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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xt Review 2005-10-26 · 최태만
'Light of Mt. Geumgang' — Review by Choi Tae-man (2005)
지난 2004년 신장식은 '10년의 그리움, 금강산'이란 주제로 지난 십년간 한눈팔지 않고 꾸준하게 추구해온 금강산그림을 중간 결산하는 전시를 개최한 바 있다. 1998년 금강산이 열리기 이전부터 금강산을 화두삼아 그려온 작품들에 나타나던 활달하고 생동하는 필치와 밝고 경쾌한 색채와 어우러진 낙천적인 시각이 바야흐로 무르익어 농숙(濃熟)의 경지에 이른 그의 금강산 그림은 금강산이란 한 대상으로 향한 십년간의 사랑이 이루어낸 성과였음에 분명하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개·폐막식 기획팀에 참가하면서 전통의 계승에 심혈을 기울여온 그가 비록 사진으로 보았던 것이나마 금강산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하고 운명처럼 매달려온 화제(畵題)를 두루 망라한 이 작품들은 한편으로 작가 자신에게도 새로운 변화를 요청하는 자기점검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는데 그 결과가 이번 전시에 조심스럽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특징으로 대경산수(大景山水)를 보듯 넓게 펼쳐진 풍경과 다소 장식적인 표현을 자제하고 보다 실경에 충실하려는 태도를 발견할 수 있는 바 이는 금강산의 진상(眞相)을 보다 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표현하려는 의도의 발현이자 지난 전시 이후에도 세 차례 더 금강산을 답사하며 스케치한 진경에 충실하고자 한 태도가 구체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그가 전시의 주제를 '십년의 그리움'으로부터 '금강산의 빛'으로 보다 내면화시킨 것도 금강산을 정서적으로 수용하던 차원에서 실재에 보다 가까이 접근하면서 동시에 그것에 상징적 의미를 강화하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빛은 서구의 바로크나 인상주의 회화가 추구했던 빛과 색채와 상통하는 부분도 있으나 그의 작품은 시각적 투명성 못지않게 금강산을 통해 역사와 현실을 되돌아보도록 하기 때문에 오히려 보다 정신적인 차원에서 채택한 것임에 분명하다. 즉, 그의 풍경화는 자연의 외경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역사와 그것을 넘어서는 이상(理想)에의 동경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것이다.
먼저 금강산이란 이름 자체가 불교적 세계관으로부터 발원한 것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교에서 금강(金剛)은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며 변함없는 진리를 의미한다. 그래서 선종의 대표적인 경전인 금강반야바라밀다경(金剛般若波羅密經)은 금강과 같이 견고하고 능히 일체를 끊어 없애는 진리의 말씀이란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록 그가 불교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금강산을 그린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금강산을 그리는 그 시간만은 그 산세를 통해 변함없는 진리가 무엇인지 깨닫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충만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더욱이 정치적, 이념적 갈등에 의해 야기된 남북분단이란 역사적 비극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금강산이기에 그가 금강산을 단지 아름다운 대상으로만 파악하지 않고 이러한 분쟁을 극복할 수 있는 상징적 대안으로 여기고 있음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쟁의 참화를 겪었지만 여전히 유장한 산하는 인간의 이기적 욕심이 얼마나 초라하고 볼품없는 것인지를 깨닫게 만든다. 그러므로 그가 천착하는 금강산의 빛은 물리적 현상으로서의 가시광선이 아니라 마음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그려낸 금강산의 사계는 여전히 유장하고 시원하지만 그 속에는 온갖 역사적 질곡과 영광이 잠재해 있다. 그러나 그는 현실의 어려움을 단지 고통과 절망으로만 파악하지 않고 그 너머에 있는 희망을 본다. 빛은 그러므로 금강산을 비추는 광선일 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가 잃어서는 안될 희망의 빛이다. 굽이치는 산맥, 그 앞에 두드러진 상록의 소나무, 눈 덮인 고즈넉한 봉우리와 계곡이 근경과 원경으로 물결치는 그의 그림에서 역시 그의 낙관적인 세계관을 읽는다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그의 아름다운 풍경화가 엄연히 존재하는 모순과 질곡을 망각하려는 '회피의 기제'로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철책을 넘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금강산, 별도의 여행증명서를 소지하여야 하고, 제한된 지역만 답사할 수 있는 현실의 한계는 그가 채택한 소재에서 어렴풋하게 드러나고 있다. 말하자면 그가 답사한 장소만을 그릴 수 있었다는데서 분단의 비극은 여전히 엄연한 현실로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분단을 시각적으로 제시하기보다 금강산의 풍경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켜켜이 쌓인 시간의 누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이번 전시에 그가 많이 그린 세존봉(世尊峰) 너머에 있는 금강산의 다른 모습을 그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 기다림은 통일의 희망과 맞닿아 있다. 십년을 그런 기다림으로 금강산을 그려왔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금강산은 여전히 미완의 프로젝트이다.
