 조형적 향상을 꾀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갖게한다.
그러나 필자는 조형적인 측면에서의 진정한 전통성과 한국성의 주제의식을 살리기 위해서 작가는 오히려 ‘자신의 것’과 ‘우리 것’을 과감하게 떨쳐버려야 한다는 역설로서 신장식의 조형의식에 기대를 건다. 즉, 지금까지 드러난 그의 민속성과 한국성에 관한 주제의식은 형식적으로 더욱 감추어져야했으며, 더욱 꼬여진 이중삼중의 상징성속에 지극히 애매모호한 형상으로서의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차라리 나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그의 예전 작품중에서도 이러한 조형방식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가령 1988년의「아리랑-아침」(도.1)은 장고의 앞면과 옆면의 형태를 지극히 도상학적으로 평면에 일렬로 늘어놓았다. 어떤 측면에서 이것은 마치 재스퍼 존스(Jasper Johns)의 미국 국기가 갖는-문화적 주제의식을 제거한 지극히 객관적인 오브제로서의 -도상학적 형태와 같은 순수한 조형적인 느낌을 전달해준다. 또한 1991-92년 사이에 「아리랑」(도 2.)의 조형적 대체 매체로 사용된 모기향 역시 작가 특유의 해학적 재치와 장식성을 함축한 오브제로서 위의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주제의식을 빼내버린 「아리랑」의 시각적 형태는 그것의 語感과 함께 왠지 꼬불꼬불할 것 같고, 그러한 이미지를 전혀 「아리랑」의 개념과 상관없는 산업생산품으로 대치함으로써 작가의 주관적인 주제의식과 조형의식을 중성화시키는 효과를 얻었다.
이러한 몇몇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작가의 주제의식이 지나치게 노출되었던 과거에 비하여 이콘 갤러리의 이번 개인전은 바로 주제와 그것을 담는 틀로서의 형식에 접근해가는 작가의 객관성이 신장되었다는 측면에서 작품의 주제와 그것을 위한 소재를 탐색해 나가는 작가의 知的 진지함이 한층 성숙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민속적인 소도구의 표현에서 출발한 ‘우리 것’(1988-90)에 대한 신장식의 관심은 점차 덩치가 큰 인위적인 구조물(건축물)에 담긴 역사의식으로서의 한국성(199192)을 모색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물들은 필연적으로 주위의 자연과 밀접한 관계속에 존재한다는 생각에서 작가는 자연 本然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가졌으리라. 이러한 자연의 모습은 대게 풍경의 형식으로 나타나는데 동양의 심성에 와닿는 山水畵는 정신적인 측면에서 서양의 풍경화와는 달리 각별하다. “육중한 구조물의 인위적이고 동물적인 에너지의 표현보다 서서히 다가오는 정적이고 식물적인-그러면서도 자체내의 긴장과 생명력이 넘치는-어떠한 에너지를 그림에 담고자”하는 작가의 변화를, 특히 「금강산」을 핵심 주제로한 이번 개인전에서 엿볼 수 있다.
「금강산」을 포함하여 주로 식물성의 이미지를 화폭에 담은 작가의 이러한 주제의식의 변화를 필자는 과거와 다른 단순한 소재의 변화에서 오는 결과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양식적인 측면에서의 조형방식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한국성’과 ‘전통성’ 혹은 ‘민속성’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의식이 식물성과 동물성을 따질 정도로 성숙, 확대되었으며, 그것은 작가가 관찰하는 어떠한 대상에 관한 객관성의 여지가 그만큼 커졌다는 아마도 거의 무의식적인 작가의 변화를 입증해주는 사실일 것이다.
