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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Review 2005-07-01

"The Joy of Having a Painter Friend, Shin Jang-sik, the Aesthetics of His Communication" — Yoo Si-min Critique (2005)

Related work (3)
Exhibition
〈Meditation — Mt. Geumgang〉 poster
〈Meditation — Mt. Geumgang〉
Dates
2001-09-04 — 2001-11-09
Venue
Kookmin University Art Gallery · Wooduk Gallery

Summary

A critical essay by political commentator Yoo Si-min on Shin Jang-sik. Contrasting the common stereotype of painters as 'unfathomable eccentrics' with Shin's "exceptionally common-sense" persona, Yoo reads the artist's work through the lens of 'aesthetic communication' (소통의 미학). He recalls Shin's 1970s entrepreneurial New-Year-card business at Sim-In High School in Daegu, the legendary case of submitting an oil painting to the Gyeongbuk provincial competition under his older brother's name, and the 1977 reading-room conversation with friends that convinced his parents to let him enter art school. The piece argues that Shin's recurring motifs since 1988 — flags, cheongsachorong lanterns, lotus patterns, Bukhansan, Gwanghwamun, and Mt. Geumgang — are ultimately tools of communication rather than expressions of a particular nationalism.

Info
Source
Artist's Blog
Author
유시민 (시사평론가)

Body

〈화가 친구를 둔 자의 기쁨, 화가 신장식, 그 疏通의 美學〉

유시민 (시사평론가)

널리 퍼진 선입견에 따르면 예술가는 보통사람들과는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화가는 그 가운데서도 유달리 '난해한 괴짜'로 통한다. 이런 선입견이 얼마나 진실과 일치하는지 알 도리가 없지만, 나의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보면 전혀 근거 없는 편견만은 아닌 듯하다.

우선 문제가 되는 것은 일하는 곳의 풍경이다. 시인이나 소설가의 작업실은 책이 가득 꽂힌 고풍스런 서가(書架)와 원고지가 어지럽게 널린 책상을 떠올리게 한다. 피아니스트의 연습공간은 윤기가 흐르는 악기와 감미로운 소리, 길고 우아한 손놀림 같은 이미지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화가의 작업공간은 철물 건축자재를 취급하는 문래동 뒷골목의 이른바 '마찌꼬바'와 비슷하다. 캔버스와 작업도구가 여기저기 널려 있어 익숙지 않은 방문객은 걸음 떼기가 겁이 난다. 작업실의 주인이 애주당원(愛酒黨員)이라면 담배꽁초가 들어앉은 빈 술병도 한 몫을 한다. 그가 가난한 '무명화가'인 경우에는 틀림없이 바닥에 찌꺼기가 말라붙은 컵라면 용기도 굴러다닐 것이다. 화랑에 내걸린 작품과 달리, 화가의 작업실에서 '예술의 향기'를 맡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지금껏 겪어본 화가의 작업공간은 이런 곳이었다.

화가 그 자신도 작업공간에 뒤지지 않는다. 여름밤을 꼬박 새며 일을 한 미술 선생님이 윗통을 벗어제친 채 박카스 병을 입에 물고 스트레칭을 하는 광경을 나는 학창시절 학교 미술실 복도에서 본 적이 있다. 요즘 말로 해서 그야말로 '엽기'였다. 저마다 특징이 있겠지만 내가 본 '그림하는 사람들'은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종의 문제'에 저마다 몰두하고 있었는데, 그게 무슨 문제인지는 열심히 귀동냥을 해 보았지만 유감스럽게도 끝내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작업실'에서 '그런 사람들'이 만든 것이니 만큼, 작품 역시 만만치가 않다. 방학숙제용 팜플렛을 모으기 위해 전시장을 처음 기웃거렸던 시절 이후 지금까지, 나는 미술작품 앞에 서면 품위를 지키는 위선자가 된다. 예컨대 나는 그게 '넓은 벽에 붙어 앉은 파리'를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했는데, 함께 간 친구는 '바닥에 뱉어놓은 수박 씨' 그림이라고 주장한 작품이 있었다. 나는 속으로 '무슨 그림이 이 따위람!', 불평을 하면서도 최소한 2분 정도는 그 작품 앞에서 눈을 지긋이 감고 서 있었다. 작품 그 자체에 몰입하기보다는 같은 공간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내가 예술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는 속물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게 행동하느라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 나의 그림 감상법이었던 것이다. 아, 교양인의 길은 정녕 험하기도 하여라!

