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irang-Vitality
1992 · 62×42 cm · Woodblock Print
기쁜날을 청사초롱들이 흔들리는 모습으로, 목판으로 표현한 작품. 88년 올림픽 폐회식에서 마지막 작품으로 만든 '안녕'에서 모든 출연자와 관객이 청사초롱을 흔들며 올림픽의 성공을 기념하였고 모든 나라로 돌아갈 모든이에게 청사초롱을 흔들어 인사했을 때의 모습이 직접적 소재입니다. 이 청사초롱은 단국대 의상박물관에 있는 초롱을 현대적으로 다시 디자인하여 사용했습니다. 다색목판의 제작방법은 소멸법이라는 방법을 목판에 새롭게 적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아리랑은 우리민족의 정서를 가장 잘 대변하는 민요입니다. 저는 아리랑에서 한의 정서를 강조할 것이 아니라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는 희망과 의지의 정서를 강조하여 표현하려 합니다.
Exhibitions
Notes
- · The same work also appears in post 90035235064 (2008 Chass Art Center exhibition). Caption and visual identification both match.
- · Artist's note (post 90088747083) — The artist himself recorded the work's source (the cheongsa-choreong lanterns of 〈Annyeong〉, the final piece of the 1988 Seoul Olympics closing ceremony, reimagined from a Dankook University Costume Museum lantern in a contemporary key) and the multi-color woodblock technique (so-myeol-beop, the extinction method).
Related materials for this work
- Text Review 1992 · Artist's Blog
Shin Jang-sik Print Exhibition 〈Arirang〉 Essay — Anonymous (1992)
그가 탐구해 온 것은 리듬의 표현에 관한 것이다. 리듬의 표현은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이고, 화면이 리듬감으로 충만될 때 관찰자가 화면 앞에서 느낄 수 있는 교감은 풍부해진다.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리듬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호흡과 재료의 리듬이 합치되는 지점을 찾는 것"이 그의 연구과제이다. "처음엔 작의가 강했었는데, 차츰 재료의 리듬을 인식하게 됐고, 그 리듬의 인식 위에서 작업하게 됨으로써 새로운 아이디어도 나오고 생동감 있는 작품이 만들어지게 됐다. … 생명이 불어넣어지지 않은 작품들은 얼마나 무미건조한 것인가?" 대략 이러한 요지로 그는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바로 생명력, 리듬, 율동 등과 같은 개념들이 그의 작품의 기본이 된다는 의미이다. 그럼으로써 작위를 배제하고 그 자신과 재료의 리듬을 따라 작업할 때 자연이 지닌 생명력과 자신의 정서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 Text Artist's Note 1996 · 신장식
Artist Note by Shin Jang-sik — "Beyond the Sorrow-Soaked Arirang Pass: Toward a Lively Homecoming" (mid-to-late 1990s)
화가에게 있어서 고향이란 그 화가와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시사점을 주는 중요한 지점이다. 현대미술의 여러 대가들은 자신의 마음의 고향으로부터 자신의 조형언어를 창조했다. 나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나의 고향은 어디에 있나? 나의 조형언어를 창조 할 그 원천은 어디에 있나?
고향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물길 따라 흐르던 수천성, 육지나무, 내 어린 몸을 감싸줄 수 있었던 앞산, 그 산으로 가는 길모퉁이의 사당, 용이 산다고 얘기하던 작은 동굴, 우리 놀이의 아지트였던 바위틈, 산놀이가 지루하게 느껴질 때면 개구리·메뚜기 쫓아 찾아가는 수성들, 그 들은 그때만 해도 그렇게 넓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들은 나의 성장과 더불어 변하였고 내가 생각하는 고향도 달라졌다. 어느 여름날인가 부터 더 이상 수성천에서는 멱을 감을 수 없었다. 그곳에서 빨래하던 어머니들의 모습도 자취를 감추었고 앞산의 모습도 길과 아파트로 바뀌어 갔고, 산으로 가는 길 모퉁이의 사당은 없어졌고, 용이 산다고 얘기했던 작은 동굴도 더 이상 용이 살 것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지 않았다. 그 길에는 아스팔트가 깔려나갔고 그 물에는 제방이 만들어졌다.
내 마음의 고향은 어디에 있는가? 중학교를 다닐 때는 경주에서 열리는 신라문화제에 참가 했었다. 계림에서 그 기간에 열리는 미술대회는 경주에 가 볼 수 있다는 핑계로 항상 참여하였다. 새벽같이 일어나 경주행 버스를 타고가면서 보는 새벽하늘의 빛깔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엷어져 가는 별빛 속에 형언 할 수 없는 밝음으로 향해하는 그 모습은 영혼의 울림이었다. 새로운 세계로 가는 나그네를 고무시키는 생명의 율동이었다.