이러한 경우는 특히 작가가 「금강산」을 그리고자 마음먹게된 동기에서도 잘 나타난다. 지난 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었던 고려대박물관 소장인 謙齊 鄭敾의「金剛山圖」(도.3)와 그의 다른 ‘식물성 이미지’들을 보고 받은 느낌이 예전에 민화나 민속 소도구를 보고 받았던 느낌과 거의 다를바 없었다는 것이다. 즉, 주제나 내용 또는 거기에 덧씌운 ‘한국성’과‘전통성’의 문제 이전에 작가에게는 정선의 산수화가 형태의 구조의 문제로 가슴에 와닿는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념의 테두리에 갇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던 그 좋은 경치를 볼 수도, 때문에 그릴 수도 없다는 평범한 생각에서 벗어 나게된 결정적인 동기를 필자는 정선의 산수화를 형태와 구조의 측면에서 관찰할 수 있었던 작가의 시각적 독립성과 객관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역사적인 사실을 들추어내듯 신장식은 자신의 마음속에 기록될 「금강산」의 시각적인 자료를 과거와 현재로부터 수집, 비교하여 거기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형태를 추출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 가령, 일제시대의 「금강산 사진첩」(도.4)이나 또는 지난 해 북한을 방문한 여성대표단이 촬영하여 TV에 방영된 「금강산」(도, 5)등을 토대로 작가는 일체의 주제적인 서술성을 배제하고 정선의 그림과도 같이 무수한 면들로 분할된 구조적인 형태로서의 산과 그 형태의 드러남을 중화시키기 위한 작가 특유의 뿌리기 작업으로서 시대를 초월한 어떤 상서로운 느낌의 산으로 나타내고자 한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정면성(forntality)과 대칭성을 주골격으로 하여 장식적이고 도상적인 요소가 지나치게 드러나던 과거의 작품에 비하여 이번의 ‘식물성 이미지’들에서는 그러한 요소가 현저하게 완화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즉, 과거에는 작가의 주제의식에 걸맞게 구조의 정면성이 어떠한 엄격성을, 또한 대칭성이 화면에서의 긴장감을 더해주는 요소로서 작용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의 강인한 저력을 품고 질기게 성장하는 식물성의 에너지를 조형적으로 표현해보려는 작가의 주제의식이 바뀐 이상 도상성을 부추기던 그와 같은 요소들은 사라져야 마땅하다.
결국 주제의 서술적인 접근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던 과거에 비하여 이제는 물질의 순수한 개념성을 추구해감으로써 개념자체의 문제로서 순수한 시각적 형식의 문제를 풀어나간다면 작가의 변화된 주체의식을 담을 무언가 새로운 형식의 조형방식을 만날 수 있으리라.
- Text Review 1995-02-21 · 박은순
Shin Jang-sik's Paintings of Mt. Geumgang — Park Eun-soon review (1995)
신장식은 진지하게 모색하는 화가이다. 그는 미술작업의 의미를, 남다른 표현기법을, 이 시대 우리 삶의, 조건과 자기 정체성의 문제를 끊임없이 추구하며 해답을 구하려 한다. 이제까지 그가 소박한 들꽃과 청사초롱, 큰북과 광화문 등 역사 속에서 형성되었고, 현재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대상을 취한 것은 단순히 소재주의적인 경향에 편승한 것이거나 표피적인 전통 우려내기는 아니었다. 그는 이러한 소재들을 표현할 때 우리 역사와 생활, 예술속에서 오랜 실험을 거친 뒤 체질화된 조형성과 감수성을 함께 표현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또한 우리 문화와 삶의 새로운 가치를 찾기 위하여 예술표현의 의미와 역할, 현대인의 미감에 호소할 수 있는 미학과 양식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신장식은 금강산을 그린다.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와 종교, 문화가 깃들인 금강산이 설악산이나 한라산과 다른 것은 그것이 휴전선 이북에 있어 갈 수 없는 산이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고려시대 이후 근대까지 천여 년의 세월동안 다양한 신앙과 사상, 문학과 미술작품을 낳게 한 영감의 근원이었기 때문이다. 금강산은 때로는 이 산을 한번 보면 죽어서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불교의 성지로, 때로는 어질고 지혜로운 자의 성정을 기르려는 유학자들의 이상인 절경으로, 또한 때로는 평생 금강산에 한번 가보지 못하면 사람축에 들지 못한다는 선망의 신선경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지금 분단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금강산은 민족통일과 새로운 미래의 비전을 상징하는 표상으로 자리잡으며 또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언제인가부터 금강산에 갈 수 없게 된 젊은 예술가들은 더이상 금강산을 그리거나 표현하지 않게 되었고, 그것은 곧 오랜 문화와 전통의 단절을 우리 민족의 굴곡진 역사를 적나라하게 대변하는 것이다.
