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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xed Artist's Note 1999-05

Munhwa Ilbo, "Mt. Geumgang Essay — Majestic Form, Canvas Falls Short" — Shin Jang-sik Artist Essay (1999)

Mt. Geumgang — Vitality
Related work
Mt. Geumgang — Vitality 1999

Summary

An artist essay by Shin Jang-sik published in the Munhwa Ilbo culture section's 'Mt. Geumgang Essay' column. Reflecting on his first visit to Mt. Geumgang in November 1998 and the renewed thirst it triggered, the artist meditates on the union of content and form in painting, then describes his second visit on 16 April 1999 — encounters with Manmulsang, Okryudong, and Guryongpokpo in spring. Written shortly before his participation in the Ilmin Museum's "Dream Journey to Geumgang — 300 Years of Mt. Geumgang Paintings" exhibition, the essay traces his transition from five Mt. Geumgang solo shows held between 1993 and 1998 (without direct experience of the mountain) to working from on-site sketching. He closes with a wish to one day paint and present together with North Korean artists.

Info
Source
Munhwa Ilbo
Author
신장식 (화가, 국민대 교수)

Body

금강산 에세이 — 웅장한 자태…캔버스가 모자라…

신장식 (화가, 국민대 교수)

지난해 11월 금강산행 첫배를 탐으로써 금강산에 대한 그리움과 목마름이 조금은 해갈되었으나 그 여행을 다녀온 후 나는 열병을 앓듯이 새로운 갈증을 느꼈다. 그렇게 그리워하던 금강산을 그곳에 두고 다시 밤배를 타고 내려오면서 백두대간에 길게 누워 있는 비무장지대(DMZ)의 불빛을 본 것이다.

밤이어서 DMZ의 야간탐조등 불빛은 산의 윤곽을 따라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 불빛 남쪽에는 점점이 불빛이 연속해 보이고 그 북쪽에는 검은 정적. 그 어둠과 정적 속에 금강산은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분단 상황을 이렇게 시각적으로, 구체적으로 바라보니 착잡한 마음 금할 길이 없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후 그려온 스케치와 슬라이드를 검토하면서 금강산을 다녀오면 미친듯이 금강산 그림을 그릴 줄 알았던 기대와는 달리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다. 왜일까. 금강산이라는, 너무나 아름답고 장엄한 산 그 자체와 미약한 나의 그림이 비교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기운에 압도되어 그릴 수가 없었다.

옛 그림과 사진과 자료와 상상 속에서 그려졌던 금강산을 직접 본 후 그리려니 회화의 근본적 질문인 내용과 형식의 합일에 대해 다시 집착하게 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그렸던 나의 금강산그림 형식은 적절한가. 금강산을 직접 보면서 왜 18세기의 겸재선생님이 이렇게 그렸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면 21세기를 바라보는 오늘의 시점에서 나의 금강산 그림은 어떻게 나의 심성과 정서를 금강산의 실체에 접신시킬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러한 표현의 정당성은 어디에 근거해야 하나…. 복잡미묘한 고민의 끝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주마간산격으로 급하게 본 금강산에 대한 그리움이 다시금 애타게 나타난 것이다. 금강산에 다시 가야겠다. 이제는 언제든지 갈수 있지 않은가. 내 그림의 형식은, 그 새로움은 다시 그곳에 서야 결론이 날 것이다. 김치가 맛을 내려면 숙성되는 시간이 필요하듯이 나의 금강산 그림 역시 그러한 시간의 흐름속에서 당연히 숙성한다는 생각이 내 마음속에 일어났다. 언제 다시 방문하나. 개골을 보았으니 봄이 되면 금강을 다시 보리라. 여름이 되면 봉래도, 가을이 되면 풍악도 보리라. 금강의 사계를 다 경험하면, 그러는 가운데 어쩌다 운이 좋으면 내 영혼 속에 금강산 그림에 대한 새로운 영감이 나타나지 않겠는가. 보지 않고 그릴때의 애틋함과 미진함을 생각하며 이렇게 가능한대로 보려고 노력하면 무엇인가 잡힐 것이 아닌가.

이런 상황속에서 일민미술관에서 기획한 〈다시 찾은 금강산전〉의 제안을 받으니 그 기쁨 말할수 없었다. 나 개인의 관심에서뿐만 아니라 미술관의 기획속에서 금강을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에는 여러 화가들과 같이 금강을 느끼고 우리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토론하고, 그림으로 경쟁하고, 격려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새로운 힘이 솟았다.

4월 16일 저녁 동해항을 떠나 금강산으로 다시 향했다. 해질녘의 장관이 백두대간의 웅혼한 자태와 어우러져 우리국토의 아름다움을 한결 빛내주었다. 그림의 방향을 이번 기회에는 더욱 분명히 잡을 수 있을지, 한 장의 드로잉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웅장하고 화려하며 천변만화하는 금강산을 회화로 조화롭게 표현해낼 영감을 얻기를 기대하며….

