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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Review 2004-01-02

Mt. Geumgang Seen Between Sashil (Realism) and Sa-eui (Idealism) (2004)

Related work (29)
Exhibition
〈10 Years of Longing for Mt. Geumgang〉 poster
〈10 Years of Longing for Mt. Geumgang〉
Dates
2003-11-17 — 2003-12-24
Venue
Savina Museum of Contemporary Art

Summary

A critical essay by art critic Lee Ji-ho analyzing Shin Jang-sik's Mt. Geumgang paintings between Sashil (realism) and Sa-eui (idealism). Traces the artist's journey from conceptual to true-view (jingyeong) Mt. Geumgang, his use of hanji texture and yin-yang five-element colors, and comparisons with Western landscape traditions — Cezanne, Turner, Delacroix — while honoring the lineage of Gyeomjae Jeong Seon. Three works are analyzed individually: 〈Mt. Geumgang Cheonhwadae〉 (paired with Cezanne's Mont Sainte-Victoire), 〈Mt. Geumgang Cheonhwadae Pine〉 (linked to Chusa Kim Jeong-hui's Sehando), and 〈Baekdudaegan Seen from Mt. Geumgang〉 (with Delacroix and Gyeomjae).

Info
Source
Artist's Blog
Author
이지호 (미술비평)

Body

이지호 (미술비평) · 2004-01-02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들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화가는 풍경에 대한 자신의 호감을 그림으로 그리고, 작가는 글로 표현하여 자연을 환기시켜 알게 한다. 풍경을 그리는 방법은 두가지 차이점이 있는데, 첫째 풍경 그 자체에서 오는 느낌을 그대로 재현 하거나 묘사 하는 것이고, 둘째는 작가의 사고에 따라 유추하여 묘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묘사에는 확실한 것이 없고, 예술가의 선택에 따라 늘 바뀐다. 신장식은 사계절마다 그 모습을 달리하는 금강산의 풍부한 표정을 담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금강산을 가기 전 그가 소재로 한 금강산 그림은 역사적인 상징물로서 금강산의 의미를 환기하려했다. 그러나 금강산을 직접 다녀온 후로 자연의 경이로움에 압도된 작가의 개인적인 감정이 색채와 형태를 통해 드러나면서 표현주의적 양식도 강해졌다.

금강산은 분단 50년 만인 1998년 11월 남한의 주민들에게 북한관광지로서는 최초로 개방되었다. 태백산맥 줄기의 북부에 자리잡고 있는 금강산은 최고봉인 비로봉(1638m)을 중심으로 1만 2000봉우리가 있다고 할 만큼 많은 봉우리로 펼쳐져있다. 금강산은 그 수려한 아름다움 뿐 아니라 지척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담은 곳이기에 단순한 풍경 이상의 것이다. 화가 신장식에게 금강산은 역사적인 의미 외에도 또 다른 절실함이 묻어 있는 곳이다. 그는 겸재 정선이 이 금강산에서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을 실경으로 사생하면서 부터 우리의 미학이 세워졌기에 이곳을 바로 우리 회화사의 '성소'라고 여긴다. 그래서 이 성스러운 곳에서 우리의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회화의 전통에 대한 작가의 의도를 반영한 소재가 금강산인 것이다.

관념의 금강산에서 진경의 금강산으로 작가가 금강산을 처음으로 그린 것은 1993년으로 1998년 금강산 관광 이전까지 5년간 7회에 걸친 〈금강산〉작업에서 회화와 설치 판화 등 다양한 형식으로 작업하였다. 이 당시 작가는 미술자료나 사회학적인 문헌에 의존하거나 혹은 상상과 관념으로 금강산을 그렸다고 본다. 1998년 금강산에 갈 수 있게 되자 최초의 배를 타고 그 현장을 방문한 후 금강산의 사계를 두루 여행하였다. 그가 금강산과 같은 한국적인 소재에 관심을 가진 연유는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에서 미술조감독으로 일하게 되면서부터다. 이러한 경험을 시작으로 우리 민족의 정서를 구체화하기 위하여 민속적 소재 속에 숨은 조형언어에 관심을 갖고 청사초롱, 북, 징, 깃발, 경복궁 등의 소재를 활용하여 〈아리랑〉이라는 테마로 작업을 하였다. 그 이후에는 우리 산하에 스며있는 생동감과 생명력을 맨드라미, 들풀, 소나무, 북한산 등을 소재로 그려냈다. 그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금강산을 그리기 시작하였고, 이렇게 그려진 금강산은 〈아리랑〉의 연장선상에서 또 하나의 대중의 현실과 일상을 드러내는 소재였다.