온 겨레의 마음 속에 깊이 각인된 영산인 금강산, 그러나 한번도 가보지 못한 금강산을 그리는 이유와 의미는 무엇일까. 더구나 금강산이 단순한 풍경으로 다루어 질 수 없는 대상이 된 지금 금강산을 발견하고, 예술 표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결코 우연히, 가볍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기 위하여는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뿌리깊은 애착과 성찰, 현실적인 삶의 조건에 대한 치열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분명한 비전이 필요하고, 예술의 본질과 역할에 대한 진지한 모색이 요구되며, 또한 당연히도 그러한 조건을 예술적 표현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탁월한 감성과 표현역량이 필요한 것이다.
신장식은 오랜 기간동안 우리 문화와 예술을 반추하며 작업해 오는 과정에서 마침내 금강산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금강산을 그리기 위하여 일제시대에 찍은 금강산 사진첩들과 최근에 촬영된 금강산 비디오필름을 합성하여 금강산의 지질과 형세를 연구하였다. 또한 정선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에 그려진 여러 대가들의 금강산도를 살펴보면서 표현의 특징과 기법을 연구하기도 하였다. 그는 특히 외금강의 만물초를 중심으로 하늘로 솟구치는 듯한 골산의 힘찬 형태와 기가 분출되는 특징을 부각하였고, 때로는 화가 자신도 가보지도 못한, 이제는 거의 전설적인 존재가 되어 버린 금강산의 영험과 신비로움을 부각하였다. 파란색과 짙은 코발트색을 주조로 하여 그린 육중하고 단단한 모습의 금강산은 한편으로는 대지에 굳건히 뿌리를 내려 그 어떤 풍상에도 끄떡없을 듯이 강인한 듯하고, 또 한편으로는 하늘로 향해 치솟는 왕성한 형세와 활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장면이 마치 우리 민족의 힘찬 기상과 강인한 생명력을 서사적으로 표상한 것이라면, 이보다 부드럽게, 마치 너울거리는 듯한 평면적인 모습의 봉우리에다 흰색을 듬뿍 사용하여 신화적인 분위기를 강조한 또 다른 표현의 금강산도들은 마음속에 언제나 그리운, 그러나 지금은 가볼 수 없는 존재인 금강산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을 서정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신장식의 금강산 작업이 금강산이라는 소재의 성격과 특징에서만 오는 것이라면 그의 작업에 대한 우리의 호기심은 반감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작품의 내용과 형식, 기법을 교묘히 융합시킴으로써 화가의 의도와 조형성을 극대화시키며 그의 회화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그가 선택한 형태와 색채, 여러 기법들은 매우 긴밀하게 결합되며 독특한 표현력을 낳고 있다. 금강산의 분위기와 의미를 상징하기 위하여 주조색으로 사용된 파란색과 짙은 코발트색, 흰색은 상징적인 분위기를 강화시켰고, 상승세를 강조하기 위한 형태와 색채의 교묘한 배열, 캔버스 위에 미리 발라 놓은 닥종이에서 오는 독특한 질감과 생명력의 표현, 다양한 색깔의 아크릴 물감의 뿌리기로 마감 지움으로써 마치 옛날 수묵화 가운데 붓의 필치로 표현되었던 내면적인 에너지 또는 기가 분출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들이 그러하다. 또한 때로 화면 전체를 덮는 짙푸른 가로와 세로의 선으로 이루어진 사각형의 틀을 놓은 것은 마치 마음속의 유리창을 통하여 꿈속의 금강산을 보듯이, 또는 직접 답사하고 그리지 못한 실경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를 보상하기라도 하는 듯이 표현한, 현재의 상황에 대한 은유이면서 동시에 좀더 복합적인 조형성을 보여주는 방안이다. 사각형의 매듭 위에 놓인 볼트와 넛트는 음과 양의 상징인 듯도 하고, 금강산의 강인한 지세와 힘을 받쳐주는 듯도 하며, 혹은 별자리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인 듯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와 같이 새로운 주제와 소재, 다양한 표현기법을 동원하며 신장식은 이제까지와 다른 좀더 규모있고, 더욱 시사적이며, 형식과 내용, 기법이 긴밀하게 결합된 새로운 조형성을 보여주었다. 이번 전시회에 나타난 여러 변모와 집요한 예술의지를 주목하며 우리는 그에게 다시 한번 시선을 보내게 된다.