혹자는 이 작가가 십년 넘도록 금강산을 그리는 것에 대해 고개를 갸웃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조급해 할 이유는 없다. 금강산을 가장 금강산답게 표현한 겸재(謙齋) 정선(鄭敾)은 삼십대 중반에 스승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을 따라 금강산을 다녀온 후 그린 것으로 알려진 〈신묘년풍악도첩(辛卯年楓岳圖帖〉 이래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을 거쳐 마침내 진경산수를 이룩하여 타계할 때까지 주옥같은 금강산그림을 남겼으니 정선이야말로 사십 여년 동안 금강산에 전념한 위대한 화가인 것이다. 이런 점을 주목할 때 신장식의 금강산 그림은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할 그의 과제이자 풍경화를 시대에 뒤떨어진 장르라 하여 외면하려는 사람들에게 그것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알리는 소명의 실천이라 주장한들 과장된 수사(修辭)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금강산의 빛이 통일의 미래를 비추는 빛일 뿐만 아니라 그의 작업세계를 더욱 옹골차게 가다듬는 서광으로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도 지나친 기대는 아니리라. 이 전시를 계기로 그가 집요하게 추구해온 금강산을 종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더욱 심화시켜 독자적 내용과 양식을 확립할 수 있기를 바란다.
- Mixed Lecture 2011-05-25 · 신장식
Okinawa International University Symposium — 'Mt. Geumgang Paintings' (Shin Jang-sik) (2011)
신장식(국민대학교 교수, 화가)
1. 금강산 그림의 전통
금강산 그림은 고려 노영의 불화 ‘지장보살도’에서부터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김홍도의 화첩뿐만 아니라 많은 민화와 일제시대 순조의 명을 받아 금강산 스케치 여행후 그린 해강 김규진의 ‘금강산도’,‘총석정도’,소정 변관식 선생의 ‘삼선암’ 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특히 금강산 그림은 겸재 정선으로부터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을 실경으로 사생해내면서 우리의 미학이 세워진 우리 회화사의 성소인 것이다. 우리것을 찾아내고 우리시대의 우리그림에 대한 영감은 이곳에서 찾아야하지 않을까.
2. 분단과 금강산
그런데 분단이후에는 남한 작가 중에서 금강산을 그린 화가가 없으니 상상과 자료에 근거하더라도 금강산 그림은 이 시점에서 새롭게 시도되는 것이 좋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서 시작해서 93년 개인전부터 98년까지 다섯번의 개인전을 금강산이라는 주제로 발표해 왔다. 사실 나는 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에서 미술조감독으로 일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동안 우리의 정서를 구체화하기 위해 민속적 소재 속에 숨은 조형언어에 관심을 가지고 청사초롱,북,징,깃발,경복궁 등의 소재를 ‘아리랑’이라는 테마로 작품활동을 해왔다. 그후 우리 산하 속에 들어 있는 생동감과 생명력을 맨드라미,들풀,소나무,북한산 등을 소재로 그림으로 표현하던 중 이왕이면 우리의 산 중에서 우리 회화의 성소인 금강산을 그려보자고 단순히 생각한 것이 나의 금강산 그림의 출발이었다. 금강산의 회화적인 맥락 뿐만 아니라 그 문화정치적 무게에 비추어보면 냉엄한 분단현실과 직면한 이 시대의 화가가 그려낸 ‘금강산’은 또 하나의 통일이야기이다.