장전항으로 입항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선잠을 잔후 뱃전에 서니 지난 겨울 새벽에 입항할 때와는 다르게 밝은 아침 햇살 속에서 제모습을 드러내는 금강산이 우리가 다시 만나는 것을 축복하는 듯이 느껴졌다. 산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입항과정이나 입북과정 등 모든 것이 처음 올 때보다 정리되어 있었고 체계화해 있었다. 온정리를 거쳐 한하계의 미인송 사이로 달려서 만상정에 버스가 닿은 후 만물상전경을 만나기 위해 삼선암쪽으로 앞서 달려나갔다. 봄 기운속의 만물상은 생기와 발랄함으로 우리를 맞았다. 삼선암, 귀면암, 절부암, 안심대, 망장천을 지나 천선대를 단숨에 오르니, 봄의 생기는 만물상 전체를 감싸안고, 따스한 햇살은 스케치하는 내내 다시 찾아온 나를 축복하는 것 같았다. 손이 움직이며 그림이 이루어지는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라 이 산이 주는 기운이구나 생각하며 수십장의 스케치를 그려나갔다. 다음날 옥류동 가는 길의 창터솔밭길 미인송들은 연푸른 물기를 머금은 생동감으로 우리를 맞았고 연주담의 맑디맑은 물은 비취색의 신비함을 더하고 있었다.

하늘로 날아 오르는듯한 비룡폭포와 웅장한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는 구룡폭포는 지난 겨울의 얼어있던 모습과 달리 수량이 불어나서 그 생동감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물의 흐름, 그 소리, 신비한 색, 봄의 냄새, 피어나는 꽃, 물오르는 나무, 웅장한 바위,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생명력으로 교향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몽유금강,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 기운속에서 정신없이 그림을 그리다보니 언제 시간이 다 지났는지 안타깝게도 관광조장은 하산을 재촉하고 있었다.

금강산 그림은 고려 노영의 불화 〈지장보살도〉에서부터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 김홍도의 화첩뿐만 아니라 많은 민화와 일제시대 순조의 명을 받아 금강산 스케치 여행후 그린 해강 김규진의 〈금강산도〉, 〈총석정도〉, 소정 변관식 선생의 〈삼선암〉 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특히 금강산 그림은 겸재 정선으로부터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을 실경으로 사생해내면서 우리의 미학이 세워진 우리 회화사의 성소인 것이다. 우리것을 찾아내고 우리시대의 우리그림에 대한 영감은 이곳에서 찾아야하지 않을까.

그런데 분단이후에는 남한 작가 중에서 금강산을 그린 화가가 없으니 상상과 자료에 근거하더라도 금강산 그림은 이 시점에서 새롭게 시도되는 것이 좋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서 시작해서 93년 개인전부터 98년까지 다섯번의 개인전을 금강산이라는 주제로 발표해 왔다. 사실 나는 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에서 미술조감독으로 일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동안 우리의 정서를 구체화하기 위해 민속적 소재 속에 숨은 조형언어에 관심을 가지고 청사초롱, 북, 징, 깃발, 경복궁 등의 소재를 〈아리랑〉이라는 테마로 작품활동을 해왔다. 그후 우리 산하 속에 들어 있는 생동감과 생명력을 맨드라미, 들풀, 소나무, 북한산 등을 소재로 그림으로 표현하던 중 이왕이면 우리의 산 중에서 우리 회화의 성소인 금강산을 그려보자고 단순히 생각한 것이 나의 금강산 그림의 출발이었다. 금강산에 가보지 않고 금강산 그림을 그리니 아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언젠가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은 그 그림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이제 두 번이나 금강을 만나니 그 생동감과 신명이 나의 그림에도 스며들지 않을까. 아직은 상팔담이나 내금강, 총석정, 신금강 등 직접 보지 못한 곳도 많지만 우리 민족이 가진 신명과 생명력이 이제는 금강산 그림 속에 가능하지 않을까. 장래에는 우리 민족의 분단상황이 극복되어 금강산이 민족의 상징으로 거듭나는 때가 오지 않겠나. 그 때에는 마음껏 볼 것이다.

〈다시찾은 금강산전〉에서는 이러한 신명과 생명력이 나의 그림에 조금이라도 표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성급한 마음을 가다듬고 조금씩 만들어 나갈 것이다.

금강산은 나의 금강산이고 우리민족의 금강산이다. 나는 이런 희망을 가져본다. 다음에는 남쪽의 작가뿐만 아니라 북쪽의 작가들도 동참하여 같이 금강산에서 그림을 그리고 우리 미술을 토론하며 서울과 평양에서 발표하면 우리의 상징을 더욱 보배롭게 하지 않겠나. 민족 공통의 정서로 만나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나. 사람이 없는 빈 산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산과 그곳의 사람들과 같이 만날 때 기쁨은 더욱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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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블로그 포스팅 80015299438에서 문화일보 25면 〈금강산 에세이〉 코너 page 스캔 1장 + 본문 텍스트 수집. 매체(문화일보)는 1면 헤더로 확정, 정확한 발행 일자는 미상 — 본문에 1998-11 첫 금강산행 후 "지난해 11월"·1999-04-16 두번째 방문·일민미술관 〈다시 찾은 금강산전〉(7월 개막) 사전 글 등 단서로 1999년 4월~7월 사이 작성 추정해 date를 '1999-05'로 표기. 본 〈다시 찾은 금강산전〉은 ar-1999-001 〈몽유금강 — 그림으로 보는 금강산 300년전〉(일민미술관 1999-07) 단체전과 동일 전시(작가 표기는 〈다시 찾은 금강산전〉) — 같은 전시 관련 자료라 related_works는 ar-1999-001과 동일(1999-013 〈금강산-생명력〉)로 매핑. 원문 URL 미확보(문화일보 1999년호 디지털 archive 미발견). 작가 본인 기고문이라 body 공개(2026-05-16 저녁 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