- Text Review 2015-03-03 · 신동인
Beyond Longing, Hand In Hand (2015)
1988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 올림픽은 전 세계인들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20세기 초 지독한 일제 식민침탈을 경험하고, 더불어 1950년에 발발한 6.25전쟁으로 남북이 분단하여 온통 폐허가 돼버린 한국에 대해서 당시 세계 언론사 특파원들은 '내일이 없는 나라'라고 불렀다. 그랬던 한국이 눈부신 경제발전과 함께 1988년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를 했던 것이다. 한국인들이 비극적인 근대사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며 전 세계를 향해 보낸 메시지는 바로 당시 서울 올림픽 주제가 'Hand In Hand'에서 나타난다. 이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끊임없는 이념적 갈등, 동서간의 대립을 넘어서 함께 나아가자는 '평화'를 향한 염원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러한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2015년 여전히 대한민국은 남과 북으로 대치하여 총구를 겨누고 있다. 세계를 상대로 북한 정권의 무력 도발은 여전히 새삼스러울 것이 없이 현재진행 중이다. 심지어 그 밑에서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 기아와 가난에 고통 받는 북한 주민의 비참한 삶은 21세기라고 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역사적인 경종을 울린다. 서울 올림픽 주제가처럼 함께 손에 손을 잡고 싶지만 만날 수 없게 하는 역사적 경계, 한반도를 절반으로 하여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이르는 기다란 3중 철책이 놓여있다. 그 끝자락, 휴전선 이북에는 빼어난 절경으로 유명하고 역사적인 명승지이며 오늘날에는 '평화 통일'의 간절함을 상징하는 '금강산'이 자리 잡고 있다.
신장식은 한국에서 '금강산'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1993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22년 동안 '금강산'이라는 소재에 몰두해왔다. 그가 '금강산'을 그리게 된 과정과 그의 작품세계를 조망함에 앞서 그의 이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바로 그가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 제작의 미술총괄보를 역임했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올림픽'이라는 경험은 이후 작품세계를 형성하는 데에 커다란 이정표가 되었다. 그의 작품세계에 녹아있는 핵심 질문이란 바로 '한국적인 가치란 무엇인가?'이다. 이것은 한 국가 안에서만 맴도는 담론이 아닌 '세계와의 만남'이라는 역사적 화두에서 빚어졌던 고민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세계인과 함께 공유하는 'K-POP'이나 '삼성'과 같은 한국에 관한 많은 단어들과 다양한 이미지가 있지만, 1988년 당시 청년 화가 신장식에게 던져진 문제의식은 오늘날과 비교하여 더욱 근원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놀라운 경제 발전을 단순히 포장하는 수준이 아닌, 그 속에 녹아있는 한국인의 문화와 정신, 역사적 정체성에 대한 형상화를 고민했던 것이다. 올림픽을 계기로 처음 세계 앞에 당당하게 서기까지 흘릴 수밖에 없었던 한국인의 피, 땀, 눈물을 '긍정'과 '희망'이라는 세계 보편적 가치로 공유하면서도, 그 속에 한국적 미의식을 담아내고자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가 서울 올림픽을 통해 가슴 깊이 느꼈던 당대의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1989년 베를린에서 열린 신장식 화가의 첫 해외전시 '아리랑'전은 바로 그 결실이었다. 이후 그의 관심은 보다 넓은 역사적 인식으로 향했고 그 방향이 바로 '금강산'이었다.