3. 다시 찾게된 금강산
이제 여러번 금강산을 만나니 그 생동감과 신명이 나의 그림에도 스며들지 않을까. 아직은 총석정,신금강 등 직접 보지 못한 곳도 많지만 우리 민족이 가진 신명과 생명력이 이제는 금강산 그림 속에 가능하지 않을까. 장래에는 우리 민족의 분단상황이 극복되어 금강산이 민족의 상징으로 거듭나는 때가 오지 않겠나. 그 때에는 마음껏 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명과 생명력이 나의 그림에 조금이라도 표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4. 관념적 금강산 그림
1993-1998 금강산에 가보지 않고 금강산 그림을 그리니 아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언젠가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은 그 그림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오래 전에 시작된 이 일은 회화적 가치로서의 금강산 그림에 대한 연구를 동반한 것이었다. 당시의 그림들은 관념적인 산수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실체와 형상 사이의 연관성이 희박했으므로 주변의 의아한 시선을 받았다. 이런 점을 넘어서려는 노력은 금강산 옛 그림들에 대한 연구와 사진자료의 수집 등으로 나타났지만 현장을 체험하지 않은 풍경화란 어쩔 수 없이 가슴 속의 그림이 아닌 머리 속의 그림일 가능성이 높았다. 1996년의 개인전 도록에 실린 담배를 피워물고 먼산을 바라보는 나의 흑백 사진은 관념산수와 진경산수 사이의 명확한 갈림길에 서있는 자신의 위치를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분단상황을 보여주는 휴전선 철책 앞에 서 있는 한 화가의 모습은 마치 조만간 저 철책선을 넘어서 금강산으로 갈 것을 염원하거나 혹은 예감한 듯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5. 사실적 금강산 그림
나는 금강산을 하나의 상징으로 접근했다가 그 실체를 만났다. 산을 그리되 산을 그대로 옮겨 그리는 이른바 재현산수 작업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 나의 최대 과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틀을 벗어나서 금강산의 실체를 읽어내는 데로 나아가고자 했다. 금강산 방문 이후의 금강산 그림은 여러모로 그 이전과 다르다. 우선 관념산수를 진경산수로 전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최근의 작업들은 직접 금강산을 찾아 사생을 하고 사진을 남겨 온 결과물을 토대로 제작한 금강산 진경 작업인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관념에서 진경으로의 전환’은 ‘실경과 그림 사이의 합일점’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금강산을 매개로 생동하는 자연과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 나아가 분단상황을 비롯한 현실을 구체적으로 담아내는 당대성과 현장성의 전취 과정은 나의 그림이 포기할 수 없는 남다른 가능성이다. 이것은 상징과 실체의 합일을 통해 삶과 예술을 관통하는 진정성을 획득하는 일이다.
6. 금강산 그림의 전망
금강산은 나의 금강산이고 우리민족의 금강산이다. 나는 이런 희망을 가져본다. 다음에는 남쪽의 작가뿐만 아니라 북쪽의 작가들도 동참하여 같이 금강산에서 그림을 그리고 우리 미술을 토론하며 서울과 평양에서 발표하면 우리의 상징을 더욱 보배롭게 하지 않겠나. 민족 공통의 정서로 만나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나. 사람이 없는 빈 산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산과 그곳의 사람들과 같이 만날 때 기쁨은 더욱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