작가는 금강산에 발을 디디고, 그것을 손으로 만지고, 몸으로 호흡하고, 마음으로 느끼면서 눈앞에 펼쳐진 금강산의 아름다운 실제 경관을 스케치나 사진기에 담아왔다. 이제 관념 속에 존재하던 금강산이 작품에서 실경으로 또다시 진경으로 이어진 것이다. 신장식은 세 번에 걸쳐 금강산을 다녀왔다고 한다. 그러나 금강산의 실경에 근거하고, 한국화에서의 평면성, 장식성과 같은 표현방식을 일부 차용해왔다고 실경산수라 이름붙이기에는 서양의 풍경화적인 요소를 간과할 수는 없다. 그의 금강산은 자연을 그리고 그 자연에 대한 작가의 느낌과 생각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낭만주의적 풍경화로 볼 수 있다.

화가들은 자연의 거대한 힘이나 규모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아름다움을 '숭고'라 부른다. 서양의 고전주의 풍경화에서 자연은 현실의 대상이며 인간은 그것을 파악하고 사용하는 주체라는 자연관이 담겨 있다. 그리고 터너의 낭만주의 풍경화는 회화적인 것과 숭고한 것을 그리면서 무한하고 절대적인 자연이 작고 유한한 인간을 구원해주리라는 희망을 드러냈다. 자연과 같은 예술을 모색하며 부드럽고 따스한 자연을 그려나간 바르비종파의 풍경화에는 인간과 자연의 화해가 깃들어 있다. 신장식의 금강산은 유교사상이나 도가사상과 같은 자연에 순응하는 동양적 정신세계의 표출과 한민족의 뼈아픈 분단의 현대사를 드러내 예술적으로 재현하여 희망을 제시하는 의도에서 작가가 느끼고 작가가 만들어낸 '생동과 신명'의 산이다. 그의 풍경화에는 자연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한 작가의 느낌과 생각이 함께 담겨 있으므로 금강산은 그를 통해 풍경이 되는 것이다.

신장식의 작품 제작과정은 기억과 경험에만 의지하기보다는 객관적인 재료에 근거한다. 우선 그는 실경에 가까운 이미지를 얻기 위하여 금강산을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기로 촬영한다. 그렇게 얻어진 사진들을 컴퓨터의 포토샵에서 잘 다듬어서 이를 다시 캔버스 화면 위에 빔 프로젝트를 사용하여 투사한다. 여러 번에 걸친 이미지 선택과 표현에서 실경 특유의 현장감과 생동감이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캔버스위에 한지를 발라 표면을 두텁게 하여 마티에르의 느낌을 강조한다. 그리고 한지로 된 화면 위에 비춘 금강산의 모습을 얇게 혹은 두껍게, 진하게 혹은 흐리게 아크릴릭 물감으로 채색한다. 색의 표현방법으로는 금강산의 곡선은 짙은 색으로, 골짜기는 밝은 색으로 동양사상적 관점에서 양기와 음기의 적절한 조화와 만남을 추구한다. 이에 금강산의 생동감을 더하기 위하여 그려진 화면 위에 물감을 뿌리기도 하고, 쇳가루를 섞어서 가을 단풍 분위기를 내기도 한다. 특히 그의 화면에서 주조색인 청(靑)색은 오행 가운데 목(木)으로서 동쪽에 해당하고 만물이 생성하는 봄의 색으로 창조, 생명, 신생을 상징하며, 귀신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색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림 전체에서 느껴지는 색은 오방색이다. 이것은 한국의 전통색으로 중국의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근원을 두고 있다. 작가는 색을 시각적 체험으로의 반응보다는 관념화되고 지식화된 우리의 전통적인 색채에서 구체적인 형상과 의미를 내포하는 표현으로서 사용한 것이다. 이는 서구적인 원근법과 명암법에서 벗어난 화면이 색채와 이미지가 어우러져 서정미 넘치고 장식적인 화려함까지 보여주게 한다.