남북한이 분단된 이래로 한국인에게 금강산은 지척에 두고도 갈 수 없는 신비롭고 그리운 대상이었다. 1998년 11월 18일 남북한 사이에 처음으로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면서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한국 사람들이 금강산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이후 금강산은 남북교류와 화해, 평화, 통일의 씨앗을 상징하는 장소로 자리매김하게 되면서 이곳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까지 개최되기도 하였다. 화가 신장식의 금강산 그림 또한 1998년을 기점으로 그 표현을 달리함을 알 수 있다. 그가 직접 금강산의 실경을 보기 전까지, 약 5년간 그가 그린 금강산은 '관념 산수화'라고 할 수 있다. 직접 볼 수 없는 금강산은 그에게 감각적 대상이 아닌 전설 속에 등장할 법한 상상의 공간이자 관념적 대상이었다. 금강산은 분명히 가깝게 실존하는 풍경이지만 역사적 장벽에 가로막혀 상상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는, 잊힌 문헌들과 선조들이 남긴 그림에서만 찾아볼 수밖에 없는 그런 장소였다. 90년대 초반 그가 표현했던 특유의 전통적 소재주의와 화면 속 장식성은 '금강산'이라는 관념적 매개체와 동아시아에서 전통적인 그림 양식인 '산수화'라는 형식으로 탈바꿈하면서 더욱 구조화되었다. 따라서 그는 일반적인 풍경을 반영하는 묘사적 방식이 아닌 더욱더 정신적이고 관념적인 형태로 조형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화가 신장식의 작품세계를 조망했던 여러 비평가들의 관점은 대체로 이와 같은 형식과 내용의 조화, 주제와 표현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도에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평들은 '미술'이라고 하는 작은 범주 안에서만 벌어지는 내재적인 갑론을박에 지나지 않다고도 볼 수 있다. 화가 신장식의 작품세계를 국내적으로 혹은 미술의 내재적 원리로 이해하기보다는 '조형언어'라는 허울 아래에 감춰질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함의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에 따른 핵심 질문이란 더욱 도전적일 수밖에 없다. '과연 세계인에게 금강산은 과연 어떤 의미일 것인가?'
동북아시아 끝자락에 위치한 한반도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전쟁, 6.25와 남북분단은 비단 대한민국만의 국내적 역사가 결코 아니다. 20세기 중반, 전 세계적 대립과 갈등의 중심이었던, 이념 그리고 냉전의 전쟁터가 바로 암울했던 한반도다. 한반도의 역사가 이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던 맥락을 잘 보여주는 것은 미국의 정치학자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지정학' 개념이다. 브레진스키는 한반도를 '추축국'이라고 표현하였다. '지정학적 추축'이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충돌로 말미암은 세계적인 분쟁지역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발칸'을 예로 들 수 있다. 특정지역에 몰아치는 역사적인 소용돌이에 맞서 개개인의 삶이란 숙명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토록 숙명적이고 가혹한 역사적 시련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이를 극복하려 피나는 노력을 해왔다. 대한민국의 놀라운 경제성장이나 한반도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은 설령 폐허 속에서조차도 희망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평화'를 향한 간절함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서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한국으로 향하고자 하는 그 발걸음은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역사적인 길 위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1998년 이전까지 화가 신장식이 그린 금강산은 남북분단의 명분이 되는 '냉전'과 '이념'이라고 하는 형체를 볼 수 없는 역사적 관념을 추상적이자 역설적으로 드러냈다. 그러나 그가 그린 금강산은 결코 '관념'에만 종속된, 상상의 테두리 속에만 갇힌 그림이 결코 아니다. 진중하고 정기가 서린 푸른 캔버스 위로 신장식 화가 특유의 뿌리기 기법으로 생동하는 생명력을 드러낸다. 상상의 풍경, 조형언어가 빚어낸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게 에너지로 가득 찬 개인의 표현의지, 자유의지가 캔버스에 열렬히 드러난다. 1998년 첫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이후로, 그가 직접 현장을 보고 느낀 감동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인내하고 응축해왔던, 그리워해온 풍경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나서야 그의 금강산은 새로운 변모를 할 수 있었다. '관념 산수화'에서 '실경 산수화'로 거듭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전의 추상적인 표현보다도 산세에서 보이는 더욱 구체적인 묘사와 점차 다양해지는 색깔의 조화는 풍경화로서 보여주는 서정성이 더욱 강화되어 훨씬 희망차고 미래지향적이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표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강산을 통해 발현하는 그의 갈망이 완벽하게 해갈됐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관광이라는 특성상 그는 제한된 장소밖에 볼 수 없었고, 무엇보다도 핵심은 여전히 '한반도 분단'이라는 역사적 현실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2008년에 이르러 관광객이 피살되는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은 현재까지 중단되고 있다. 그의 작품세계는 다시금 기다림 속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았다.