그런데 이건 사실 나 혼자 책임져야 할 사태는 아니다. 경제학을 전공한답시고 밤낮 미적분 공식과 통계수치를 붙잡고 씨름하느라 예술의 향기를 맡을 기회가 적기는 했지만, 만약 화가들이 부지런히 말을 걸어 주었다면, 그리하여 예술 세계 안의 화가들과 울타리 너머에서 곁눈질을 하는 보통사람들 사이에 폭 넓고 일상적인 의사소통이 이루어졌다면, 그런 나도 미술 작품을 전시한 공간에 발을 들여놓는 일을 오늘날처럼 겁내지는 않게 되었을 것 아니겠는가.

앞서 말한 바 '널리 퍼진 편견'에 비추어보면 신장식은 무척 예외적인 존재임에 분명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많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그가 끊임없이 자기의 직업세계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는 점이다. 무슨 말인지 논리적으로는 온전하게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에도 나는 작품과 표정과 어조를 통해서 그가 울타리 너머로 내보내려 하는 미적 감각과 취향과 메시지를 어느 정도 '나름대로'는 짐작할 수가 있다. 이것은 신장식이 '화가에 대한 널리 퍼진 편견'이 무색하게도 '상식적인, 너무나 상식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예술 세계 울타리 밖의 문외한'들과 별 문제 없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평범한 미학적 코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대단한 장점이 될지 치명적 약점이 될지 모르겠으나, 진실을 말하자면 그렇다.

단언컨대, 신장식은 남다른 '소통(疏通)의 능력'을 가진 예술가다. 그는 일찍이 학생 시절부터 이런 능력을 발휘했다. 1970년대 중반에 심인(心印)이라는 묘한 이름을 가진 대구의 한 고등학교를 다녔던 그의 동기생들은 신장식이 만든 괴이한 연하장을 몇 장씩은 구입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회탈, 용, 연화무늬, 초가집, 이중섭을 흉내낸 아이들 모습 따위가 등장하는 '신장식표 연하장'은 낮은 가격과 높은 '예술적 품격'에 힘입어 엄청난 인기를 누렸는데, 이 '미술 대중화 사업' 덕분에 그는 겨울방학 때마다 탁탁한 창작활동 자금을 챙기곤 했다.

부자 부모를 만나는 행운을 누리지 못했던 신장식에게 연하장 사업은 중요한 '보급투쟁 루트'였다. 그는 이 자금으로 유화를 그리는 데 필요한 물건을 조달했다. 그리하여 예술적 재능과 물질적 인프라를 모두 갖추게 된 신장식은 5백여 명의 고교 동기생 가운데 유화를 그리는 유일한 학생이 되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2학년 겨울방학 때의 일이다. 나이가 어려 출품자격이 없었던 신장식이 형의 이름을 도용하여 경북도전에 이렇게 그린 유화를 냈다. 그런데 큰상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입상을 해버렸다. 그는 이 비밀을 은밀하게 '소통'시켰고, 그 은밀한 소통의 그물에 들어와 있던 친구들은 떼를 지어 전시회장으로 달려갔다. 탁자 위에 도자기와 사과, 모과 따위가 널려 있는 그런 그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장식은 '예술세계 밖의 문외한'들과 수없이 많은 '소통'을 했는데, 그의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의미를 가졌던 '소통'은 1977년 봄 대구 시내 어느 독서실 복도에서 이루어졌다. 문제는 미술대학 진학에 대한 집안의 반대였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미대를 포기할 경우 그가 택할 곳은 경북대학교 상과대학이 유력했다. 신장식은 친구들의 강력한 지원과 격려를 등에 업고 부모님을 설득해서 결국 미대에 진학했다. 그때 신장식이 화가로 성공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고 뜻을 세우기를 권했던 친구들 가운데 예술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이는 하나도 없다. 결국 회계사, 변호사, 회사원, 대학교수, 프리랜서 평론가 따위의 직업을 가지게 된 친구들이 그러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진 '소통의 능력' 덕분이었다.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신장식은 지금, 은행 지점 사무실에 책상 하나 놓고 앉아 신규 발행 고액 수표에 도장을 찍으면서, 날마다 25년 전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친구를 잘 만나는 것, 예술가의 인생에서도 이보다 큰 행운은 드물다!