표현주의적으로 승화된 금강산수

작품 〈금강산 천화대〉는 빛과 그림자의 강한 대비로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전경과 푸른 산 너머 멀리 하얀 산이 보이는 것이다. 이 작품은 20세기 현대미술의 문을 연 폴 세잔의 흰색 산 〈생 빅투아르 산(Mt. Sainte Victoire)〉을 떠오르게 한다. 금강산이 신장식의 마음의 성소라면 석회석으로 된 하얀 '생 빅투아르'산은 세잔의 고향이다. 세잔은 생 빅투아르 산을 그리고 또 그렸다. 왜냐하면 그에게 '모든 자연은 그 깊이로 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빛의 변화에 따른 색감에 주관성을 표현했던 인상주의 화가들의 이념과는 표현형식을 달리하면서 새로운 풍경화를 탄생시켰다. 그는 산의 형태에서 자신의 주관성을 깊이 드러내면서 객관적인 사실주의와 주관적인 감각의 표현으로 나아간 것이다. 신장식도 금강산을 그리고 또 그린다. 그는 금강산의 순수한 자연 형체를 단순히 눈에 비치는 형으로 본 것은 아니다. 그 형을 중심으로 회화적인 구도가 만들어지는 작가 자신만의 감각적인 형으로 파악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장식의 금강산은 구체적인 사물의 묘사나 자유분방한 색채를 사용한 감각적인 화면처럼 보일지라도 화면에서 풍기는 전체적인 느낌은 동양화의 채색화와 같이 담백하고 시원한 기운이다. 이는 작가가 객관적인 대상에 충실하고 이의 표현을 위하여 서구적 조형방식은 물론 음기와 양기의 굴곡선 같은 한국적인 전통 화법도 두루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 〈금강산 구룡대 소나무〉는 푸른 소나무의 자연스러움을 의도적으로 기교 부리지 않고 대상에 충실하게 그리고 감정에 정직하게 그리면서도 자연의 힘과 아름다움을 더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의 소나무에서 느껴지는 문인화적 정신이 표현주의적인 요소와 조화되어 승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신장식의 454×181cm의 대작 〈금강산에서 바라본 백두대간〉에서 해안선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금강산의 경치는 우리의 눈을 부시게 한다. 금강산 지도 위에 하얀 은하수를 펼친 듯 이어지는 흰 산봉우리의 곡선을 보더라도 그는 이념보다는 자연이라는 대중적이고 현실적인 주제를 찾아 과거의 형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표현을 추구하는 실험적인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전통과 현대 그리고 동서양을 넘나드는 그의 대담함은 산봉우리의 명암과 색채의 극한 대비, 분방한 색채, 유동적인 필치, 운동감으로 가득한 극적 구도는 인간과 자연의 융합을 감정으로 표현했던 17세기 화가 들라크루아를 연상시키고 동시에 겸재의 아름다운 실경 사생화를 떠올린다.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고, 그리고 그것이 예술의 기능도 아니다. 우리는 신장식의 금강산을, 한국적인 전통을 현대에 접목하려는 시도 정도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다원화된 문화의 새로운 형태로 우러나는 감성에 공감해야 한다. 그의 풍경화는 실경과 유추사이를 비켜가고 있고, 사실(寫實)적인 표현과 사의(寫意)적인 표현의 사이를 드러내고 있다.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신장식의 말처럼 금강산 그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금강산의 감동을 화면에 기록하려는 의욕에서 벗어나 금강산을 진정으로 경험하고 체득한 자로서의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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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문 본문에 '금강산 구룡대 소나무'로 표기된 작품은 yaml 작품 제목 '금강산 천화대 소나무'(2003-008)와 봉우리 이름이 다름 — 비평가가 봉우리를 다르게 인용했을 가능성. 본문은 작가 블로그 원문 verbatim 보존, 작품 제목은 yaml 표기 유지. 작가 검수 시 확정 필요.