혹자는 이런 질문을 던질지 모른다. 과연 '문화'와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종교, 문화, 예술, 더 나아가 인간의 정신적 활동들 이면에 '경제 논리'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상당한 유물론적 학자들이 밝혀낸 사실이기도 하다. 냉정하게 봤을 때, 이는 부정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와 예술이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인식'의 힘을 만드는 데에 있다. 그러한 '인식'이 모여서 '명분'을 만들고, '실천'을 이끌어내어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것이다. 2013년 9월, 북한 내 고위 인사의 딸이 중국 유학 중 몰래 탈북하여 한국에 입국하였다. 그녀가 탈북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다름 아닌 미디어에 비추는 한국 문화에 대한 동경이었다. '인식'의 힘이 더 나은 세상을 열어가는 또 하나의 역사적 소재는 무엇인가? 바로 '인권' 문제다. 미국에서 존경 받는 링컨 대통령을 포함하여 마틴 루터킹 목사 등,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존엄성에 대한 투쟁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다. 역사적 흐름이란 이처럼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수가 한데 모여 거대한 강물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는 흐름과 같아서 오랜 인내심을 요한다. 설령 그것이 인류의 역사와 비교하여 우리들 삶이 100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투쟁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역사는 끊임없이 이어져 간다는 진리이기도 하다. UN 인권 보고서에 드러난 북한 주민의 삶, 그 실상은 정말 참담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이를 해결하고 더 나은 세상을 기대하는 움직임은 점차적으로 더욱더 가시화되고 있다. 바로 이러한 흐름과 관점에서 '문화'와 '예술'은 오랜 인내와 역사적 투쟁을 필요로 하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분명한 매개가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15년, 세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뉴욕에서 하는 화가 신장식의 전시는 그가 앞으로 개척할 작품세계를 가늠하는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그가 1988년 올림픽을 통해 처음 세계와 마주하고 '한국적 가치'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였고, 이후 '금강산'이라는 주제로 문화적 역사적 인식과 고민을 거듭해왔다면, 과연 이 이후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금강산'은 여전히 의미 있는가? '금강산'이 세계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 수 있을까? 바로 미래에 대한 화두인 것이다. 이러한 요청을 적극적으로 용기 있게 검토하는 것은 작가 자신이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이 확장함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 남겨진 더 커다란 인식, 즉 역사적 함의와 명분이란 무엇인가? 1988년 청년 화가에게 주어졌던 '한국적 가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중년의 나이에 들어선 화가 신장식에게 요청되는 역사적 화두란 무엇인가? 바로 다름 아닌 '통일한국적 가치란 무엇인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의 수레바퀴는 작게 든 크게 든 반복되는 운명인가보다. 다시금 27년 전 그의 가슴을 울렸을 올림픽 주제가 'Hand In Hand'를 떠올리게 되는 대목이지 않을 수 없다.
1988 Seoul Olympics anthem 〈Hand In Hand〉 — referenced in the essay - Mixed Lecture 2011-05-25 · 신장식
Okinawa International University Symposium — 'Mt. Geumgang Paintings' (Shin Jang-sik) (2011)
신장식(국민대학교 교수, 화가)
1. 금강산 그림의 전통
금강산 그림은 고려 노영의 불화 ‘지장보살도’에서부터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김홍도의 화첩뿐만 아니라 많은 민화와 일제시대 순조의 명을 받아 금강산 스케치 여행후 그린 해강 김규진의 ‘금강산도’,‘총석정도’,소정 변관식 선생의 ‘삼선암’ 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특히 금강산 그림은 겸재 정선으로부터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을 실경으로 사생해내면서 우리의 미학이 세워진 우리 회화사의 성소인 것이다. 우리것을 찾아내고 우리시대의 우리그림에 대한 영감은 이곳에서 찾아야하지 않을까.