경주에서 허물어져 버린 우리문화의 옛 모습과 자연을 느낄 수 있어서 언제나 나를 끌어당기는 그 무엇이 있었다. 내 마음의 고향의 모습을 그 곳에서 무의식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경주로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나보다.
내가 자라온 시간은 항상 공사 중이었고 건설 중이었다는 기억 또한 강하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콩나물 교실이었으며 새 교실을 지어 나가는 공사장이었다. 중학교 다닐 때 역시 산을 깎아 운동장을 만드느라 폭파음과 불도저 소리 속에서 공부해야 했고, 대입시를 준비하여 공부할 때도 교실 옆 복도에서는 창문설치 공사 중이었고 강당 또한 3년 내 공사 중이었다. 겨우 졸업식만 그곳에서 할 수 있었다. 대학 역시 입학해 털털거리며 다녀야 했던 길이, 졸업할때 쯤이 되어서야 포장되었고 건물 또한 완성되었다. 지금도 가끔 보지만 파헤쳐진 길 사이 철판위로 다니는 버스만 타고 다니는 사이 어른이 된 것이다. 내 어릴 때 고향에서, 어른이 될때 까지의 기간은 항상 건설 중이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인지 모르지만…….
내 마음의 고향은 어디 있는가?
그 공사장, 그 아스팔트 밑에 깔렸나. 내가 자라온 기간은 서양문화를 받아들여 급격히 산업화한 기간이었다. 산이 바뀌고 공장이 만들어지고 집이 바뀌어 갔고 사람들은 더욱더 각박해졌다. 그 와중에 우리 고향의 모습은 바뀌어 갔다. 불도저에 밀려서, 콘크리트 아스팔트에 묻혀서…….
서양문화의 소낙비가 지나가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우리 문화의 고향을 찾아가는 나의 마음은 경주 갈 때 새벽하늘의 율동같은 새로운 바람으로 느껴진다.
우리 마음의 고향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분명 아스팔트 깔리기 전 그 어디에 그 뿌리는 살아 있을 테니까.
대학에서 내가 공부한 것은 무엇인가? 서양문화의 소나기가 뿌려준 언어를, 정신을 학습하기에 바빴다. 남보다 먼저 그것을 알아야 행세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모방의 연속이었고 우리의 새로운 시각언어의 창조는 불가능 하였다.
우리의 조형언어는 어디로 갔나?
이제는 그것을 찾아야 한다. 서양문화의 소낙비가 지나가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우리의 언어를 되살려야 한다. 그것이 내 마음의 고향을 살리는 길이요 우리문화를 살리는 길이다. 서양문화의 무분별한 모방이 아니라 내 감정 내 정서를 우리의 형식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21세기를 향하는 우리의 고향을 창조하는 길이다.
나의 작품의 주제는 '아리랑'이다.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고유정서, 세계와 사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전통적 시각을 상징하는 어사다. 나의 아리랑 작업의 핵심은 우리의 전통을 오늘의 지평에서 그것이 갖는 본래적인 힘과 건강함을 구현하는데 있다. 전통이란 우리 삶의 절실한 요구에 의해 형성된 생동감 있고 신명 넘치는 것이다. 특히 내가 관심을 두고 나의 작업에 응용한 것은 우리의 기층문화에 의해 형성된 여러 조형언어였다. 무속과 점·복·예언·풍수·참위 등에 쓰여진 각종 도구나 기재 속에 등장하는 미적 표현물과 노동의 고달픔이나 자연의 각종 재해 속에서도 놀이를 통해 그것을 이겨내고자 했던 기층민중들의 놀이판에 쓰여졌던 여러 악기나 기(旗), 도구 속에 나타나고 있는 미적 양식과 취향, 민화에서 보여지는 진실성, 소박성 등등……
민족의 토속신앙인 샤머니즘을 근간으로 하는 토속화한 외래종교(불교, 도교, 유교, 음양오행)를 바탕으로 깔고 삶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기층문화의 전통에서 건강한 힘을 발견 한 것이다. 고향의 모습을 발견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나의 작품으로 재창출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과거에 고착된 불변의 형태로 보지 않고 오늘의 시점과 지평에서 새롭게 그 의미구조를 드러내 놓아야 했다. 그 의미구조의 핵심은 고향의 모습 같은 조화의 생명력이라고 생각한다. 음·양, 물·불, 天·地, 선·악까지도 대립적 요소로 보지 않고 그것의 충돌이 하나의 거대한 생명력으로 통합되는 조화되고 화합하는 건강한 힘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러한 힘은 우리의 정서를 대변하는 아리랑으로 표상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이렇듯이 우리의 정서를 대변하는 아리랑에서는 역사의 고개를 넘어가는 고난과 한, 슬픔이 담겨있다. 그러나 지금의 시점에서는 이러한 슬픔보다는 그 고개를 넘고자하는 의지와 희망을 더 강조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퇴락한 고향을 생각 할 것이 아니라 힘과 신바람이 있는 우리의 고향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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