88년도 무렵부터 신장식은 어릴 적 외갓집 동네 서낭당에서 본 적이 있는 것과 비슷한 깃발과 청사초롱, 연화무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전통 문양을 그리더니, 나중에는 같은 것을 판화로 찍었다. 그 다음에는 북한산과 광화문을 그렸다. 최근 몇 년 동안 죽어라고 금강산만 그리고 있다. '우리 것' '전통' '역사성' ... 미술평론가들은 그의 작업을 이런 개념을 통해서 분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신장식이 민족전통을 특별히 숭상하는 내셔널리스트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아는 나는, 그런 개념만으로는 신장식이 그런 것들을 그리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고 본다. 전통문양과 청사초롱, 경복궁, 북한산과 금강산은 그가 시도하는 '소통'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신장식은 아들 딸을 하나씩 둔 평범한 아버지요, 그와 하루가 멀다하고 데이트를 하던 시절에는 분명 그림을 그렸던 여인과 함께 살림을 꾸려나가는, 매우 성실한 남편이다. 아무 특별한 정치적 성향도 그 어떤 괴팍한 습관도 없는 '너무나 정상적인 중년남자'다. 예술가로서의 삶과 생활인으로서의 일상을 전혀 시끄럽지 않게 엮어나간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조용히 경청할 때와 적절히 자기 주장을 할 때를 균형 있게 판단한다. 예술을 그 무엇인가에 종속시키는 어리석음도 저지르지 않지만 그것을 역사에서 완전히 분리하는 정반대의 오류에도 빠지지 않는다. 신장식은 한 마디로 말해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건전한 시민'으로서, 동시대인과의 폭넓은 '미학적 정서적 소통'을 추구하는 화가인 것이다.

진정 빼어난 예술가는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그 무엇'을 창조한다. 새로운 '그 무엇'은 상상을 넘어서는 기행(奇行)이나 면벽(面壁)의 절대고독을 거쳐 잉태될 수도 있지만 타인과의 끊임없는 소통(疏通)의 산물일 수도 있다. 신장식은 기행이나 면벽과는 어울리지 않는 '건전한, 너무나 건전한 시민'이기에, 나는 그가 지금까지 그렸던, 그리고 앞으로 그리게 될 작품들이 모두 가족과 친구, 이웃과 동시대인, 그리고 역사와 함께 나누었던 깊고 넓은 '소통'의 산물일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믿음에는 믿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따른다. 나는 신장식의 작품을 대하면 거기서 흔적을 찾는다. 이번에 새로 선보이는 금강산 그림 어딘가에도 틀림없이, 그와 내가 함께 했던 '소통'의 흔적이 있을 것이다. 그 흔적을 가슴으로 감지하는 기쁨, 이것은 '타인과의 소통'으로 자기의 영혼을 살찌우는 예술가를 벗으로 둔 자의 양도할 수 없는 특권이 아니겠는가.

#평론 #유시민 #시사평론가 #소통의미학 #신장식 #2005

작가 블로그 포스팅 80014587220에서 시사평론가 유시민의 신장식 평론을 수집. 본문 안 작품 캡션 3건(〈상팔담에서 본 금강산〉 2001 + 부연설명 '2018 남북정상회담 회담장·판문점 평화의 집 전시 2020까지·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소장' / 〈금강산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2003 / 〈금강산-생명력〉 1999)은 paragraph 단위 본문 흐름 보존 원칙(2026-05-18 저녁 결정)에 따라 body에서 제거하고 related_works로 양방향 매핑(2001-001·1999-013·2003-002). 평론 작성 시점 정확히 미상 — 블로그 포스팅 timestamp(2019-02-20, 이미지 URL base64 timestamp '20190220') 기준으로 date 표기. 작가 본인의 표기 '유시민(시사평론가/ MBC 백분토론 진행자)' 중 사용자 결정에 따라 '시사평론가' 직함만 유지. 매체·게재처는 미확인 — 작가 블로그에 직접 게재된 평론으로 source=작가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