2. 분단과 금강산
그런데 분단이후에는 남한 작가 중에서 금강산을 그린 화가가 없으니 상상과 자료에 근거하더라도 금강산 그림은 이 시점에서 새롭게 시도되는 것이 좋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서 시작해서 93년 개인전부터 98년까지 다섯번의 개인전을 금강산이라는 주제로 발표해 왔다. 사실 나는 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에서 미술조감독으로 일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동안 우리의 정서를 구체화하기 위해 민속적 소재 속에 숨은 조형언어에 관심을 가지고 청사초롱,북,징,깃발,경복궁 등의 소재를 ‘아리랑’이라는 테마로 작품활동을 해왔다. 그후 우리 산하 속에 들어 있는 생동감과 생명력을 맨드라미,들풀,소나무,북한산 등을 소재로 그림으로 표현하던 중 이왕이면 우리의 산 중에서 우리 회화의 성소인 금강산을 그려보자고 단순히 생각한 것이 나의 금강산 그림의 출발이었다. 금강산의 회화적인 맥락 뿐만 아니라 그 문화정치적 무게에 비추어보면 냉엄한 분단현실과 직면한 이 시대의 화가가 그려낸 ‘금강산’은 또 하나의 통일이야기이다.
3. 다시 찾게된 금강산
이제 여러번 금강산을 만나니 그 생동감과 신명이 나의 그림에도 스며들지 않을까. 아직은 총석정,신금강 등 직접 보지 못한 곳도 많지만 우리 민족이 가진 신명과 생명력이 이제는 금강산 그림 속에 가능하지 않을까. 장래에는 우리 민족의 분단상황이 극복되어 금강산이 민족의 상징으로 거듭나는 때가 오지 않겠나. 그 때에는 마음껏 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명과 생명력이 나의 그림에 조금이라도 표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4. 관념적 금강산 그림
1993-1998 금강산에 가보지 않고 금강산 그림을 그리니 아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언젠가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은 그 그림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오래 전에 시작된 이 일은 회화적 가치로서의 금강산 그림에 대한 연구를 동반한 것이었다. 당시의 그림들은 관념적인 산수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실체와 형상 사이의 연관성이 희박했으므로 주변의 의아한 시선을 받았다. 이런 점을 넘어서려는 노력은 금강산 옛 그림들에 대한 연구와 사진자료의 수집 등으로 나타났지만 현장을 체험하지 않은 풍경화란 어쩔 수 없이 가슴 속의 그림이 아닌 머리 속의 그림일 가능성이 높았다. 1996년의 개인전 도록에 실린 담배를 피워물고 먼산을 바라보는 나의 흑백 사진은 관념산수와 진경산수 사이의 명확한 갈림길에 서있는 자신의 위치를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분단상황을 보여주는 휴전선 철책 앞에 서 있는 한 화가의 모습은 마치 조만간 저 철책선을 넘어서 금강산으로 갈 것을 염원하거나 혹은 예감한 듯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5. 사실적 금강산 그림
나는 금강산을 하나의 상징으로 접근했다가 그 실체를 만났다. 산을 그리되 산을 그대로 옮겨 그리는 이른바 재현산수 작업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 나의 최대 과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틀을 벗어나서 금강산의 실체를 읽어내는 데로 나아가고자 했다. 금강산 방문 이후의 금강산 그림은 여러모로 그 이전과 다르다. 우선 관념산수를 진경산수로 전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최근의 작업들은 직접 금강산을 찾아 사생을 하고 사진을 남겨 온 결과물을 토대로 제작한 금강산 진경 작업인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관념에서 진경으로의 전환’은 ‘실경과 그림 사이의 합일점’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금강산을 매개로 생동하는 자연과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 나아가 분단상황을 비롯한 현실을 구체적으로 담아내는 당대성과 현장성의 전취 과정은 나의 그림이 포기할 수 없는 남다른 가능성이다. 이것은 상징과 실체의 합일을 통해 삶과 예술을 관통하는 진정성을 획득하는 일이다.
6. 금강산 그림의 전망
금강산은 나의 금강산이고 우리민족의 금강산이다. 나는 이런 희망을 가져본다. 다음에는 남쪽의 작가뿐만 아니라 북쪽의 작가들도 동참하여 같이 금강산에서 그림을 그리고 우리 미술을 토론하며 서울과 평양에서 발표하면 우리의 상징을 더욱 보배롭게 하지 않겠나. 민족 공통의 정서로 만나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나. 사람이 없는 빈 산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산과 그곳의 사람들과 같이 만날 때 기쁨은 더욱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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